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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평론>, 2018년 여름호.
자기애의 시학
맹문재
1.
김준엽 시인이 추구하는 시 세계는 자기애(自己愛)의 심화와 확대이다. 시인은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토로하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노래한다. 그리하여 작품들에 나타난 사랑은 구체적이고 절실해서 그 지향이 무한하다. 또한 절박하고 근원적인 것이어서 일반적인 차원을 넘는다. 시인의 자기애는 명확하게 규명하거나 분류하기는 어려울 만큼 복합적이고 다층적이지만 육화된 것이어서 공감이 되고 각인된다. 항상 존재하고 있으면서도 인식하지 못하다가 부족한 순간 소중함을 깨닫는 공기처럼 사랑의 가치를 새롭게 일깨워주는 것이다.
자기애는 자신을 사랑할수록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어려워 이기심과 동일하게 여겨질 수 있다. 사랑과 자기애는 한 쪽이 증가할수록 다른 쪽이 감소한다는 의미에서 상호배타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성서의 말도 있듯이 자신에 대한 사랑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분리할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자아에 대한 사랑은 양자택일의 것이 아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의 연관에서 사랑은 본질적으로 불가분의 것이다.
이와 같은 면은 시인이 “내 가슴속에 비가 내리”(「파도를 베게 삼아」)는 상황에서도 “오랜 세월 써두었던 당신을 향한/내 사랑의 편지를 실어서/냇물에 띄”(「종이배」)우는 데서 확인된다. 시인의 자기애는 “영원히 떠나버린/님을 만나는 꿈을 꾸며/못 나눈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바닷물의 품」)라고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지만, “이슬”이 “사라진 그곳에” “사랑이 넘치는/꽃을 만들려고”(「사라져버린 이슬이여」) 할 정도로 헌신적이다. 또한 “내가 이 세상에서 떠나가거든/사랑하는 이여/눈물을 흘리지 마시고/웃음 진 눈으로/나를 떠나보내 주십시오”(「사랑하는 이여! 내가 떠나가거든」)라고 부탁하듯이 의연하다.
시인의 자기애는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랑의 방식이다. 따라서 사랑을 유지하거나 부족한 사랑을 채우거나 소멸한 사랑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자세는 주목된다. 사랑을 귀하게 여기고 그리워하고 아끼고 공경하고 섬기고 보살피고 베풀고 함께하고자 부단히 움직이는데, 좌절과 비탄으로 인한 고통을 수용해서 극복하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사랑만이 자신을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들고 다른 존재와의 결합을 이루어 보다 충족된 삶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 편지를 쓰고, 감사함을 잊지 않기 위해 다짐하고, 힘을 얻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고, 슬픈 노래를 즐거운 노래로 바꾸어 부른다. 은하수를 바라보며 가슴을 넓히고, 불의 화살 같은 정열을 갖고, 사랑하는 마음을 바닷물의 품에 안긴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을 당신의 손에 전하고, 밝은 세상을 향하여 길을 떠나고,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노래한다. 때로는 열정적으로, 때로는 친밀하고 따뜻하게, 때로는 헌신적으로 지향한다. 시인의 사랑은 대상애(對象愛)를 향하여 다양하게 변주되고 항구성을 띠는 것이다.
넓은 밤하늘에
작은 별 하나가
빛나고 있습니다
누가 쳐다보든가
아니 쳐다보든가
상관하지 아니하고
그저 묵묵히 자기 빛을
내고 있을 뿐입니다
큰 별빛에 가려져
자기 빛이 아니 보여도
작은 별은 그 누구를
원망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가진 빛만으로
빛을 낼 뿐입니다
작은 별은 큰 별 보고
큰 꿈을 가지게 됩니다
자기도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천년만년 지나면 큰 별이 되고
큰 빛이 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으로
세월의 아픈 눈물 참고 있습니다
작은 별은 넓고 넓은
은하수 바다를 보며
넓은 가슴 가집니다
자기도 세월이 흐르고 흘러가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은하수 바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넓은 가슴 가집니다.
