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은 사람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부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서 영생을 얻으려고 하며 그 성경을 통해서 천국 갈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오해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에도 친히 자신이 하시는 말씀이 성령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제자들을 가르치는 예수님의 말씀하심이 바로 제자들에게 성령을 붓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물을 마실 때에 그릇에 담아서 마시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 택한 성도들에게 성령을 부으시는 모습이 예수라는 사람을 통하여서 붓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냥 스스로 성경을 통하여서 깨달으면 성령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인데 아닙니다. 또한 오늘날의 기독인들은 오순절 이후에는 성령이 모든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내려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다음의 성경구절은 틀린 말이 되는 것입니다.
행10;44
“베드로가 이 말 할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가 백부장 고넬료에게 설교함으로 성령이 내려오는 장면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말씀대로 오순절 이후 성령이 모든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내려온다고 한다면 베드로라는 사람이 필요없게 돼야 하는데 베드로가 설교를 할 때에 성령이 내려왔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모든 기독교인들이 알고 있는 오순절 이후의 무작위 성령강림은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라는 사람을 통로로 삼고 성령을 흘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신약 후반부에서도 분명하게 성경은 가르치는 자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가르치는 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사람이라는 통로를 삼아 이 시대에도 가르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바로 가르치는 자를 통로로 삼고 성령을 붓고 계시다는 것이며 그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 또한 성령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입니다.
절대로 성령이 여러분 개인개인을 상대하지를 않습니다. 반드시 사람이라는 통로를 삼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사람이 가르치게 돼 있습니다.
눅12;11-12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고친 후에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사람들이 놀랐다고 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무식한 사람들이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를 알고도 감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의 구절을 근거로 사람이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하실 텐데 살펴보겠습니다.
요한1서 2:27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윗글만 뚝 떼어서 읽어보면 마치 사람이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읽혀질 수 있으나 윗글의 앞절을 읽어보시면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요일2;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그렇다면 들은 것은 무엇일가요? 바로 사도요한이 편지의 수신자들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 들은 것을 간직하라는 말씀을 하면서 편지로 다시 한번 더 강조하여 말하는 것이 요한일서의 내용입니다. 요한사도가 말한 가르친 그 가르침에서 떠나지 말고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라는 말인 것입니다.
바로 사도요한이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편지를 띄우기 이전에 가르쳤던 그 말씀이 성령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가르침이 너희안에 있으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자가 필요없다는 말이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방의 사도 바울도 가르쳤고 유대의 사도 베드로도 가르쳤습니다. 고넬료도 가르쳤고 디도 디모데도 가르쳤습니다.
항상 하나님은 이렇게 가르치는 일을 통하여서 택한 백성에게 성령을 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체가 되어 가르쳤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그 사람을 통로(나팔)로 삼고 친히 택한 성도들을 가르쳤고 그 가르침이 성령을 부어주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부어주심은 바로 이러한 방법 외에는 아무런 방법을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냥 성령이 여러분 개인개인에게 성령을 부어주시지를 않는다는 것이지요.
사도행전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은 항상 이렇게 사람을 통로로 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보낸 자를 통해서 받을 수가 있습니다. 성령은 여러분 개인개인이 받고 싶다고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성령을 받게 되는 방법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통해서야 만이 성령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당시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성경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 성경이 오리라고 한 예수님이 정작 오셨는데도 오신 예수는(하나님의 보낸 자)는 배척하고 성경에서 구원을 찾을려고 했던 유대인들은 결국 버림받은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 앞으로 나아오는 것이 성령을 받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을 받음 역시 단번에 받아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붓고 부어서 흘러넘칠 때가 온전히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이 처음에는 마귀의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가르침을 받았지요. 이처럼 성령이 단번에 받아지는 것이 아니라 부어지고 부어져 차고 흘러 넘칠 때(오순절)가 돼서야 만이 온전히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령을 받았다고 스스로 위한을 삼고 있는 많은 분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요. 자기의 생각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자신 만이 똑똑하다고 생각하기에 스스로의 오류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지요.
출처; 네이버카페 생명의 만나 남용모 목사
유튜브 남용모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