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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곁에 있는 산림은 인간이 숨 쉴 수 있는 산소를 생산하고 배출한다.
1ha(100m*100m)의 산림에서 년간 16톤의 탄산가스를 흡수하고 12톤의 산소를 배출하는데
사람에게 하루에 필요한 산소의 양은 0,75kg이며 1ha의 산림에서 45명이 1년간 숨 쉴 수 있는 산소를 생산한다
이른 아침 첫 버스로 경남 창녕에 도착 터미널에서 택시로 화왕산 아래 도성사까지 올라가
단 한 번의 오름길만 기다리는 화왕산 깔딱 고개로 오른다.
화왕산 깔딱 고개 코스로는 거의 30년만에 오르는 길이다.
30분정도 헥헥 거리며 정상 아래 성터 옆으로 올라와서
불의 전설을 만들어낸 화왕산 정상이 숨 가쁘게 보인다.
오래전 화왕에 억새를 태워야만 풍년이 든다고 했던가. 아니면 미신인가
창녕군에서 "화왕은 예로부터 불의 산이라 해서 불이 나야만 풍년이 든다"라고 어느 정신 나간 공무원이 기획했던가?
정월 대보름날 불놀이를 한 기억이 난다.
2009년 결국 화마로 인해 5명 숨지고 60여명이 다친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던 화왕이다
정상 인근에서 100대 명산 걷고 계신다는 젊은 분의 도움을 받아한 장 담고
지나간 경로
이제 남은 하천은 대략 15개 정도이다
용못과 관룡사가 자리하는 관룡산 방향과 영취산
영취산 넘어가면 밀양시 무안면 표충비각이 있는 곳이다
보이는 곳은 관룡산
신라 고승 원효대사가 화엄경을 설파한 관룡사가 있어 관룡산이라 부른다는 설이 있고
신라 선덕여왕의 아버지 진평왕 때 관룡사를 창건할 무렵 화왕산 연못에 사는 용이 하늘을 날았다고 해서
관룡사라 붙여진 신라 8대 사찰의 하나
창녕 조 씨 득성 설화지
화왕산은 창녕 조 씨의 전설이 담긴 전설이 있는 곳이며
정상에는 세 개의 연못과 아홉 개의 샘이 있다.
억새밭 가운데 사각으로 보이는 곳이 연못임
때는 신라 25대 진평왕 때의 일이다 경주 이 씨 한림학사 이광옥의 예향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이쁘고 총명했지만
몸이 아파서 늘 고생을 했는데 어느 날 선인이 찾아와서 창녕군 화왕산 연못에 가서 목욕을 하고 기도를 하면 몸이
쾌차할 것이라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이광옥은 좋은 날을 받아 예향이 화왕산에서 가서 목욕을 하고 정성껏 기도를 하게 하였는데
기도를 하는데 중에 별안간 안개가 짙게 깔리고 그곳에서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어찌어찌해서 화왕산에서 기도를 마치고 경주로 돌아오니 몸이 쾌차되었지만 태기가 있었고 열 달 뒤에 남자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는 인물이 수려하고 총명하였고 겨드랑이 아래에 조(曺) 자란 글씨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아이의 아버지가 나타나 "나는 화왕산 연못의 용의 아들 옥결(玉訣)이다"
아이를 잘 키우면 크게 성공하고 자손이 번성할 것이다"하고 사라졌단다.
용의 아들이 안개 자욱한 날 연못에서 사고 치고, 씨는 뿌려 놓고 아이는 처녀가 키우고
어찌 보면 무책임하다 할 수 있는 이야기 요즘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어쨌거나 이 아이가 창녕 조씨의 시조 계룡(繼龍)이시다.
창녕 조씨 모든 분들은 화왕산 용의 후손임
창녕 조씨 용못에서 본 화왕산 정상 방향
연못에서 흘러나온 물이 보이고
화왕산 성터
산성은 2.7km 정도이며 가야시대 때 축조한 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이곳에서 싸웠다고 한다.
청녕조씨득성지지 표시석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
화왕산성
둘레 2,7km
비하 가야(창녕의 옛 이름)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창녕의 군사적 중심지로 활용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근거지로 삼은 곳이다.