―「작은 별 꿈」 전문
“작은 별”은 “넓은 밤하늘”의 한켠에 놓여 있기에 존재성이 미약하다. 더욱이 “큰 별빛에 가려져” 있어 “빛”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작은 별”은 “큰 별”에 대한 열등감으로 살리에리 증후군(Salieri Syndrome)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이 처한 조건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 박탈감도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작은 별”은 “그 누구를/원망하지 아니”한다. 그 대신 “자기가 가진 빛만으로/빛을 낼 뿐”이다. 자존감을 가지고 “누가 쳐다보든가/아니 쳐다보든가/상관하지 아니하고/그저 묵묵히 자기 빛을/내고 있”고, “큰 별 보고/큰 꿈을” 갖는다. “자기도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천년만년 지나면 큰 별이 되고/큰 빛이 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품는 것이다. 또한 “넓고 넓은/은하수 바다를 보며/넓은 가슴”을 펼친다. “자기도 세월이 흐르고 흘러가면/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은하수 바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작은 별”의 꿈과 희망은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월의 아픈 눈물 참고 있”다는 토로에서 알 수 있듯이 오랜 기간 참고 견뎌야 한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인고의 세월 동안 좌절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아픈 눈물”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주기에 아픔이 없는 존재들이 흘리는 눈물과는 다르다. 훨씬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어서 단순히 견디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작은 별”은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랑의 빛을 내고 있다.
2.
푸른 하늘을 보라
비탈길을 넘어 가다
지치면 하늘을 보라
하늘을 바라보면
힘이 생길 거야
험준한 삶을 넘다가
마음이 나약해지면 하늘을 보라
하늘을 바라보면
강한 마음이 생길 거야
푸른 하늘을 보면
힘을 잃어버린 몸에
하늘의 온기가 전해지며
몸에 힘이 가득 차오르고
나약해진 마음에 굳은 햇살 받으면
강한 마음으로 변해진다
비탈길이 아무리 높아도
하나의 길일 뿐인데
넘다, 넘다 보면
언젠가는 길의 끝이 보이리니
삶이 아무리 험해도
하나의 삶의 고개일 뿐인데
살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고개를 넘어 가리니.
―「푸른 하늘을 보라」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푸른 하늘을 보라”라고 자신에게 노래하고 있다. “비탈길을 넘어 가다/지”칠 때 “하늘을 바라보면/힘이 생”긴다고 믿는 것이다. 또한 “험준한 삶을 넘다가/마음이 나약해”질 때 “하늘을 바라보면/강한 마음이 생”긴다고 믿는다. 실제로 화자는 “푸른 하늘을 보면/힘을 잃어버린 몸에/하늘의 온기가 전해지며/몸에 힘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체험했다. “나약해진 마음에 굳은 햇살 받으면/강한 마음으로 변해”지는 것도 느꼈다.
화자에게 “하늘”은 공기와 먼지만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아득히 높고 멀고 창창해 관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하늘”의 의미가 남다르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늘”은 신비의 세계가 되기도 하고 신의 영역이 되기도 한다. 자기 존재의 근원이자 기운의 발생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다른 말은 ‘한울’인데, ‘한’은 크다는 뜻을 지닌 접두사이고, ‘울’은 울타리나 우리의 준말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한울 즉 “하늘”은 큰 울타리라는 뜻을 지닌다. 그 크기는 끝이 없고 밖이 없을 정도여서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태어나서 삶을 영위하다가 소멸하고 다시 태어난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기운이 “하늘”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자가 “하늘을 바라보”며 힘을 얻고자 하는 희망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우리’도 들어 있다. 인간과 천지만물이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라는 인식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화자가 “하늘을 바”라보는 행동은 강한 일체감의 추구로 볼 수 있다. 그 결과 힘을 내고자 하는 화자에게 “하늘”은 기력을 준다. 왕성한 기백과 정직한 정신과 무한한 가능성을 주는 것이다. “하늘”이 마련해준 것이기보다는 화자 자신이 마련한 것이다. “하늘”에서 광대하고 환하고 강하고 영원한 힘을 얻은 것이다.
