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묵스님의 대념처경(11,12회) /bbs]
우리가 살면서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내 마음에 대한 '알아차림'이다
연속극에서 연예인이 뽀뽀하냐 마냐.. 아무리 알아봤자 인생에 도움 안돼
사실 드러나는 마음은 빙산의 일각이다, 과거 수많은 인연들의 원인과 조건도 파악할 수 있다
어린시절의 경험의 잠재로부터 비롯되는 마음, 또는 몸상태에 영향을 받은 마음상태 등..
마음은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조건이 소멸하면 마음도 사라진다 (손뼉 소리처럼)
이렇게 알아차림을 통해서.. 마음의 생성과 소멸 등 마음의 전 과정을 속속들이 아는 지혜를 계발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어떻게 해야 오염에서 벗어날 수 있나?'를 철저히 꿰뚫어 아는 것 (=위빠사나 /위=분리하다,철저하다)
'나'는 왜 무아(無我)인가? 경전에선 보통 두 가지로 설명한다
<1>실체가 없기 때문에 <2>통제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내 맘대로 되지 않아서)
유위법의 세 가지 특성(삼법인) - 무상, 고, 무아
마음 - 작용은 있지만 실체는 없다 (공적 영지)
▶법에 대한 알아차림
예) 일묵스님을 '일묵스님'으로 볼 수도 있지만, --- (마음을 전체적인 마음으로)
눈은 어떻게 생기고, 코는 어떻게 생기고.. 디테일하게 볼 수도 --- (마음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을 섬세하게)
- '이렇게 작용하는 것이 탐욕이구나, 이렇게 작용하는 것이 성냄이구나'.. 이렇게 관찰하는 것이 법념처
- 마음에 선법이 결합될 수도 있고(선한 마음) 불선법이 결합될 수도 있다(불선한 마음)
수행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불선법'(탐욕, 성냄 등)
오장애(불선법)는 버리고 칠각지(선법)를 계발하는 것이 수행이다
- 수상행식에서 느낌을 제외하고 <상온과 행온>이 법념처에 해당
오온과 육처
'나'를 실체로서 이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자아라는 관념을 깨기 위해서 세분화 해서 오온을 설하심
(예: 소 = 안심, 등심, 갈비.. 정육점 가서 '소 주세요' 라고 안 해)
오온에 대한 알아차림 = 오온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 없이)
색=루빠=물질='변형되는 것' --- 신념처
그냥 색(色)이라고 해도 될 거 같은데 왜 굳이 색온(色蘊 무더기)이라고 할까?
- 지금 몸, 과거 미래의 몸도 물질, 저열하거나 수승하거나,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거나,
내 몸에 관련된 물질이거나 다른 사람에 관련된 물질이거나 다 통틀어서 '물질의 무더기(그룹?)'라고 하는 것
사실 마음현상을 <수상행식> 각각으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 미란다왕문경에서 나가세나 존자 "수상행식을 구분하는 것은 마치 바닷물을 이건 한강에서 온 물이고,
이건 낙동강에서 온 물이고.. 이렇게 구분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면서 부처님 지혜를 찬탄.