관룡산 방향이 보이고
계성천은 화왕산 동쪽 옥천 계곡으로 빠져나가
산아래 마을로 향한다
화왕산성을 보며
언제 다시 올지 기약없는 날을 약속하며
성에서 내려오니 계곡으로 등산로 길이 곱게 이어진다
그동안 수 많은 하천을 내려오며 가시밭길 아니면 거친 경사면을 지나왔는데 이보다 더 편안한 길이 있었던가 싶다
주말이지만 올라오는 등산객은 없고 계곡으로 물소리만 들린다
암반 길 따라 내려오니 진달래가 곳곳에 피어있고
물은 암반위를 옥구슬 구르듯 내리고
오늘 계성천 길은 칡덩굴은 없고 좋은 등산로가 바로 옆에 있으며
군데군데 암반과 고여있는 물의 조망이 바라 보인다.
멀리 이상하게 보이는 바위가 있어 찾아 가보기로 하고
계곡 아래 큰 바위 얼굴 보이시죠
화왕산 큰 바위 얼굴
2013년도 이곳 옥천 계곡에서 여인의 얼굴을 닮은 바위돌이 선몽에 의해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하늘을 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여인의 모습을 닮은 바위다.
태풍 매미 때 땅속에 묻혀있던 바위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으로 추정한다.
어찌 보면 화성에 사는 외계인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하늘을 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여인의 모습
키만 맞으면 입맞춤이라도 한번 해드릴 수 있는데
올라갈 수가 없다.
옥천 계곡은 안반으로 되어있어
앉아 놀기 딱 좋은 곳
숲 속에 자연 학습장이 보이고
옥천 용소폭포
깊이는 대략 2,5m 정도의 깊이다.
금방이라도 화왕산 정상에 자리하는 용 늪으로 오를듯한
불의 용이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다
계곡길은 이어지고
옥천마을에서 본 관룡산의 암릉구간
계곡 따라 내려가면 관룡산의 거친 암릉이 웅장하게 서있고
관룡사에 가면 꼭 보고 와야 할 용선대가 산 중턱에 있다.
통일신라시대 작품 관룡사 용선대 석조 여래좌상
용선이란 죽은 사람이 저승 갈 때 타고 가는 배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용선이 의미하는 것과 같은 의미인지 알 수 없다
아주 점잖게 앉아 계시는 부처님의 모습은 중생들을 편안하게 바라보는 인자한 모습 그 자체이시고
옥천 솔밭가든을 지나며 시멘트 임도길을 건너야 하는데 물이 시멘트를 타 넘으며 흐른다. 봄바람은 살랑살랑 불고
내려가는 길에 오래전 산을 가르쳐준 친한 친구가 수행하는 산문이 영취산에 있어 전화를 드리니 마침 사시예불
시간이라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동안 수행에 방해될까 전화도 자주 못 드렸는데 오늘 이 길을 지나며 전화를 했으니 예불 시간이 끝나면 연락 오겠지... 라며
하천 옆에 자리잡은 개인 주택인데 연못에 하늘과 수양버들이 내려앉은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잠시 구경해본다
옥천 저수지와 좌측으로 영축산 자락인 법봉이 보인다.
저곳 중턱쯤에 스님이 되고 싶다며 산문으로 들어간 친한 친구가 수행하는 곳이다.
서로가 홀가분하게 살던 때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는데 친구가 통도사에 출가하고 난 다음에는 수행에 방해될까
연락을 자주 못 드리는 처지가 되었다.
그동안 얼마 만큼 공부를 하셨을까? 스님 중에서도 땡중이 아니라 진짜 중 같은 중으로
면도날처럼 기(氣)가 느껴지는 살아있는 중으로
세상에 잠시 스치듯 지나가는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중으로 그리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벗이자
대쪽 같은 스님으로써 백척간두에 홀로 서서 허공에 한발 더 나아가는 서슬 퍼런 중이 되기를 바라본다
잠시 산문을 바라보며 친구를 생각해본다
때마침 사시 예불이 끝나셨나!
"친구님 어디시냐!"며 연락이 온다.
지금 인근을 지나는데 얼굴이나 한번 봅시다.
도로 아래에서 마중 나온 스님의 차를 얻어 타고 1km가량 오르막을 오르니 길가에는 낙락장송이 줄지어 서서 반긴다.
친구가 기거하는 *련사에 도착해서 부처님이 계시는 큰 법당에 들어 큰절하고 나와
절은 아담하며 주위로 커다란 소나무 군락을 이루었으며 뒤로는 영추산이 자리한다.
오랜 벗이자 지금은 대쪽 같은 스님이 되고자 통도사에서 사 미계(沙彌戒)를 받고 계성천 인근에서 수행 중이시다.
사시예불 마치고 보살님들이 준비해주신 절밥으로 모처럼 스님과 함께 공양해본다
이게 얼마 많이던가 거의 20년 만에 친구와 같이 겸상을 하다니
지금은 출가를 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있어 서로 존댓말로 대해야 하지만
늘 고마운 친구다. 오래전 산을 가르쳐준 친구이기에 그 고마운 마음은 끝이 없다.
