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사도행전(5) 언더우드 선교사(4)
조선의 영토 내에서 조선인에게 베풀어진 두 번째 세례
소래교회 창설 후 세례를 원하는 신자들이 생겨 서상우는 서울에 와서 언더우드와 접촉하였다. 언더우드는 심사숙고 끝에 소래의 신자들을 서울로 오게 해서 1887년 1월 23일 자기 집에서 세례를 베풀었다. 이 세명 중 한명이 서상우였던 것이다.
그 3명을 뒤이어 한양·소래 등에서 세례를 요청하는 신자들이 계속 언더우드 집을 찾아왔다. 언더우드는 공식적으로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안에서 세례를 주기로 결심했다. 심명호 교수의 “개신교 개척자 서상륜”이라는 글의 맥락에 따르면 이러한 것이 언더우드로 하여금 새문안 교회를 설립하게 된 중요한 동기 중의 하나가 되었다.
새문안 교회를 창립하다.
1887년 9월27일 서울 정동에 위치한 언더우드 목사의 사랑채에서 조직교회로서의 첫 예배가 시작됨으로 ‘새문안교회’가 창립되었다. 새문안 교회 창립 예배에는 만주 심양에서 온 로스 목사도 참석하였다.
그리고 조선인 신자 14인이 참석했는데 그중 5명은 서상륜·서경조 등 소래교회 출신이었고, 나머지 9명은 노춘경 등 한양 출신이었다. 한양 출신 9명 중에서 노춘경을 제외한 8명 그리고 소래교회 출신 4명을 합한 총 12명은 서
상륜의 전도로 세례를 받고 참석한 사람들이었다.
이날 예배에서는 장로 두 사람이 선출되었다. 두 사람의 장로가 누구누구 였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없다. 초창기에는 정동교회, 서대문교회라는 명칭으로 혼용되어 불리다가 1907년부터 새문안교회라는 이름으로 불리
게 되었다.
1887년 11월에는 의주까지 순회 여행을 하며 복음을 직접 전하였다. 신년 휴일의 긴 기간마저 전도의 기회로 삼았다. 1888년 봄에는 아펜젤러와 함께 북부지역을 순회 여행하였다. 중간에 조선 정부로부터 기독교 전도금지
령이 내려져 선교여행이 중단되기도 하였지만 1888년 11월에 다시금 북부교회 전도 여행을 도모해 평양, 장연, 의주 지역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파란 눈(碧眼) 코쟁이’의 지방 순회 전도
1900년대 접어 들어 전도 활동이 자유스러워지면서 언더우드의 본격적인 지방 순회 전도가 시작되었다. 그의 전도 방법은 매우 독특하였다. 언더우드의 지방 순회 전도의 팀은 다음과 같이 꾸려진다. 언더우드 자신은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환등기 기사가 보여주는 화면을 구성진 목소리로 해설 설명한다. 언더우드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조선인 동역자들이었는데, 그 팀은 2~3명의 코넷(Cornet: 트럼펫 비슷한 금관악기임) 연주자, 그리고 환등기 기사였다.
일단 전도 집회 장소에 도착하면 우선 천막을 치고 그 앞에 대형 크기로 그려진 예수 초상화를 걸어 놓은 후 나팔수를 앞세워 주변 동네를 다니며 전도지를 돌리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모여들면 코넷 연주자의 선도로 찬양가를 힘차게 부르고 이어 환등기를 돌리면서 언더우드가 구성진 목소리로 그림 설명을 한다. 난생 처음 보는 ‘파란 눈의 코쟁이’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모여들었고 언더우드의 구변 좋은 해설은 그들의 마음을 한껏 사로 잡았다.
이렇게 지방 전도 여행을 떠나면 적어도 하루에 짧게는 40리 길, 길게는 60리 길을 걸으며 여행을 강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