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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음 품지 말고 하나님을 섬기라
마태복음 15:7~9
오늘 본문 말씀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식사하는 것을 발견하고 비판함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그 바리새인들을 교훈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그 사소한 인간이 만들어놓은 생활 지침까지도 엄격히 지키려고 노력하면서도 사실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하여 엄중하게 지키라고 명령한 부모 공경까지도 교묘하게 지키지 않는 이중성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가 언급한 이사야 29장 13절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이사야 29장 13절 말씀은 이르기를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고백하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함과 경외함이 전혀 없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에게서 중요한 것은 마음임을 지적하면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그 사람을 더럽게 하므로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마음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으로 가꾸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외적인 면에서 종교적인 모양은 갖추는 데 열심을 내었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바 마음을 잘 가꾸어 하나님이 기쁘시게 하는 일은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 마음을 온전히 드리지 않고 두 마음을 품거나 겉과 속이 다른 채 신앙 생활하는 일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에게만 국한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오랜 역사 속에서 이러한 일들은 늘 있어 왔던 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에 의하여 애굽에서 떠나온 선민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수많은 이적들을 직접 보았고 시내산에 강림하사 흑암과 구름 속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고 그들의 귀로 하나님의 장엄하신 음성을 직접 듣는 중에 하나님과 거룩한 성민 계약을 맺은 바 있는데도 불구하고 광야 40년 동안에 여러번에 걸쳐 하나님을 시험하며 하나님 앞에서 불성실하였습니다. 그 광야 시대의 이스라엘의 불성실함에 대하여 시편 78편 기록자인 아삽은 36절 이하에서 이렇게 성령의 감동으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그들의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놀랍게 그들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진실한 신뢰와 믿음과 사랑을 갖지 못하고 하나님의 겁박과 위세에 눌려서 할 수 없이 계약을 맺은 것처럼 입술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듯하지만 그것은 한낱 아첨꾼의 사탕발림의 말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속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굳건하게 정한 마음이 없었고 하나님과 입술로 맺은 언약 곧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겠다고 하는 언약에 불성실했다고 아삽은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에 놀라운 이적을 목도하며 자기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하면서도, 물이나 반찬이 없다고, 길이 험하고 멀다고 불평을 일삼았고,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처럼 하나님과 모세를 반역하여 일어서는 데 불 같은 열심을 내었으며, 우상 숭배와 잡신 숭배의 유혹이 다가오자 금새 금송아지 우상 앞에 엎드렸으며 미디안 족속의 바알브올 숭배에 순식간에 물들어버리곤 했던 것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온 다음에도 곧장 가나안 땅의 잔존 잡족들의 풍습을 받아들여서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하는 데 골몰하곤 하여서 수많은 재앙을 자초하였으니,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근실하게 징계하여 이방인들의 칼날에 고생하게 할 때에 잠시 회개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으나,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워서 그들을 이방인의 압제에서 건져내주면 금새 또 다시 우상 숭배와 잡신 숭배로 되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들의 안과 밖이 서로 다른 표리부동한 신앙 생활의 모습은 일반 백성이나 지도자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사 기드온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므낫세 지파의 기드온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막강한 미디안 군대를 다 쳐서 승리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을 구출하는 데 쓰임받은 기드온을 추앙하면서 이렇게 일렀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그러자 기드온이 이렇게 멋진 말을 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나와 내 자손은 당신들의 왕이 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당신들의 영원한 왕이십니다.”