오래 앉아있고 싶은 마음이지만 수행해야 할 스님이기에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나 산문을 빠져나온다.
이렇게 헤어져야 하나 싶은 마음에 자꾸만 뒤돌아 보고 싶어 진다. 그러나 어쩌나 서로가 뒷모습을 보여 주기 싫어
스님은 부처님이 계시는 마음속으로 다시 올라가시고 검은 아스팔트 도로가로 내려와 하늘만 한번 쳐다보며 다시 물을 바라본다.
스님 이 글을 보시겠죠
"스님!~ 부처님께 기도 하시다가 불현듯 이 친구가 생각나거든 작년 이맘때 돌아가신 아버님 좋은 세상에서
잘 지내시게 염불이나 한번 읊어 주소!
그리고 스님 꼭 큰스님 되시기를 기원드리며
훗날 좋은 날 수행에 방해되지 않은 날 영취산 중턱 어느 바위에 걸터앉아 차나 한잔 하도록 합시다.
물 가장자리에 마당바위가 길게 이어진다.
작은 소반 위에 막걸리 몇 병 올려두고 풋고추에 된장 찍어 한잔하며 이야기 나누고 싶은 친구
오래전에 무던히도 다녔었는데 고개 돌려 산문을 올려다보니 푸른 소나무 사이로 절간 지붕만 조금 보인다.
창녕 배리 배롱나무 군락지
임진왜란 때 창녕과 영산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던 신초 장군이 문암정을 짓고 노후를 보내면서 정자 아래에
심은 나무들이다. 한여름 분홍의 꽃들이 주저리주저리 맺힌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수년 전까지만 해도 배롱나무 군락을 이루며 무성했으나 지금은 조릿대 숲과 잡목이 침범하여 현재 36그루가 남아있다
절벽에 자리 잡은 배롱나무 군락지
멀리 보이는 산은 영취산이며 그 넘어 흐르는 물은 모두 밀양 청도천의 수계다
벚꽃이 피어있는 산책길
마을을 지나왔지만 쓰레기는 하나도 없고
하천가에 다슬기 잡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아주머니 뭐 좀 잡으셨어요"
"예!~다슬기요"하며 잡은 걸 보여 주시는데 꽤 많이 잡으셨다
지방하천 3,773개 중 하나인 계성천 벚꽃길 4,3km
창녕군 계성면
잠시 이곳 계성면 환경과 소개를 좀 할까 합니다.
그동안 전국의 국가 하천 , 지방 하천 117개들 다니며 느낀 점이 있다면
하천변의 불법 쓰레기 무단 배출과 불법 소각이 심했는데
계성면 환경과에서는 인근 주민들 계도와 시간 나는 데로 하천변 쓰레기를 공공 근로자분들을 투입해서 모두 수거한 것 같다.
제가 가는 날은 전구간에 걸쳐 쓰레기가 하나도 없더군요
제가 지나간 날은 토요일 그다음 날인 월요일에도 환경과 공무원분들과 공공 근로자 분들이 하천변을 청소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후기를 통해 계성면 환경과 담당 공무원(여성)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덕분에 아주 깨끗한 하천 구경하고 왔습니다.
물 따라 내려가며 인근에 자리하는 계성 고분군을 잠시 찾아본다.
창녕 계성 고분군
창녕 계성 고분군은 창녕 일대에 번성했던 비화가야(창녕의 옛 이름이며 6가 야국의 하나)의 대규모 무덤군이다.
비화가야는 삼국사기 지리지 화왕 군조를 보면 비자화, 비사벌이란 이름이 나오는데 모두 창녕지역을 뜻하며
경상남도 창녕 남부 지역의 중심으로 5-7세기에 비화가야가 번성했으나 이후에 신라에 귀속되었다.
비화가야 고분군은 영축산 서북쪽 끝에서 계성 평야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있으며 1974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2019년도에 사적으로 승격되었다
제방길을 걸으며 잡풀이 무성하지만 고라니 몇 녀석이 다닌 흔적이 있어 그런대로 걸어갈 만하다.
물 수량은 얼마 안 되지만 쓰레기는 하나도 없고
지나온 하천과
좌측으로 화왕산-바로 앞 구헌산-멀리 관룡산-그 옆에 영축산-우측 앞 영추산
미나리 단지를 지나며
미나리는 거의 끝물이라
창녕군 장마면 화영교에서 본 하천길
물은 거의 간장색을 하고 흐르지만 하천길에는 상류로부터 떠내려온 비닐 한장 보이지 않는다.
