성경에 의하면 그들은 인류의 최초이자 시발점이다.
분명 인간이다,그러니까 배꼽이 있어야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생물학적 부모가 없다.
게다가 야훼의 섭리로 무에서 유로 생겨났으니 당연히 배꼽이 없어야한다.(없어도 된다.)
자,이 질문에 과연 기독교창조주의자들은,또는 기독교근본주의자들은 어떤 대답을 할까?
여기에 또 한가지의 주문을 해보자.
그럼 배꼽이 없는데, 영장류의 공통적인 특징이 없으며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주요특징이 없는데 이들이 인간종에 속할까?
상당히 장난끼 어린 이 질문은 그러나 그들에겐 장난이 아니다.
현재 남아있는 문헌상의 기록으로 보면 이 논쟁은 퍽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646년 토마스 브라운 경은 이 논쟁에 대하여 아담과 이브는 틀림없이 아주 매끄러운 배를 가졌으리라는 견해를 비추었다.
그리고 근 100년후에 이 같은 논쟁의 결정판인 '최초의 조상,아담과 이브에게는 배꼽이 있었는가 하는 문제에 관한 고찰'의 저자 크리스티안 라인하르트도 역시 토마스 브라운경과 마찬가지로 아담과 이브는 배꼽이 없었단것에 동의한다.
이들 아담과 이브에게 배꼽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시기는 중세와 초기르네상스일부의 시대이다.
그 당시는 신본주의의 시대였다.
당연히 인간이지만 야훼의 신성에 힘입은 아담과 이브는 인간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그들의 조상으로 무리없이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중세의 그리고 초기 르네상스의 미술작품에서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은 배꼽이 그려져 있지 앟다.
하지만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그 배꼽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야훼가 아담을 창조하는 모습을 담은 거장 미켈란젤로의 멸화 시스티나 성당 천정의 그림을 보면 아담에게 배꼽이 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아담과 이브에겐 배꼽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넘어 오면서 자연스럽게 표시되던 이 배꼽은 다시 근대로 이어내려오며 '과정상의 창조'란 이상한 논리로 발전된다.
말그대로이다.
야훼가 지구와 인간을 창조할때 과거의 기억과 진행상의 과거까지도 그 창조속에 버무려넣었단것이다.
이런 논리는 플리머스 형제단소속의 기독교근본주의자였던 필립 고스에 의해 집대성된다.
그의 저서 '옴팔로스:지질학적매듭을 풀기 위한 노력'이 1857년 출간되었다.
여기서 옴팔로스는 배꼽을 뜻하는 그리이스어이다.
동물학자였던 그는 각종 동식물의 화석들의 존재함을 알고 아담과 이브이전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었음을 그것도 아주 긴 시간차를 두고 먼저 이 지구에서 활보했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그는 제임스 어셔가 계산한 그 유명한 천지창조, 기원전 4000년경에 이 지구와 생명체가 6일의 과정을 거쳐 창조되었음도 열렬하게 믿고 있었다.
그럼 필립고스는 자신의 믿음인 성경과 현실의 화석기록사이에서의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려 했을까?
그는 이런 관념을 떠올린다.
"만약 야훼가 배꼽이 있는 아담과 이브를 창조했다면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과거의 지구의 역사도 만들수 있지 않을까?"
그는 이 옴팔로스를 통해 성경의 창세기를 옹호하려고 애썼다.
허지만 결과는 매우 비참했다.
기독교인들이나 일반과학자들이나 모두 필립고스의 그 책 '옴팔로스'를 형편없는 책으로 매도했던것이다.
일반과학자들은 그 책을 아무런 증거가 없는 신비주의자의 책으로 치부했고,기독교인들은 야훼가 일부러 창조의 과정중에 실수나 과거의 흔적등을 구태여 남길 필요가 있느냐며 매도했던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야훼가 이 세상을 창조함에 있어서 그냥 창조를 하면 되지,왜 구태여 애써서 과거의 흔적까지, 그 잔해까지 신경써야했을까?
인간을 속이기 위해서,아니면 후일 드러나는 과정상,또는 땅속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헷깔려하는 인간의 모습을 즐기려고?