이렇게 멋진 말을 했으니, 참 대단한 신앙인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곧장 그 말을 한 다음 기드온은 이렇게 백성들에게 요청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가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그래서 백성들이 전쟁에서 탈취한 금고리들을 던지니 금만 천칠백 세겔이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기드온은 금으로 에봇을 하나 만들어서 자기 성읍에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그 금 에봇을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음란하게 섬겼다고 했습니다. 곧 그것이 우상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기드온 집의 올무가 되었다고 성경 기록자는 말했습니다. 기드온은 승리한 후에 입술로는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선언했지만 그 백성들에게 은금을 요구했으니, 이는 왕의 영광을 사실상 요구한 것입니다. 그가 70명의 아들들을 두었으니 이는 많은 아내를 얻은 결과인데 이것도 율법에서 왕의 법도에서 피하라고 명한 것인데, 기드온은 자신을 세속적인 왕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 집안에 악한 불량배 아들 아히멜렉이 일어나 우상 신전의 헌금을 군자금으로 받아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그 형제 70명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으니, 결국 그 못된 아들은 아버지는 차마 스스로를 왕이라고 부르지 못하였을 뿐 실제적으로는 왕의 모든 특권을 누리고 불신앙적인 금우상을 만들기도 했던 악행을 드러내놓고 실행에 옮긴 쓰디 쓴 열매를 맺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입술로는 화려한 신앙 고백을 했지만 그 행실을 통해서는 그의 고백을 뒤집었던 표리부동한 신앙인이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 사울 왕도 한 때 선지자 사무엘이 죽은 뒤에 종교적 열정을 가지고 무당들을 다 잡아 죽이고 추방했지만 블레셋과 전투를 앞두고 하나님께 물어도 응답이 없자 그가 잡아 죽이던 무당을 찾아가서 전쟁의 승패를 묻는 이중성을 보였습니다.
그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들이 많이 나타났기에, 선지자들의 예언 속에서 그러한 표리부동한 신앙을 지적하는 말씀들을 많이 증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동시대에 사역하였던 호세아 선지자가 선포하기를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호세아 10:2)
고 하였으며, 또 다시 이르기를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 족속은 속임수로 나를 에워쌌고 유다는 곧 진실하시고 거룩하신 자에게 대하여 정함이 없도다”(호세아 11:2)
고 선언하셨습니다. 그 후에 바벨론의 침략을 당하는 유다 백성들을 상대로 사역하였던 예레미야 선지자 역시 이르기를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예레미야 12:2)
라고 하였습니다. 마치 아까 언급한 대로 이사야 29:13 말씀에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라는 말씀과 동일한 뜻으로 그들의 이중성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후 에스겔 선지자 역시 바벨론에 1차 포로로 여호야긴 왕과 함께 끌려가 유다의 포로들 가운데 생활하면서 사역했었는데, 그의 사역 당시에 유다 백성들이 그에게 보인 이중적인 태도에 대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선지자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에스겔 33:30~33)
이 말씀을 할 당시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은 아직 나라가 완전히 망하지 않은 조국을 바라보면서 육신적인 희망을 품고 있으며 내적인 자기 갱신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에스겔은 그 유다 포로들 가운데 사역하였는데, 동족 유다 포로들은 에스겔 선지자가 날카로운 책망의 말을 하면 귓등으로 흘러 보내고, 자기들에게 현실적인 이익이 되는 예언의 말만 받아들이곤 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말은 곧잘 듣는다고 모이지만 실상 그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순종은 없고 오직 현실적인 이익만 추구하는 속물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꾸준하고 줄기찬 구약 시대 선지자들의 비판점은 하나님 백성들의 이중성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자의 이중성, 안과 밖이 다른 점, 마음의 변화와 헌신이 외식적인 신앙 생활의 모습은 예수님과 초대 교회를 지도한 사도들에게도 가장 큰 영적 위험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당시 바리새인들과 동족 유대인들을 향하여 이사야가 예언한 말씀 곧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라고 말씀하셨으며,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 선생 역시 그의 서신서에서 이르기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야고보서 4:8)
