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메투오 전투의 상황도
1975년 3월 10일 02:00 사전 침투한 북베트남군 특수부대들이 푸옹둑(Phuong Duc) 비행장, 반메투오 시내에 있는 비행장, 남베트남군 보급창 등에 공격을 개시하였다. 동시에 북베트남군의 전 포병화력은 공격준비사격을 개시하여 적 지휘부를 강타하였다. 비행장은 남베트남군의 공수증원이 가능한 곳이기 때문에 이를 저지할 수 있는 교란이 필요한 곳이었고, 02:00부터 공격준비사격을 개시한 것은 기도비닉을 위해서 원거리에 배치된 병력들이 반메투오 시 외곽까지 기동하여 보병, 전차, 포병 협동으로 여명공격이 가능하도록 계산된 시간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반메투오를 공격하는 북베트남군
07:15에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북베트남군은 육안관측에 의한 정확한 사격의 엄호 하에 보병 대대들은 은밀하게 시내에 잠입하여 주요 교차로를 점령하고 남베트남군의 반메투오 방어부대 지휘소인 달락(Dar Lac) 성청을 공격하였다 최우선적으로 점령할 목표였다. 09:00부터 보병, 전차 협동으로 성청을 공격하기 시작하여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반메투오를 공격하는 북베트남의 T-54 전차
남베트남군 제53연대가 방어하고 있는 푸옹둑 비행장 부근에서도 적의 공격은 계속되었으나 남베트남군도 완강히 저항하였다. 1:1전투에서는 북베트남군이 그렇게 우수한 군대는 아니었다. 신병이 많았고 보병, 전차, 포병의 협동 공격에 능하지 못하였다. 보급소와 탄약 저장고에 대하여도 북베트남군은 집중 공격하여 오후에는 탈취하였다. 또한 플레이쿠(Pleiku) 비행장에도 치열한 포격을 가하여 공수증원을 사전에 방해하였다.
북베트남군은 남베트남군의 포병진지, 경찰서 등을 점령하였고, 17:00까지는 달락 성청을 완전히 점령하여 지방군과 민병대의 지휘체제를 붕괴시켰다. 3월 10일 야간까지 시의 대부분을 점령하였다. 남아있는 곳은 남베트남군 제23사단의 후방사령부 등 극소수에 불과하였다.
3월 11일 07:20 북베트남군은 남베트남군 제23사단의 후방사령부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여 08:15에는 부사단장과 성청에서 도주해 온 달락 성장을 포로로 잡았으며 10:30에는 완전 점령하였다. 공격개시 후 32시간 만에 그렇게 오랫동안 준비해 온 반메투오 공격이 성공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잔적소탕이었다.
남베트남군은 80여 쇼티의 근접 항공지원을 실시하여 북베트남군에 피해를 주었으나 근접전에서 우군에게도 피해를 주었다. 제23사단 후방사령부 전술작전본부(TOC)에도 직격탄이 투하되어 군단과 사단 간의 통신이 두절되기도 하였다. 제53연대는 푸옹둑 비행장 일대에서 적과 교전중이며 부온호(Buon ho)에 있던 레인저단이 반메투오의 탈환을 시도하였으나 이미 도로는 차단되었고 역부족이었다.
남베트남 정부에서는 최초에 적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저지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3월 12일에는 역습은 성공적으로 실시되고 있으며 1~2일 정도면 탈환한다고 발표하였다. 시간이 지나가고 외신보도가 반메투오는 완전히 함락되었다고 하자 그때야 시인하였다. 남베트남 국민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역습이란 재탈환의 필요성과 의지만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적의 전투력과 제반상황을 고려하여 성공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최초 적의 강력한 공격기세 앞에 남아있는 전투력마저도 손실되어 장차전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더구나 중부 고원지대를 철수하겠다는 티우(Thieu)의 결심이 굳어있는 상황에서는 역습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남베트남군 제2군단은 제23사단 예하 2개 연대로 반메투오를 탈환하기 위하여 3월 12일부터 3월 14일까지 3일 동안에 제45연대와 제44연대 1개 대대를 반메투오 동쪽 약 30㎞ 떨어진 푸옥안(Phuoc An)으로 공수하였다. 1개 레인저단이 제3군단에서 플레이쿠로 공수되어 역습부대가 빠진 공백을 메꾸었다.
너무도 무모한 계획이었다. 이미 남베트남군의 기도에 대하여 사전에 하노이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둥(Dung)은 대공포와 전차부대를 푸옥안에 배치하여 착륙 전에는 대공화기로, 착륙 후에는 보병과 전차가 공격을 하였다. 피해를 입은 채 이 부대는 반메투오로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너무나 미약한 전투력이었다.
더구나 푸옥안에는 반메투오에서 피난온 민간인과 지방군, 민병대의 패잔병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반메투오가 함락되자 자기 가족들의 안부가 걱정이 된 많은 병사들이 부대를 이탈하여 가족을 찾아 헤매었다. 3월 16일에는 부대가 지리멸렬되어 버렸고 3월 18일에는 푸옥안도 함락되었다. 남베트남군은 나트랑(Nha Trang)으로 연결되는 21번 도로를 따라 장비와 중화기를 유기하고 뿔뿔히 흩어졌다. 거기에도 요소요소마다 북베트남군들이 이미 도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이렇게 남베트남군 제23사단은 궤멸되어 버렸다.
전사한 남베트남군의 시체 옆을 피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반메투오에 적의 강력한 최초 타격이 개시되자 티우 대통령은 적의 공격의도를 사전에 예측하지 못한 참모본부 정보참모를 질타하였다. 3월 12에 아직 반메투오가 완전히 함락되었는지 확실하게 몰랐던 티우는 반메투오를 사수하라고 명령하였다. 적 투입부대 규모를 제대로 판단하였다면 그와 같은 무모한 역습시도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북베트남군 전선사령관 둥은 반메투오 승리가 확실한 3월 11일 밤부터 차후작전을 구상하였다. 계획대로 플레이쿠 지역을 계속 공격하기 위하여 북베트남군 총참모부에 적의 병력이 중부 고원지대로 증원되지 못하도록 중부 해안지역에서도 공세를 강화하여 주도록 요청하였다. 남베트남군이 중부 고원지대에서 철수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노획한 보급품과 탄약은 공격 계속에 큰 원동력이 되었고 군수지원 부담을 감소시켜 주었다.
첫댓글 잘읽고있습니다
근데 읽을수로 남베트남은 정말 한심스럽네요
아직 진짜 한심스러운 모습이 안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