<수,상,행온>=마음부수,심소 / <식온>=마음 --- 이렇게 구분하지만 작용은 항상 같이 일어난다
<식(識)>='대상을 식별한다'는 의미 / <마음>='대상을 안다'는 뜻인데 이 두 가지는 사실상 같은 개념으로 사용
색온=신념처, 수온=수념처, 식온=심념처, 상온이나 행온=법념처의 대상
상온(想蘊): 인식(보통 말하는 '인식'의 개념과는 달라)
- 어떤 대상이 나타났을 때 그 대상을 매우 초보적으로 그냥 인식하는 수준
예)녹음기: 아이가 인식하는 수준, 어른이 인식하는 수준, 녹음기 만든 사람이 인식하는 수준 매우 달라
이때 어린아이가 인식하는 수준, 매우 두리뭉실한 인식을 '인식(想)'이라고 한다,
깊이 있는 게 아닌, 대충.. 이미지 정도만 취하는 것
중간정도 수준의 인식을 '식(識)' / 전문가 수준의 인식을 '반야(지혜)'라고 한다
예)컵: 다양한 모습의 컵들이 있는데 '꼭 이렇게 생긴 것만' 컵으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대략 어떤 특성만 가지고 있으면 '컵'이라고 인식, 대상의 이미지를 취하는 것, 정교한 게 아냐
유연성이 있지만 이런 것 때문에 착각이 많이 일어난다
대충 비슷하면 그냥 그렇게 인식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밤길 나무막대를 뱀으로 착각,왜곡)=전도된 인식
'나'라는 생각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형성된 개념(아상)
수행할 땐 '오온'으로 인식하다가 일상으로 돌아오면 또 착각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분노
회로화 되어서 고정관념으로.. 어떤 자극이 들어오면 그냥 그대로 반응해버리는 경향
그래서 '나'라는 想, '영원하다'는 想이 생기면 그것을 깨기가 정말 힘들어진다
('태어남=苦'인데 우리는 그것을 '행복'으로 인식 - 전도몽상, 뒤바뀐 인식)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인식하던 습관대로 가버려 - 알아차림 필요(실체를 본다, 속지 않는다)
인식에 대한 알아차림도 법념처에 들어간다, 아주 중요
행온(行蘊): 의도(의지적인 심리현상)
- 행위도 중요하지만 의도가 중요 (선한 의도냐, 불선한 의도냐?)
좋은 말을 해도 누구와 경쟁심리로 '너만 할 줄 아냐? 나도 할 줄 안다!' 교만으로 하면 불선법
이런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이 법념처에 들어간다 (불선법이면 얼른 멈추라)
마음이 왕이라면 의도는 국무총리 격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
행위를 하기 전 의도, 할 때 의도, 하고난 후 의도 - 모두 법념처
신,수,심념처의 대상은 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 아니지만
법념처에서 불선에 해당되는 것은 버려야 한다 - 오장애 등 불선한 마음부수만 버리면 그 나머지는 완벽
법념처가 정화되면 '신수심'은 저절로 정화 / 법념처가 오염되면 신수심도 오염
신수심 - 그냥 '알아차림'만 언급이 되지만
법념처 - 어떻게 하면 그런 선법을 일어나게, 증장하게 하고..
불선법은 어떻게 하면 안 일어나게, 소멸하게.. 하는 내용 나와
이런 것을 이해하는 것도 법념처에 해당
선법의 대표적인 것으로 칠각지 - 일어나게 하고, 계발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고
불선법의 대표적인 것으로 오장애 - 안 일어나고, 소멸하게 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하여 오온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게 된다 (변화하는 현상을 보고 이해)
오온은 무상이고.. 행복이라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고(고성제), 그 원인을 알게 되고(집성제),
그 소멸을 보면(멸성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계속 관찰(도성제, 위빠사나) = 사성제를 이해하게 돼
"내가 '나'라고 생각하던 것이 '오온'이 조건따라 일어났다 사라지고 하는 현상일 뿐이구나".. 깨닫게 됨
색수상행식.. <1>영원하냐 아니냐? <2>변하는 것은 괴로움 <3>괴로움을 '나'라고 할 수 없다
느낌이 일어나는 것이지 느끼는 자(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수온이 있을 뿐)
특히 서양인들 많은 질문 "아 내가 지금 이렇게 말도 하고 이러는데 어떻게 무아라고 하는가?"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 - 연기적으로, 조건에 의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무아인 것이지 이것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조건지어져 있기 때문에 영원하지도 않고 이것을 주도하는, 변하지 않는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
이 현상 자체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임시로 잠시 존해했다 사라지는 거라는 것..
부처님은 "무아라고 아는 지혜조차도 무아이다"라고 하심.. 실체가 없다, 수행을 통해서 형성된 것
오온에 대해 집착할 게 없음을 알면 가까이 하지 않고 멀리하게 됨: 염오의 지혜
그래서 쥐고 있던 것을 완전히 놓게 되면: 이욕의 지혜
그래서 결국 해탈로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