사실 이 필립고스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단이 별로 없다.
사실 개인의 주관이 주가 되는 종교에선 이만큼 훌륭한 논리도 없을것이다.
그저 수세기가 걸리는 그 모든 일을 야훼는 한 순간에 할수도 있다는데 무어가 어떤가?
그러나 찰스 킹슬리의 한 마디로 필립고스의 주장은 무시된다.
"야훼가 암석위에 거대하고 불필요한 거짓말을 썼다는것을 믿을수가 없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훌륭한 동물학자로서 자신의 주장과 상충되는 찰스다윈과도 몇해동안 서로 편지로 동식물에 관해 매우 우호적인 편지도 주고 받았다.
이에 헤랄드 모로비츠는 이런 평을 한다.
"진화,또는 창조에 관한 어떤 말들도 오가지 않았으며 두 위대한 자연주의자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어떤 이데올로기적 심연도 없었다.
편지들은 예스러운 멋을 지니고 있었고,공손했으며 매우 영구적이었다."
객관적인 동물학자였던 그가 자신의 종교에 충실하기 위해 그는 독창적인 논리를 발전시키지 않을수가 없었던것이다.
야훼가 이 지구와 인간을 생명체를 그 모든것을 진행중인 상태를 포함한 과거의 흔적과 진행중인 상태로 창조했단 주장을 담은 필립고스의 옴팔로스를 받아들일 사람이 있을까?
극히 단순하게, 별들의 나이로 -탄생한 지 100만년된 초신성-제임스 어셔의 천지창조와 모순된다는 주장에 대해 또 다른 주장이 응수되었다.
그 내용을 일부 옮긴다.
"잘 정리된 과학적 사실로서의 초신성-물론 그것은 사실이다.-에 대한 존 패터슨의 편지에 대해서 말하자면...그는 상황증거로만 진화를 증명할수 있을 뿐이고,창조주의자들은 신의 말로서만 창조를 증명할 수 있을 뿐이다.
기독교인이 된다는것은 신앙이라고 하는 중요한 요소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
나는 6일동안 이루어진 신의 창조를 믿는다.
또한 나이테를 지닌 성숙한 나무를 보고 모든 과학자들은 몇년동안 성장한 결과라고 주장할 테지만 신은 그 나무를 하루 만에 창조할 수 있단것을 나는 믿는다.
자연이라면 수 백만년이 걸렸을 지구 깊숙한 곳에 있는 유전을 신은 하루 만에 창조했다.
신은 해양화석들을 멀리 떨어진 내륙으로 옮겨놓았고,우리가 20세기에 경이를 표하는 신성을 창조했다."
앞서의 제임스 어셔의 천지창조에 대함 모순을 주장한 존 페터슨,그리고 그에 대한 반박을 한 창조주의자 도나 로어스...
이들의 기사는 디모인 선데이 레지스터 지에 1987년 3월 22일자와 4월에 실린것이다.
도나 로어스 같은 이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그의 말대로 상황증거로서의 진화를 인정하지만 우리는 신의 말로서만이 진화를 증거한다니....
그 신의 말이란것에 대한 증거는 어디 있는가?
진화는 과학이며 증거를 필요로 한다는 분야임을 알면서도, 그 분야를 부정하면서도 그는 그 부정에 대한 어떤 증거를 내세우질 못하며 전연 분야가 다른 신학의 신의 말이란 표현을 쓰고 있는것이다.
과학과 신학은 애초가 전연 다른 분야이다.
그 시초는 같을수도 있다.
모두 철학에서 출발하였으며 무언가를 탐구하는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과학은 눈에 보이는 것을 탐구하지만,신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것을 탐구하는것이다.
과학은 눈에 보이는만큼 가시적인 증명을 해야하지만 신학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구태여 가시적인 증명을 할 필요가 없다.
이 차이가 양자를 가로지르며 많은 불식과 오해를 낳고 있다.
필립고스처럼 자신의 학문과 종교의 이분적 가치관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본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아담과 이브에겐 배꼽이 있었을까?
있었다고?
그들에겐 부모가 없었는데?
없었다고?
그들은 최초의 인간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