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총리와 최대통령의 갈등
1. 중앙정보부장 임명에 대한 갈등
신현확은 12.12사건
이후 군부의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하여 최대통령에게 붕괴된 중앙정보부조직을 재건하여 군을 견제시켜야 하며 중앙정보부장으로는 반드시 민간인을
임명하여 군의 정보기관인 보안사령부 전두환과 상호견제토록 하여야 한다고 3번씩이나 역설하였으나 이 정보가 새어나가 오히려 군에 의해 역공을
당했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어. 내가 세 번을 얘기했어 똑 같은 애기를. 그다음에 뭐가 나타났나 하면 타임잡지에
나오길 ‘최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을 군인으로 임명하려고 했는데, 신총리가 민간인으로 하하고 해서 임명을 못하고 늦어지고 있다’ 이래 났어. 그래
단 둘이 배석도 없이 한 얘긴데 우째 기사가 나느냐 이 말이요. 아 사실 그대로 저쪽(최규하씨)에서 일부러 흘리고 있구나, 속으로 그래
생각했어. 그래서 그 다음엔 아무말, 관여 안했지>
국내의 타임지는 계엄하의 언론통제로 모두 삭제되어 구멍이 난 채로
배포된지라 도쿄에서 직접 구해온 타임지를 통해 기사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전두환씨가 총리실로 찾아 와서 자신의
중앙정보부장 겸임을 양해해 달라고 했으나 반대했고 그럼에도 최규하씨가 전두환을 정보부장으로 임명하자 둘 상이에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 첫째 이 일은 총리 소관이 아니고 대통령 직속기관에 관한 것이니까 나한테 양해해 달라고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둘째 그러나 국가의 중요한 일이므로 내 의견도 참작하겠다고 한다면 “겸임하지 마십시오. 나는 최대통령에게도 그렇게
얘기했다. 겸임하는 것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도 좋지 않고, 국가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그랬더니 뭐 전두환씨가 겸무해야하는 이유가 이러고
저러고 설명을 많이 하더구만. 그런 이유가 전부 일리 없단 말이 아니다. 그게 일리가 있더라도 그 보다 더 결정적인 마이너스 요인이 있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나 안하는 것이 낫다. 내 그래 얘기했어. 그런데 한 일주일 만에 (전두환의 중앙정보부장) 겸무발령이 턱 났어.
그러니 내 권한이 아니니 항의 할 수도 없고, 단지 나는 (최규하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렇게
나간거야>
신총리 측근은 “최대통령이 전두환씨를 중정부장에 겸임발령한 날 신총리는 최대통령관 격렬한 언쟁을 벌였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나와 최대통령은 어떤 정치활동도 함께하지 않겠다”고 측근들에게 선언했다고 한다.
2. 개헌이후 최규하정권의
처신 입장표명에 대한 갈등
개헌에 대한 정치권의 공방이 시작되고 안개정국이라는 말이 나돌 때 신현확이 주요 인사를 초청 만찬을
하면서 새정부가 출범하고 나면 우린 다 물러가니까 안개정국이라며 정부를 의심하지 말라고 발언하자 청와대비서실에서 사람이 와서 ‘우린 물라난다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우리’가 누구를 의미하느냐며 묻길래 화를 내며 최규하대통령이 집권연장에 뜻이 있음을 확실하게 눈치챘다
한다.
<1980년 4월 24일. 신문에 안개정국이고 뭐고, 앞이 안보이고, 어떻게 할거냐 뭐냐. 하도 세상이 시끄럽고 말이
많아서 내가 몇 번 기자회견을 했지만 이래서는 안돼겠다 싶어 총리공관에 모든 신문사의 편집국장을 초청했어. 저녁을 먹고 내가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렇게 오라했다. 안개정국이다, 방향이 어떻다, 불안하다 전부 이러는데, 이것 보시오. 기본 반향을 몇 번이나 발표했는가.
