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심도 이기고 싶어서 분석했다. 남이 잘되는 것은 배가 아프고 속이 쓰리고 남이 안되는 것을 좋아하고 통쾌해하면서 미소 짓는 나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내가 혐오스럽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질투심을 이기고자 이성적, 논리적으로 분석해보았는데 질투심이란 무엇인가하고 질투심 자체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고 질투하여 일어나는 현상과 거기에 대한 나의 마음을 분석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를 정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질투하는 즉 안되기를 ,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내 소원대로 계속 망하고, 무너지는 상황을 머릿속에서 상상해 보았다. 질투의 대상자가 계속해서 더 망하고 더 나락으로 떨어질수록 내 소원대로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에는 통쾌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망하고 엉망이 되어 완전한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진 대상자를 상상하여 보는 순간, 상대의 몰락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불쌍하다는 마음이 차츰 차츰 들면서 내 마음이 아파지는 것이 아닌가? 내 질투가 원하는 대로 상대가 망하면 행복하게 될 줄 알았던 내 마음이 궁극적으로는 오히려 불편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평안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안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되어야 하며, 상대가 잘 되도록 빌어주고 잘 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면 내 마음도 편안해지고 나도 잘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선한 삶과 악한 삶 가운데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성욕을 마구 풀어도 되는지, 질투를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도 되는지등에 대한 궁극적인 판단 기준은 내 마음이었다. 내 마음이 편하면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고 내 마음이 불편하면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하게 살아야, 저 여성이 좋은 남자 만나서 행복해지기를 기원해야, 질투하지 말고 잘되도록 빌어주어야 내 마음이 편하니까 그렇게 해야하는 것이다. 성경에, 불경에 질투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안하는 것이 아니고 하면 안되는 근거를 내가 분석하여 스스로 얻어낸 것이다. 아직 잘 모르고 있었지만 불교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고 더욱 신뢰가 갔다. 그리고 이렇게 학과공부하고, 질투가 무엇인지 분석하고, 밥먹고, 잠자는 이 놈,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놈, 이 모든 것을 한 몫에 농축하고 있는 근본이 바로 이뭐꼬?라고 생각했다. 이성적 분석과 그 모든 것의 바탕인 알 수 없는 의심인 이뭐꼬?를 병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