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9장 많이 심읍시다
고후9:5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고후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9:9 기록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고후9: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고후9: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
고후9:14 또 그들이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헌금을 부담스러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헌금에 담긴 의미를 알면 헌금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것이 됩니다.
헌금의 자세
헌금이 무리한 것이 되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헌금을 준비하여 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5) 또 헌금은 억지로 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7)
헌금으로 인한 풍성한 복
헌금은 모든 것을 풍성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헌금을 드리면 그것은 영원한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9) 세상을 위해 심으면 잠시 세상에서 유익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에 심으면 영원한 상이 있습니다. 또 헌금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더 드릴 수 있도록 채워 주실 뿐만 아니라 먹을 양식까지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10)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방법은 두가지 입니다. 만나처럼 하늘에서 주시는 것과 씨를 심어서 거두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수고하지 않은 것을 주시기도 하시고 우리가 수고하는 것에 복을 부어 주셔서 풍성하게 주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더 드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또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늘에 우리의 의를 쌓아갑니다. 그래서 헌금은 점점 더 풍성한 삶을 살게 되는 길이 됩니다. 또 헌금은 그 헌금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줍니다. 그리고 채움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12) 그래서 헌금은 도움받는 사람들의 감사를 풍성하게 합니다. 또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도운 사람들을 위해 축복하게 되고 더 사랑하게 됩니다.
헌금은 모를 때는 부담으로 다가오지만 알고나면 더 기쁘게 드리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헌금의 원리를 알고 많이 심으면 점점 더 많이 거두게 될 것입니다. 적게 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사람은 많이 거두게 될 것입니다.(6) 우리 모두 풍성한 헌금 생활로 점점 더 복된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1-2절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 바울은 ‘성도를 섬기는 일’ 곧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로마서 15:26) 헌금하는 일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이어 간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 마음속에 이 일을 위한 자발적인 ‘원함’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달리 그들에게 쓸 것이 없다고 밝힌다. 이 ‘원함’은 8:10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일 년 전에’ 곧 그 전해에 그들 속에서 먼저 일어났다. 바울은 이 사실을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이야기했고, 이것이 그들의 열심을 촉발시켰다. 그 결과는 8:1-5과 같다.
3절 세 사역자를 미리 보내는 이유
☞ 바울이 디도를 포함한 세 사람을 미리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과 관련해 바울이 자랑했던 것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좀 더 실질적 차원에서 이야기하자면 그들이 스스로 하겠노라고 약속한 헌금을 미리 준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4절 마게도냐인들과 고린도를 방문했을 때
☞ 바울이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라고 말하는 것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 교인들과 함께 고린도를 방문하게 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그때 고린도 교인들 속에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바울이 그들에 대해 말한 것이 다 거짓말이 되는 셈이고 마게도냐 교인들은 바울의 선전에 속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바울은 자신과 고린도 교인들이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5절 연보를 미리 준비하도록 권면함
☞ 바울은 디도 일행을 보내는 목적이 바로 이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미리 준비시키기 위함임을 다시 한 번 밝힌다. 바울은 ‘먼저’ 준비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프로’(먼저)가 붙는 동사들을 연속적으로 사용해 번역에서는 살리기 어려운 음운 효과를 자아내고 있다. 곧 ‘먼저 가서’(프로엘쏘신), ‘미리 준비하게’(프로카타르티소신), ‘전에 약속한’(프로카텡겔메넨)과 같은 방식의 연결이다. 바울은 여기서 헌금과 관련된 또 다른 용어 하나를 사용한다. 곧 ‘연보’로 번역된 ‘율로기아’라는 단어다. 개역개정에 8:2에도 ‘연보’가 나오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단어다. 8:2에서는 ‘하플로테스’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자유롭고 자발적인 ‘관대함’(generosity)을 나타내는 단어다. 반면 ‘율로기아’는 기본적으로 ‘복’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여기서는 ‘복의 선물’이라는 의미를 헌금과 관련시키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헌금이 흔쾌한 마음에서 나오는 ‘복의 선물’이 될지언정 억지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억지’로 번역된 ‘플레오넥시아’는 ‘탐욕’을 가리키는 단어다. 여기서 ‘복’과 ‘탐욕’의 대비는 흔쾌하고 풍성하게 주는 것(복)과 인색하고 마지못해 주는 것(탐욕)의 대비다.
6절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 바울이 5절에서 사용한 ‘율로기아’라는 단어가 6절의 격언 속에 두 번 나타난다. “많이(에퓰로기아이스) 심는 자는 많이(에퓰로기아이스) 거둔다”가 그것이다. 바울은 앞에서 언급한 ‘억지’(플레오넥시아; 탐욕)를 ‘적게’(페이도메노스; 인색하게)와 연결시키고, ‘연보’를 ‘많이’(에퓰로기아이스)와 연결시킨다. 이런 방식으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헌금이 인색함의 때가 묻은 손 떨리는 돈이 아니라 흔쾌하게 나누는 복의 선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7절 헌금하는 자의 마음
☞ 바울은 헌금을 인색하게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뤼페’(인색함)는 ‘근심’ 또는 ‘슬픔’을 가리킨다. 이는 헌금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생각할 때 일어나는 상실감이다. 이는 8:14-15에 언급한 헌금의 원리를 알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결과다.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며,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복의 선물이 된다.
8절 풍성한 은혜의 공급자
☞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의 공급이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넉넉함’을 가지게 하시는 분이다. 바울이 여기서 사용하는 ‘아우타르케이아’는 ‘자족’을 가리키는 단어로 바울 당대의 스토아 철학자들이 즐겨 사용했던 용어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바울은 이 ‘자족’을 인간인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찾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야만 우리가 자족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족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가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자족은 은혜를 주신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곧 모든 착한 일을 행함으로 모든 것의 공급자이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9절 은혜의 수급자이자 공급자인 성도
☞ 바울이 인용한 시편 112:9의 말씀은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함이라는 8절의 문구와 연결된다. ‘착한 일’에 해당하는 것이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일이다. 이때 ‘그’는 성도를 가리킨다. 이는 시편 111-112편의 구성에서도 나타난다. 시편 111편은 하나님의 행위와 의를, 112편은 그를 경외하는 자녀의 행위와 의를 진술한다. 두 시편은 짝을 형성한다. 따라서 바울의 인용 문구에서 ‘그’는 하나님의 의를 반영하는 성도다. 바울은 하나님을 은혜의 공급자로, 성도를 수급자로 위치시키지만, 동시에 성도는 하나님의 공급을 받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눔으로써 그 자신이 또한 공급자가 된다. 이것이 은혜 주신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