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우리의 입술의 고백도 중요하지만 그 입술의 고백을 뛰어넘어 더 중요한 것이 우리 마음의 헌신입니다. 하나님께 굳게 정하고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며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겠다는 굳게 정해진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마음에 한 터럭의 흔들림이 없는 굳건히 정한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억만 금을 준다고 제의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신앙과 절대로 바꾸지 않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엄청난 명예와 높은 관직을 준다고 약속한다 해도 주님 외에 그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이지 않으며 그의 계명을 즐거이 지키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보면 영적인 혼돈과 타협과 어둠이 가득한 시대 속에서도 아름다운 보석과 빛나는 별과 같은 진실하고 성실한 신앙의 사람들이 나타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가 그러하니, 그는 임종을 앞두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여호수아 24:14~15)
동족 이스라엘이 모두 다 다른 신,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을 선택한다 해도 자기와 자기 집만은 오직 지금까지 섬겨오던 여호와 하나님 한분만을 끝까지 섬기겠노라고 공언하였던 것입니다. 이 단호하고 굳건한 여호수아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와 자기 가문도 모든 잡신 숭배를 일체 버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겠다고 결단하였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에도 유다 백성들이 입술로는 하나님 믿는다면서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외면하던 그 불성실한 시대에도 모세의 처남 호밥의 후손 겐 사람들 중에서 레갑 족속은 오직 그들의 조상 요나답의 유언을 받들어 그의 모든 자손들이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을 멀리하고 일체의 포도주를 마시지 않기로 작정하고 지켜왔습니다. 그들은 경건 생활을 지키기 위하여 일반 농사도 짓지 않고 도시 가옥도 짓지 않고 불편한 목축업을 계속하면서 천막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경건하고 소박하게 섬기는 생활을 지속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 후손들로부터 하나님 앞에 섬기는 자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복스러운 약속을 받았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도 느부갓네살 왕이 출세의 전권을 쥐고 있는데도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인 고기를 거부하고 채식만을 하는 것을 선택하였으며, 왕의 지엄한 명령으로 금신상 앞에 절하지 아니하면 풀무불에 던져지는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의 지조를 지킴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그 풀무불에 나타나 그들을 건져주시는 기적적인 보호하심을 받았습니다. 다니엘도 왕 외에 다른 누군가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넣는다는 악한 자들이 꼼수로 제정한 악법이 선포된 것을 알면서도 하루 세 번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사자굴에 기꺼이 던져졌으나,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사자의 입을 막으시고 다니엘을 구해주시고 그 대신 그를 죽이려 드는 자들과 그 가족이 사자굴에 던져져 사자밥이 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 앞에 굳은 절개와 굳건한 믿음과 사랑을 드리는 이들을 심히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십니다.
시편 112:7 말씀에 이르기를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그의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의 대적들이 받는 보응을 마침내 보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굳게 하나님을 붙드는 자는 하나님께서도 그를 강한 팔로 붙들어주시고 그를 어떤 시련과 환난에서도 보호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알아주시고 사랑하시고 그를 기쁘시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랜 선민의 역사 속에서도 두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섬기는 경우가 참 많았음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 사랑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는 이중적인 모습들이 많이 있음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실망하시고 답답해하시고 괴로워하시곤 하셨습니다. 주님도 이 땅에 오셔서 그러한 실망스러운 유다 백성들의 모습에 속이 상하시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특별히 이 점을 주의해서 우리 마음을 한평생 하나님께 온전히 통으로 드리기를 힘씁시다. 나뉜 마음이 아니라 통째로 단일하게 드리기를 힘씁시다. 우리의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두 마음 품지 않고 단순하고 진실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며 섬기는 자가 됩시다. 이익을 계산하여 주님을 따를까 말까, 주님의 계명을 지킬까 말까를 저울질하는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일진대 단호하게 주의 법을 사랑하여 순종하는 자가 됩시다. 그리하여 늘 성령께서 진실하고 단일하고 순수한 우리 마음 안에 기쁨으로 거하시면서 우리 주님을 한결같이 섬겨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우리 삶을 통하여 풍성히 드러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