화자는 “비탈길이 아무리 높아도/하나의 길일 뿐인데”라는 자신감을 갖는다. “넘다, 넘다 보면/언젠가는 길의 끝이 보이리”라는 희망도 갖는다. “삶이 아무리 험해도/하나의 삶의 고개일 뿐”이기에 “살다, 살다 보면/언젠가는 고개를 넘어 가리”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하늘”은 태양이 빛을 발하는 광명의 세계이다. 뿐만 아니라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공존하는 큰 울타리이다. 따라서 “하늘”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화자의 희망은 결코 허망한 것이 아니다. 그 의지가 굳건하기에 “하늘”의 의지 또한 굳고, 정성이 지극하기에 “하늘”의 정성 또한 그침이 없고, 정신이 항구적이기에 “하늘”의 얼굴 또한 양양하다. 그리하여 화자는 “하늘”의 기운을 품고 당당하게 나아간다.
당신의 손을 가만히
나에게 내밀어주세요
형체도 없는 뜨거운 사랑을
당신의 손에 쥐어드리리
차디찬 겨울 날씨에
그 사랑 식어버리지 않도록
포근하고 따스한
당신의 호주머니 속에 넣어서
눈꽃 흘리지 마시고 가세요
나를 생각할 때마다
그 사랑 당신의 호주머니에서
꺼내 뜨거운 나를 느껴보세요
당신 가만히 나를 보아주세요
내 모습 당신의 눈에
새겨 드릴 테니
세상의 지우개에
그 모습 지워지지 않도록
눈을 꼭 감으시고
어떤 유혹에도
빠지지 마시고 가세요
나의 모습 보고 싶을 때마다
해맑은 거울 앞에 앉아
당신의 눈을 뜨시고
거울을 보세요.
―「세상의 지우개」 전문
작품의 화자는 “당신의 손을 가만히/나에게 내밀어주세요”라고 노래한다. 그렇게 하면 “형체도 없는 뜨거운 사랑을/당신의 손에 쥐어드리”겠다고 약속한다. 나아가 “차디찬 겨울 날씨에/그 사랑 식어버리지 않도록/포근하고 따스한/당신의 호주머니 속에 넣어서/눈꽃 흘리지 마시고 가” 달라고 부탁한다. “나를 생각할 때마다/그 사랑 당신의 호주머니에서/꺼내 뜨거운 나를 느껴” 달라는 것이다. 화자가 “당신”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명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사랑”에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을 향한 마음이 가식이나 허위 없이 지극한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 가만히 나를 보아주세요/내 모습 당신의 눈에/새겨 드릴 테니”라고 보다 적극성을 띤다. “세상의 지우개에/그 모습 지워지지 않도록/눈을 꼭 감으시고/어떤 유혹에도/빠지지 마시고 가세요”라든가, “나의 모습 보고 싶을 때마다/해맑은 거울 앞에 앉아/당신의 눈을 뜨시고/거울을 보세요”라고 부탁도 한다. 이와 같은 화자의 태도에는 “하늘”(「푸른 하늘을 보라」)과 함께하려는 마음이 들어 있다. “하늘”의 기운뿐만 아니라 무한한 포용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화자가 “당신”에게 “사랑”을 부탁하는 행동은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자세와 속성을 따르고자 하는 것이다. 마치 “자기의 마음을 다하는 자는 자기의 성(性)을 알게 되며 자기의 성을 알면 천(天)을 알게 된다. 그 마음을 보존하여 그 성을 기르는 것은 천을 섬기는 방법이다.”라는 맹자의 말처럼 순한 본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화자의 “사랑”은 순정적이고 해맑고 헌신적이다. 아울러 본질적이고 집중적이고 “하늘”의 이치와 질서를 따르는 것이다.
