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시간 마음공부 주제는 "애쓸 것 없다, 이대로 완전하다" 였어요.
복음은 곧 우리는 거룩하다는 것,
의롭다는 것이고 이뜻은 나는 이대로 완전하다.
하나님께 품어진 존재이고 수용받는 존재임을 기억하고 온전히 믿는 것.
그 품안에 있음을 눈 뜰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인정 그 모든 것에서 자유해진다고 얘기하셨지요.
이대로 완벽하고 완전한 존재임을 안 후, 예수로부터 본받으라고 하는 것은 세상살며 맞춰가야할 것들이 있다.
그것은 "조화"라는 차원에서 그러하다셨지요.
이미 온전하니 내 존재가치평가를 위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위해 겸손히 마주하는 모든 것을 스승삼아 배우며 살아가는 모습, 학생심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라 셨지요.
내 존재를 증명하기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것,
스스로를 재단하고 비판하는 것,
내가 나를 믿지 못해서 외부에서 확인하려는 모습
스스로를 볼때 불안전하고 미완성이기에 더 발전해야해 라며 재촉하는 모습,
두렵고 불안한 모습은 내 결핍을 채우려할때 드러나는 모습이고
그 모든 것들이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지 못하는 모습이라셨어요.
쉼을 갖지 못하는 모습이지요.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쉼"에 대한 이해가 새로워진 시간이였어요.
내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깊이 인식하는 것. 외부시선으로 자유해지는 것.
다른 어떤 것들로도 내 존재는 오염되지 않는다는 것.
그럴때 참 쉼이 있다는 것을요.
진짜 잘 쉬는 사람은 열심히 할때는 최선을 다하고 멈춰야할 때는 멈출 수 있는 때를 아는 것이라는 것.(전도서 말씀처럼)
자연의 흐름처럼 햇살이 비추는 날이 있으면 흐린날이 있듯이 비난이 있으면 칭찬도 있듯이
비난에는 분노하고 칭찬에는 기뻐하면서 갈구하는 모습이 아니라, 거기에 출렁이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달라질 것이 없음으로)
음양의 흐름처럼, 자연의 흐름처럼. 흐르듯이 그런것들을 바라보는 것.
들으면서 찻집 생각도 많이 났어요.
찻집 초반에 긴장도 많이 하고 잘해야한다는 애씀이 있었는데,
그만큼 소진도 많이 되고 정작 중요한 것들을 살피지 못한 모습들...
내 애씀을 함께하는 이들이 알아주길 바랬던 마음 있었지요.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하고 그 안에서 속 시끄럽게 속앓이 하기도 하고요.
제 안에 삐죽삐죽 솟아난 날카로운 모습, 편협한 모습 마주했고요.
사건 만나, 또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마음들 자연스레 내려놔지는 요즘, 밝게 웃으며 서로의 삶 나누는 지기모임 시간,
한주에 1, 2회지만 찻집에서 일하는 시간이 즐겁다는 지기들의 고백이, 제겐 위로의 시간이기도 해요.
마음공부배움들으며 많이 바쁜 지체가 떠올랐어요.
바쁘게 많이 애쓰고 살았던 찻집 초창기 제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어요.
그때 제가 건너들었던 말이 "선아는 바쁘니깐,,," "선아 바쁘잖아" 였지요. 그걸 듣고 아차 싶었어요.
워낙 쉴 때는 잘 쉬는 편이지만 그때 기운은 그렇게 지체들에게 비춰진것이지요.
그때 그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곧 품, 여유, 나눌 수 있는 시간, 마음등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깐요.
그 지체를 보면서도, 바쁠수는 있지만, 어떤 기운으로 그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무심코 많이 하는 말들...
중요한 것이 놓쳐지고 있지는 않은지... 그 흐름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혹은 안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기운이 점차 더 더 생하는 기운이 아니라 그 반대로 흐르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함께 할 수 있을까 생각해요.
기도하며 때를 만나 잘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예요.
첫댓글 늘 선아님이 안식과 쉼속에 거하실 때
(이 말은 마음이 항상 고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파도가 치고 폭풍이 불어도 그 속에서 거부나 저항 없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선아님이 쉼과 안식 속에서 지내실 때
지체들이 그 안식을 느끼며 점점 안식을 찾아갈 거에요.
인자는 안식일에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