멀리 산너머는 창녕 남지읍이니 남지의 뒷산이 도초산쯤 될 것 같고
고라니가 다니던 제방길
한동안 이런 길이 이어진다
계성천 습지 구간
수양 버드나무가 물속에서 자라는데 물은 저곳을 지나면서 엄청 흐려진다.
물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연 물이 되어있고
남지읍 성사리 공영교에서 본 지나온 습지구간
남지읍이 보이고
좌측으로 무릉산과 작대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가운데 안국산인듯하다
지난날 한여름에 지맥 길을 걸으며 안국산에서 잡풀과 가시밭 속에서 한발 짝도 못 움직 정도로
갇혀 조난당할 뻔한 적이 있던 곳이라... 에구 무시라
지나온 하천길
낙동강 건너에 자리하는 어시미산-함박산 줄기-시모산-무명봉-무릉산-작대산
송진 쇠 나루 공원의 늙은 느티나무
주말이란 가족분들과 그 외 사람들이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며 찾아온 곳이다
자전거 타고 쌩쌩 달리는 분들도 많고
불의산이라 불리는 화왕에서 흘러온 계성천이 낙동강 품에 안기는 곳에서
뒷 각산과 낙동강 건너 어시미산-시모산-무릉산-작대산
바람은 불고 배는 고프고 집에 갑니다.
고만 집에 가자
작은 하천이 큰 품에 안기기까지 숱한 시련을 안고 흘러 왔으니
나 역시 집에서 기다리는 두 녀석을 품에 꼭 안으러 가야 할 시간이다.
물은 그렇게 맑지 않았으나 모처럼 쓰레기 없는 하천을 구경하고 크게 한번 웃어 본다.
오늘 하천을 걸으며 계성면 환경과 직원분들의 관심이 얼마나 컸는지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내일은 계성면 환경과에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겠다.
첫댓글 방장님. 저의 고향 앞 둑길을 따라 남지까지 걸어셨군요.저쪽에 친구네 집이 보이네요.
어렸을땐 모래가 가득해서 축구.야구 등등 게임도 하고 목마르면 바로 마셨던 깨끗한 냇물이었지요.
새마을운동때 어른들께서는 냇가 그 자리에서 벽돌을 만들(찍)었어요. 재첩도 10년전까지는 아주 많았지요.
저 다리(도동교)를 매월 통과합니다(부모님 계심).
지난번 토평천과는 달리 깨끗한 계성천을 지나셨다니 기분좋습니다!
덕분에 화왕산 정상 오랜만에 봅니다.
간만에 깨끗한 하천을 보네요.
계곡도 멋진 듯하고요.
수고 많았습니다.
계성천..
아직까지 둑방길에서 소치는 곳은 그리 많치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만큼 깨끗하게 관리가 잘 되고 있어 보였습니다
친구녀석이 월령리에 있어서 가끔식 가는편인데 큰수양버드나무가 운치의 한몫을 더 하더라구요
근거리에 있는 화왕산에서의 창녕 영산 쪽 조망도 참 좋구요
수고 많으셨고 잘 봤습니다^^
방장님
화왕산은 30년도 더지난 시절에 올라본기억이 있는곳인데
사진으로만 봐도 감회가 새롭습니다^^
다른곳에 비해 깨끗한 계성천을 보니 그나마 마음이 좋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30년전 사진과 작년의 창원지부 정기산행 사진. 표지석이 다르네요.
당시( '90년~92년)고향 창녕읍이 근무지라서 평일엔 오토바이로 약수터에 다녀오고, 토.일요일엔 가이드 역할을 좀 했었지요. 대구에서 학생들이 많이 왔었어요.
@중산리 88년도에는 표지석이 없었던걸로기억됩니다~^^
좋은 사진과 스님과 방장님 인자한 사진 보고 갑니다.
항상 안산하세요.
방장님 쓰레기 없는 계성천 답사 축하드립니다.
화왕산에 내려오는 길이 워낙 좋아 저도 동행하고 싶었는데 이미 다녀오셨다기에 ㅠㅠ
2016년 7월부터 2017년 12월 까지 제가 1년6개월간 창녕에 근무하면서
화왕산을 2017년에만 70번 정도 올랐던것 같은데요
여러가지 산길을 다녀봤습니다.
두릅도 많이 있는데 ㅎㅎ
계성천이 낙동강에 합류되는 곳을 건너면 함안인데 근처에 어시미산이 보였겠죠
봄은 한층더 다가 오고요
아름다운 계성천에 흐름 잘보고 갑니다
고생 마니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