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2:1-13절) 이 같이 큰 구원 우리나라 유명한 산악인(山嶽人)이 히말라야 등정을 하다가, 어느 높은 산에서 같이 갔던 일행이 모두 강풍에 날려 절벽에 떨어지는 바람에 모두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높은 산에서 부는 폭풍이 얼마나 세고 무서운지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등산가가 절벽에 매달려서 떨어지게 되었을 때, 천사가 나타나서“내 손만 잡고 따라오면 산다.”고 한다면, 죽자고 그 천사만 바라보고, 그의 손을 붙잡고 살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경험을 실제로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비참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천사가 모세에게 나타나서 “너는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면서“너는 내 말만 듣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천사가 시키는 대로 했기 때문에 애굽에서 나올 수 있었고, 광야에서도 살고, 가나안 땅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희들 앞에는 항상 천사가 같이 갈 텐데, 절대로 그 천사를 노엽게 하거나, 불순종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천사를 불신(不信)해서 여러 번 죽을 뻔 했습니다.
이 천사는 여러 번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집(固執)에 화가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죽이고, 새로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절벽에 매달려 있는데, 천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찾아와서 우리 손에 보석(寶石)을 쥐어주면서 꼭 하나님을 찾아가서 보여드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 대신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벽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찾아가 그 보석(寶石)을 보여드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광야에서 살아남는 것도 큰일이었고,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더 큰 일이었습니다. 그 두 가지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과 천사가 있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律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곧 천사를 붙잡아 주는 약속(約束)의 표시(標示)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난 후에 보니까 율법(律法)만 가지고는 도저히 가나안 땅을 지켜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나라와 같아지려고, 하나님의 율법(律法)을 버리고, 우상(偶像)을 섬겼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천사가 떠나면서 이스라엘은 모두 망(亡)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자고 율법(律法)을 붙들었더라면, 천사가 끝까지 지켜주었을 텐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만한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절벽에서 떨어지려고 매달려 있는데, 우리는 너무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찾아오셔서 같이 매달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보석(寶石)을 주면서 우리가 영생(永生)에 들어가려고 하면, 자기가 떨어져야 한다고 하시면서 꼭 이 보석(寶石)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광야에서 살아남고, 가나안 땅을 차지하려고 하면, 율법(律法)과 천사만으로 충분하지만, 죄(罪)를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천국(天國)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야하고, 보석(寶石)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보석(寶石)이 곧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복음(福音)입니다. 만일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비싼 수천억짜리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있다면, 그냥 허술하게 손에 들고 다니거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수건으로 싸고, 가방에 넣어서 절대로 우리 몸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가끔 지갑을 흘리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 꽂았다가 잃어버리는 사람들도 있고, 반지(斑指)도 칠칠맞게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준 보석(寶石)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를 받아보는 교인들은 말씀을 헌 신발처럼 버리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복음(福音)을 버리고, 율법(律法)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을 버리고, 천사들을 만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저자(著者)는 3절)...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파리에서 작가(作歌)생활을 하고 있을 때, 자기가 애지중지하던 시(詩)와 소설(小說)원고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 원고(原稿)를 가죽 가방에 넣어서 다녔는데, 부인(婦人)과 함께 스위스 알프스에 갔다 오면서 부인(婦人)이 그 원고를 몽땅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헤밍웨이는 그 원고(原稿)가 너무나 아까워서 결국 부인(婦人)을 미워하고, 이혼(離婚)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福音)은 하나님 아들의 목숨과 바꾼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말씀을 믿으면, 죄(罪)의 절벽에서 구원(救援)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福音)을 이 세상의 어떤 돈이나, 권력(勸力)이나, 심지어는 우리 목숨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마음은 세상에 성공(成功)하는 일에 있고, 사람들의 명예(名譽)를 얻는 일에 다 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도 잃고, 하나님 자녀의 지위(地位)도 잃게 될 것입니다.
Ⅰ.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보응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 세계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민족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이 있지만, 하나님은 애굽에서 노예(奴隸)생활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셔서 하나님 자신을 알려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겪게 하시고, 무려 40년에 걸쳐서 광야를 통과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하신 것은 그들이 받은 구원(救援)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전염병(傳染病)을 퍼트려서 단번에 모두 죽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다 나오게 하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모르고,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주 시시한 기적(奇蹟)부터 행하셨습니다.
즉 나일 강(江)물이 피가 되는 것은 엄청난 것이지만, 그것은 애굽의 요술(妖術)사들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출7:22). 그 이후 하나님은 개구리, 이, 파리, 메뚜기, 우박 등 이런 식으로 점점 더 강도(剛度)를 높여가셨습니다.
