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에게 영어로 한국어 가르치기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약간의 막막함이 있었다. 나의 모국어를 전혀 다른 언어체계에 준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가르친다는게 조금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내가 한국어를 잘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언어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에게 잘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느껴지는 장벽은 단연 "한글"이다. "뿌리깊은 나무"라는 드라마를 보며, 한글의 쉬움과 단순함이 그 위대함이라는 것을 깨닫긴 했지만 실제로 영어권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것은 이 문자가 절대 쉽고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한국어를 구사하고 단지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될지 몰라도 말을 할 줄 모르고 이미 다른 언어로 사고하는 사람들에게 한글이란 그렇게 단순한 철자가 아니다. 한 가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논리성"이다.
한글을 통해 소리를 내는 과정은 정말 논리의 과학이다. 자음과 모음의 소리를 익힌 사람은 소리의 조합을 추측해낼 수 있다. 즉 기본적인 음값을 익히면 외우지 않아도 스스로 합성해서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어 있다. 물론 그들에게 발음은 힘겹게 넘어야할 또 하나의 장벽이기도 하지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가장 많이 염두에 두는 것은 내가 영어를 배우던 과정이다. 모국어와 반대 어순을 가진 영어를 배울때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쏟아부었는가? 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는가? 성인이 되어 취득한 언어는 결코 모국어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해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열정을 낭비했는가?
새로운 class의 첫 수업을 할때마다 난 학생들에게 질문을 한다.
"왜 한국어를 배우려고하는가?"
그들의 모티브는 대부분 한국연예인, 드라마, 영화 등이다. 한류열풍으로 인해 인기몰이를 하는 한국의 문화 컨텐츠들을 좀 더 가까이더 더 많이 이해해보겠다는 의도다. 다시 말해, "재미"로 배우는 언어인 것이다.
내가 영어를 목숨 걸고 배우려했던 모습과는 단연 같을 수 없다. 난 영어를 그저 재미로... 배우지는 않았다. 미드따위는 쳐다볼 겨를도 없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나는 지금도 미드가 100% 이해되지 않는다.
재미로 배우는 언어치고 한국어는 시작부터 너무 어렵다. 조사등의 문법이 나오기 시작하면 나는 벌써 학생들의 얼굴에서 Panic이 읽힌다. 한편으로는 약간의 쾌감도 있다. '그래~ 너희도 한번 느껴봐. 이제는 알거야. 토종한국인이 영어를 배우는게 얼마나 어려웠을지...'
지난 3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나는 조금씩 그들의 언어를 그리고 나의 언어를 한발 짝 깊이 이해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1주일에 한번, 마치 취미생활을 하듯 시작한 이일에 조금씩 열정이 생기기 시작한 듯하다.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언어로 내 모국어를 가르친다는 것... 그리고 기대해본다. 어떤 결과를 얻게 될 지...그들에게도 나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