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9일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3-15 13 그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형제애(兄弟愛)
어린 소녀가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는데, 그 병은 여덟 살 난 오빠가 앓다가 나았던 병이었습니다. 의사는 소년의 아버지에게 소년을 설득해 달라고 했습니다. “얘야, 네 피를 수혈하는 것만이 동생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단다. 네 피를 동생한테 주었으면 좋겠다. 그럴 각오가 되어 있니?” 여덟 살 된 소년의 눈이 겁이 나서 커다래졌습니다. 그 아이는 몹시 망설였고,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더니 병원 병동을 이리 저리 서성이다가 “네 아빠, 그렇게 하겠어요.” 그리고 수혈이 끝나고 소년은 침대에 누워서 쉬고 있다가 머뭇거리더니 “아빠, 난 언제 죽게 되나요?” 그제야 의사와 아빠는 병원 병동을 그렇게 서성였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여덟 살 된 오빠는 자기 피를 동생에게 줌으로써 자기 생명을 바치고 죽는 줄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가득한 아이들이 점점 줄고 날로 난폭해지고 이기적이며, 사랑을 모른다고 교육을 탓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예 교육을 시장경제의 원리로 생각하고 그렇게 교육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많은 교육자가 참 스승이기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부모들도 인성교육보다는 지식교육에 열을 올리고 아이들이 점점 영악해져가지만 실상 마음은 황량한 벌판입니다. 그래서 버릇없는 아이들은 선생님 말씀을 잘 듣지 않고, 작은 잘못도 부풀려서 스승을 고발하고,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자주 인터넷에서 떠들어 댑니다. 말과 행동은 거칠어 졌고 서로 돕고 이해하는 친구를 통해서 사회를 배우던 예전과는 달리 TV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과 인터넷게임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아이일 뿐입니다. 착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선생님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사회가 잘못 가르치고, 부모가 잘못 가르쳐도 착한 아이들의 심성은 지금도 어른들의 훌륭한 스승이 되고 있습니다.
옛날에 하느님께서는 궁(窮 : 다한다. 떨어지다. 가난하고 초라하고 옹색해 보이는 것) 감투 세 개를 천사에게 주시면서 “세상에 내려가 아주 궁해 보이는 사람에게 감투 셋을 나누어 씌워주고 오너라.” 하고 명령하였지요. 천사들이 세상에 내려와서 보니 아무리 보아도 궁한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코흘리개 어린아이들에게 글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이 궁해 보여서 감투 하나를 씌워 주었지요. 그리고 짚신을 삼고 있는 짚신장수가 발가락에 새끼줄을 감고 구부리고 짚신을 삼는 모습이 궁해보여서 그에게도 씌워 주었지요. 그런데 하늘나라에 올라갈 날짜는 다가오는데 나머지 하나를 마저 씌워 주어야하는데 하다가 그만 선생님에게 감투 하나를 씌워주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은 궁 감투를 둘이나 쓴 사람들입니다. 선생님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바라지 않고 가난하면서도 어린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키우려는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스승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참으로 영원하신 대 스승이신 주님께서는 어린이들이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도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지 않으면 주님께 다가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이 순수한가요? 우리는 무엇이 어린이와 같이 천진하고 어떤 점이 해맑은가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의 눈에 드는 어린아이와 같이 될까요? 어린아이들은 따지지 않고 솔직하게 좋은 사람에게 무조건 달려듭니다. 그 당시에도 아이들은 주님을 그렇게 달려들면서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