그러나 애굽 왕(王) 바로는 식물(植物)이나, 가축(家畜)이 다 죽어도 아직 돈이 있으니까 얼마든지 그것들은 다시 사면,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바로는 끝까지 고집(固執)을 부리고, 하나님의 재앙(災殃)의 기적은 무려 열 번이나 내리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바로와 그의 백성들의 처음 난 것들이 다 죽게 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길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에서 추격하는 애굽 군대(軍隊)를 보고, 모세를 향해 미쳤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그 길로 갔기 때문에 바다가 갈라지는 것을 보게 되고, 그 가운데를 육지(陸地)처럼 걸어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애굽 군대(軍隊)는 바다가 합쳐지는 바람에 모두 다 바다에 빠져 죽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너무나도 하나님의 은혜(恩惠)를 잘 잊어버리기 때문에 조금만 눈앞에 어려움이 생기면, 하나님을 의심(疑心)하고, 원망(怨望)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恩惠)를 잊지 않도록 좋은 기억(記憶)을 붙들어 매야 했지만, 잠시 동안의 어려움과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그들은 어린아이처럼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서 전부 울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고기를 먹되, 하루 이틀이나 열흘이 아니라, 한 달 동안 먹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가축을 다 죽여도 한 달은 먹을 수가 없고, 바다에 있는 고기를 다 잡아도 한 달은 먹을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하나님의 손이 짧아지기라도 했느냐?”고 말씀하시고는 밤새도록 바람이 불게 하더니, 저녁에는 온 이스라엘 백성 주위에 메추라기가 수북하게 쌓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물이 없다고 원망(怨望)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라도 그 더운 날씨에 마실 물이 없이 며칠을 돌아다니면, 짜증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불신(不信)했습니다. 이때는 모세조차도 하나님을 약간 의심(疑心)했습니다. 그것은“우리의 생명은 여기서 목이 말라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바위를 치라”고 했을 때, 모세는 화를 냈습니다. 즉 모세는 무리 앞에서 화를 내면서 두 번이나 바위를 친 것입니다.
그때 물이 쏟아져 나와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가축(家畜)들이 다 그 물을 마셨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그 행동을 용서하지 않으셔서 모세는“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는 달라야 하고, 기도 응답을 체험한 자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을 주시고,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앞의 현실만 보고, 너무나도 쉽게 하나님의 말씀과 기적(奇蹟)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2:1절)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 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어떤 사람이 강(江)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다른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건져서 간신히 살게 되었다면, 그는 다시는 물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물에 빠졌던 사람이 또 물에 빠져서 떠내려가면서 “사람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면, 이 사람은 조심성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 목숨의 가치(價値)를 너무나도 장난스럽게 생각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물에 빠져서 떠내려가고, 절벽에 매달려서 죽을 뻔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주의 깊게 돌아보며, 살아야 할 의무(義務)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의 희생(犧牲)덕분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2:2절)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여기서“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은“율법(律法)”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律法)의 말씀만 붙들고 있는 이상, 절대로 천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적의 숫자가 많은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律法)의 말씀만 가지고는 적(敵)을 물리치고, 가나안 땅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위 민족에게 잘 보이려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偶像)을 섬기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천사의 능력은 없어지고, 하나님의 심판(審判)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요시야 왕(王)은 성전(聖殿)을 수리하다가 왕하22:11절)두루마리 율법 책을 발견하고 옷을 찢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한 일이 모두 망(亡)하는 짓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王)의 신하(臣下)들은 여선지 훌다에게 보내어 이 백성의 살길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안 된다”고 하시면서 그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은 포로로 붙들려가야 정신(精神)을 차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율법(律法)의 말씀을 지키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멸망(滅亡)당하고, 포로로 붙들려가고 맙니다. 그 이유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Ⅱ.하나님의 아들의 복음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를 애굽의 포로(捕虜)상태에서 구원(救援)해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나, 우리에게 가나안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의 죄(罪)를 영원히 씻으시고, 영생(永生)을 주시며, 하나님 자녀의 지위(地位)를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그냥 천사를 믿는 것처럼 믿고 따라간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죄(罪)를 대신해서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피가 없으면, 죄 사함도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면서 우리에게 보석(寶石)을 하나씩 주셨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의 목숨과 바꾼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성경책 옆을 전부 붉은 색으로 칠했습니다. 이것은 전부 피가 묻어 있는 말씀이고, 예수님의 목숨과 바꾼 말씀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구주(救主)로 영접(迎接)하여 믿고, 이 말씀을 믿으면, 모든 죄(罪)를 다 씻음 받고, 영생(永生)을 얻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살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權勢)를 얻게 됩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좋은 대학(大學)을 졸업하고, 결혼(結婚)을 잘 하고, 좋은 직장(直腸)에 취직이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은 애굽에서 잘 사는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에서“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어서 잘 사는 것보다는 히브리 노예로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했다.(24-26)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애굽에서 잘 살고, 바벨론에서 사치(奢侈)하면서 사는 것을 행복(幸福)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이같이 큰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벌레 같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말씀을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에는 예수님같이 살기 위해서 집을 팔아서 바치고, 지팡이 하나 들고, 전도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2:3절)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복음(福音)은 이 세상의 학문(學文)이나, 성공(成功), 돈이나, 권력(勸力)과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학벌과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이 세상의 돈이나, 성공에 정신이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하면, 그것은 우상숭배(偶像崇拜)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모세 때, 고라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레위인 이었는데, 레위인은 제사장이 될 수 없었습니다. 제사장은 오직 아론과 그의 아들들만 될 수 있었고, 레위인은 보조(步調)하는 일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라는 모세를 대적(對敵)하면서“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똑같은데. 왜 제사장을 하지 못하느냐?”고 불평(不平)했습니다.