3.
그동안 불어대던
차디찬 바람을 잠재우고
봄비가 소리도 없이 내린다
모래 바람만 불던
내 가슴의 들판에
생명의 바람이 불어대고
새 생명들이 나와
내 가슴 들판은
생명의 약동이 가득 차간다
슬픈 노래의 가사로
가득 차 있던 내 뇌리에
즐거운 노래 가사로
가득 차게 만들고
슬픈 노래 소리만
흘러나오던 내 입에
즐거운 노래 소리가 흘러나온다
내 바람을 찾아주고
내 생명들을 찾아준 봄비여,
내 노래 가사를 찾아주고
내 노래를 찾아준 봄비여!
―「봄의 노래」 전문
작품의 화자는 “모래 바람만 불던/내 가슴의 들판에/생명의 바람이 불어”온다고 노래한다. 또한 “새 생명들이 나와/내 가슴 들판은/생명의 약동이 가득 차” 있다고 인식한다. 새 생명들이 성장하는 대지는 밝고 희망이 그득하다. 그리하여 화자는 “슬픈 노래의 가사로/가득 차 있던 내 뇌리에/즐거운 노래 가사로/가득 차게 만”든다. “슬픈 노래 소리만/흘러나오던 내 입에/즐거운 노래 소리가 흘러나온다”고 흥겨워하는 것이다.
“그동안 불어대던/차디찬 바람을 잠재우고/봄비가 소리도 없이 내”리는 “봄”은 소생과 부활의 계절이다. 겨울 동안 무섭게 몰아치던 바람이 약해지면서 날씨는 온난하고 일조량은 증가한다. 때로는 시베리아의 바람이 되살아나 꽃샘추위가 오고 황사가 날리기도 하지만 봄날은 대체로 맑고 밝다. 온갖 꽃들이 산과 들을 풍부하게 채우고 향기를 전한다. 그리하여 화자는 웅크렸던 몸을 이끌고 대지로 나선다.
화자가 “내 바람을 찾아주고/내 생명들을 찾아준 봄비여!/내 노래 가사를 찾아주고/내 노래를 찾아준 봄비여!”라고 노래하듯이 “봄비”는 대지의 생명들을 일으켜 세운다. 그리하여 “봄비”를 맞는 대지는 부산스러울 정도로 흥겹다. 돌아오지 못하는 유한한 존재들에 대한 기억으로 비애감이 들기도 하지만 싱그럽고 유쾌하다.
화자가 “봄비”를 맞는 대지를 노래하는 것은 자기애가 있기에 가능하다.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에 봄날을 긍정하고 즐거워하며 함께하는 것이다. 따라서 화자의 자기애는 자연의 질서를 따르고 있다. 자기 자신만을 이기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와 결합해 서로 상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쏟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기대한다. 베푸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받는 데에서만 기쁨을 느낀다. 이기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지만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한다. 이에 반해 자기애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자신처럼 사랑한다. 자신을 사랑하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을 힘 있게 사랑하는 자기애는 창창하고 광활한 하늘을 추구한다. 자신을 사랑하기에 자연의 이치를 따라 다른 존재들도 사랑하는 것이다. 따라서 화자가 사랑하는 다른 사람의 얼굴에는 그의 모습이 들어 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만큼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다른 존재들을 품는 일은 쉽지 않지만,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에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리하여 결코 포기하지 않고 대상애로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만큼 김준엽 시인의 자기애는 절실하고 근원적이고 항구적이고 그리고 지향적인 것이다.
맹문재(孟文在)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론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지식인 시의 대상애』『현대시의 성숙과 지향』『시학의 변주』『만인보의 시학』『여성시의 대문자』『여성성의 시론』,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물고기에게 배우다』『책이 무거운 이유』『사과를 내밀다』『기룬 어린 양들』 등. 현재 안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