미주국가에서 새 헌법을 만들고 새로 선거를 해서 정부를 만들고 국회를 구성한다고 했는데도 자꾸 앞이 안보인다고 하니...누가 당선될지 선거를
해봐야 알지 이걸 안보인다, 안개정국이다 그러면 어쩐단 말인가. 그랬더니 편집국장들이 “그것이 아니고 지금 정부가 해나가는 것이 진심인지
아닌지..” 그 때는 벌써 그런 말이 상당히 많이 나 있었어. “그러면 최대통령이 그냥 잡을 것인가. 신총리가 무슨 역할을 할 것인가. 이런
것도 의문이고” 뭐 이런 식의 얘기가 나온다 이 말이야. 그래 내가 얘기하기를, 그 점도 몇 번을 설명했는가. 나는 중립을 지키고 정부가
관리정부다. 새로 정부와 국회가 성립되면 우린 다 물러가겠다. 이것이 우리의 주어진 사명이라 생각하고, 사명완수하고 우리는 물러가겠다. 이런
약속을 몇 번이나 했나. 그래도 믿지 못한다면 어쩌나. 이래 얘기 했단 말이야. 그런데 그 이튿날 청와대에서 사람이 일부러 와서 “이거
‘우리’란 말이 무엇이냐” 하는 거야. 내가 ‘우리’란 말을 할 때는, 물론 나도 생각이 있지. 우리란 단수가 아니란 말이야. 복수지. 숙수가
뭐냐. 최규하와 신현확 그런 의미로 애기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청와대에서 일부러 와서 “우리가 무슨 의미냐”고 물어보는 것은 “왜 최대통령까지
끌고 가느냐” 이런 것이야.
그건 벌써 최규하가 대통령을 얼마 해보니 처음하고 생각이 달라졌다 이런 말이지. 그래 내가 화가 나서
고만 소리를 질렀지. “무슨 소리를 하고 앉았느냐. 청와대 사는 사람은 한국사람 아닌가. ‘우리’란 말도 모르나.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라고
그래” 하고 소리를 지르고 안ㅤㅁㅏㅆ났지. 그 후에도 내가 일체 말 안한 것은 내가 이 말을 하면 최규하씨가 또 그것이 무슨 의미냐. 왜 나까지 끌고
들어가느냐 하게 되고 결국 “최규하씨는 (대통령을) 더 할 생각이다” 내가 이래 주장하는 게 된다 이 말이지. 그래서 일체 말을
안했어. 또 일면으로는 본인이 그렇게 생각도 안하고 있는데, 주변에 둘러싸고 있는 사람이 그리 몰고 가기 위해서 하는지도
모르고...>
3. 신총리에 대한 여야당 3김, 재야 학생들의 십자포.
당시 내각의 국무위원들은 신총리를
중심으로 뭉쳤고 글라이스턴 미대사도 신총리를 자주 찾아와 시국의 흐름을 진지하게 상의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정치권일각에서는 실세 총리,
허수아비 대통령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3김씨는 신현확이 자기들의 대권행보의 걸림돌이라 판단하여 신현확을 제어하려는 움직임을 시작했고
신현확은 최대통령과 신군부의 밀착을 경계하여 그들의 빌미를 주지 않고자 3김에게 지속적으로 자제를 호소했으나 3김과 재야,학생들의 시위가
격화되면서 시국이 악화되어 갔다.
<세상이 전부 내가 말한 것을 곡해로만 나간단 말이야. 그래서 안개정국이 없어졌느냐.
없어지기는 커녕 점점 더해졌지. 점점 부추키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심지어 이런 거야. 나하고 같이 몸담고 있던 공화당의 간부 한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하는 얘기가 뭔고하니. “이런거 알고 해 나가십시오. 내가 일부러 일러드립니다.” 하면서 “김종필씨, 김영삼씨, 김대중씨 참모라
그럴만한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의논을 했습니다. 그 의논이 뭔가 하면 ”우리가 지금 3김 경쟁을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결국은 신현확이가 잡을
것이다. 신현확이가 없어지지 않는 한 우리가 경쟁해봐야 소용없다. 그러니까 3김이 합쳐 신현확을 제거하고 나서 우리끼리 경쟁하자. 이를 위해
각자 한 사람씩 대표를 지정해서 신을 제거해 나가는 의논을 해나가도록 하자. 이것이 합의돼서 제가 그 대표참모 한사람으로 지명되었습니다. 이래
움직이고 나가는데 신총리 혼자서 이 나라 위기관리만 정정당당하게 한다고 하면 될 줄 아십니까“ 이렇게 일러 주더라니까..그래서 내가 1988년
광주사태 청문회에 나가서도 그랬잖아. ”당시 3당하고 협력이 잘되었느냐.“ 그래서 나는 협력을 못 받아 잘 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답변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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