그때 모세는 고라에게“너희가 하나님께 수종 드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데, 그것으로 감사하지 못하고, 제사장까지 하려고 하느냐”면서 다른 사람들은 그 주위를 물러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땅이 갈라지면서 고라와 동조(同調)했던, 사람들은 다 삼키고, 다시 땅이 다물어졌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네가 이스라엘 백성을 죽였어”라고 원망하니까 전염병(傳染病)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아론이 얼른 분향(焚香)하는 그릇을 들고, 산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섰을 때, 비로소 전염병(傳染病)이 그쳤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만 사천 칠백 명이 죽은 후(後)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작은 일에도 감사(感謝)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는 듣지 않은 자와 달라야 하고, 은혜 받은 자는 은혜 받지 않은 때와는 달라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지려고 하는 것이 패역(悖逆)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보물(寶物)을 주시고, 죽기까지 하셨는데, 우리가 이 말씀을 등한히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복음(福音)은 주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이고, 주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 전해준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히브리서의 기자(記者)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저자(著者)는 주님의 말씀을 들은 자에게서 들은 것입니다.
2:4절)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예수님의 복음(福音)은 기적(奇蹟)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죽었다가 살아나신 자체가 기적(奇蹟)이고, 우리에게 성령(聖靈)이 오신 것도 기적(奇蹟)입니다. 우리가 설교(說敎)하고, 찬양(讚揚)하고, 봉사(奉事)하는 것도 기적(奇蹟)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믿지 않다가 자살(自殺)하고, 지옥(地獄)으로 갔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우상숭배(偶像崇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는 것은 이 큰 복음(福音)을 등한히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는 보석(寶石)의 가치(價値)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죽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죽도록 예배를 사랑해야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보석(寶石)을 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영국(英國) 여왕(女王)이 직접 와서 어떤 사람에게 수백 캐릿의 다이아몬드를 주었는데, 그 가치(價値)를 모르고, 남에게 줘버리거나, 흘러버렸다면, 그는 바보입니다. 그는 지옥(地獄)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상속자(相續者)가 될 수 있었는데, 그 가치(價値)를 모르는 바람에 지옥(地獄)의 종이 되고 만 것입니다.
Ⅲ.하나님의 상속자 만약 어떤 동네의 가난하게 사는 집 아이가 어떤 큰 나라의 왕자(王者)로 입양(入養)되었다면, 그는 모든 것이 달 라 지게 될 것입니다. 그 아이는 이제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왕궁(王宮)에는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 너무나도 많이 있고, 부족한 것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왕자(王者)다운 품위(品位)와 아주 넓은 마음일 것입니다.
만일 입양(入養)된 왕자(王者)가 다른 어떤 왕자(王者)보다 더 품위(品位)있고, 더 넓은 마음과 지혜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한다면, 신하(臣下)들은 왕(王)의 통찰력(洞察力)에 탄복(歎服)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우리는 그런 왕자(王者)로 입양(入養)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入養)된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이나, 세상 성공(成功)에 대한 걱정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품위(品位)와 아주 넓은 마음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純宗)의 자세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천사들을 능가하게 됩니다.
2:5-6절)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 게 하심이 아니니라.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하나님은 온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시키지 않으십니다. 장차 온 세상을 지배(支配)할 사람들은 우리 성도들이고, 교회에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노인(老人)들이요, 청년(靑年)들입니다.
우리는 원래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도 되지 못하는 벌레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하시고, 우리를 돌보시고, 사랑하셨습니다.
2:7-8절)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여기에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말합니다.
그는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다고 했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추락(墜落)하신 것입니다. 즉 그는 인간이 되셨고, 무시(無視)를 당하셨고, 채찍에 맞으셨고, 십자가 위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으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셨고, 가장 존귀한 곳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고 올라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보석(寶石)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子女)라는 표시(標示)입니다.
2:12절)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주님은 우리를 형제(兄弟)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형제(兄弟)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子女)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품위(品位)이고, 믿음이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풀과 같고,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음 13절 말씀입니다. 2:13절)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여기“내가 그를 의지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물론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주(主)만 의지하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사실 13절은 히스기야 왕(王)이 앗수르 군대(軍隊)가 쳐들어왔을 때, 했던 말입니다.
그때 인간의 힘으로나, 생각으로는 절대로 히스기야가 앗수르 군대(軍隊)를 물리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히스시야는 주(主)를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천사 하나가 내려와서 앗수르 군대 십팔만 오천 명을 하룻밤 사이에 죽였습니다.
우리는 주(主)님을 믿습니다.“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고 약속(約束)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엄청난 구원(救援)을 소홀히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의 품위(品位)를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찬송가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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