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전북 무주군 당산리 1193-2 한풍루 답사 및 Monitoring!
(순번은 각 기관별로 분류하여 부여하므로 다릅니다).
●. 개 설.
▲. 일 자 : 2012년 09월 21일.
▲. 장 소 : 전북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 1193-2.
▲. 주 최 : 文化財廳.
▲. 주 관 : 文化財廳 家族 文化財 지킴이.
▲.목 적 :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文化財 monitoring.
▲. 명 칭 : 무주한풍루(茂朱寒風樓).
▲. 번 호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호.
▲. 지 정 : 1973년 06월 23일.
▲. 날 씨 : 여름의 끝자락.
▲. 관 리 : U N K(미 지정).
▲. 사 진 : 添附 하였습니다.
▲. 작 성 : 文化財廳 家族 文化財 지킴이.
●. 개 요.
2012년 09월 21일 오늘은 제가 태어나서 63년 만에 가보지 못했던 이웃 茂朱郡을
나라와 國民의 安寧과 幸福을 위하시다 장렬히 산화하신 護國英靈들의 영혼을 모신
塔과 碑를 參拜와 踏査 및 Monitoring을 하기 위하여 시외버스로 全州에서 茂朱까
지 2시간 程度로 總 7시간 程度를 소요하여 다녀왔습니다.
●. 내 용.
▲. 茂朱 寒風樓는 朝鮮時代의 누각으로 당산리 남산자락 언덕에 세워졌습니다. 언
제 처음 지어 졌는지 알 수 없으며 壬辰倭亂으로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선조 32년
(1599)에 다시 지었다. 日帝强占期에는 佛敎를 傳播하는 건물로 사용되기도 했고
忠北 영동군으로 옮겨졌다가 1971년에 다시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었다. 아래층은
앞면 3칸 옆면 4칸 위층은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구성된 2층 누각입니다. 옛 부
터 全州 寒碧堂 南原 廣寒樓와 함께 湖南의 삼한(三寒)으로 꼽혔으며 그 중에서 경
관이 제일 아름다운 누각으로 유명합니다. 수많은 명사와 시인들이 찾아와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형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 壬辰倭亂으로 寒風樓가 소실되어 그 터
만 남아 있었을 때에 백호 임제(林悌.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의 아우 임환이
무주현감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꿈에 죽은 형 백호 임제가 나타나 寒
風樓 터에서 퉁소를 불면서 나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너는 어찌하여 늦었
는가? 이제라도 왔으니 이 누각을 재건하라 말했고 꿈에서 깬 임환은 살아생전에
이 누각을 사랑했던 형을 떠올려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해 누각을 다시 세웠다는 이
야기가 傳하고 있습니다.
▲. 茂朱 公設運動場 옆에 있는 누각으로 옛날에 이름난 시인들이 와서 풍류를 즐
기던 곳이다. 조선 선조 25년(1592) 壬辰倭亂으로 불탄 것을 선조 32년(1599)에
다시 지었으며 日帝强占期에는 佛敎를 널리 알리는 근거지로 사용되다가 영동군 양
산 강변으로 옮겨져 금호루(錦湖樓)라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1971년 무주 사람들이
지금의 위치로 옮겨서 2층 건물로 아래층은 앞면 3칸·옆면 4칸이며 위층은 앞면 3
칸·옆면 2칸 규모입니다. 茂朱 寒風樓는 湖南에서 全州 寒碧堂 南原 廣寒樓와 함께
유명하며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누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결 론.
한풍루(寒風樓)는 全羅北道 有形文化財 제19호로 指定된 文化財로 全羅北道 茂朱郡
茂朱邑 당산리에 있습니다. 본래 茂朱邑내 앞 냇가에 위치했던 누각인데 옛날은 全
州 한벽당(寒碧堂) 南原 광한루(廣寒樓) 等과 함께 湖南의 三寒 中 하나로 유명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누각으로 손꼽아 왔습니다. 예로부터 이름난 시인 묵객
들이 즐겨 찾아 풍류를 즐겼던 이 누각은 壬辰倭亂 때 불에 탄 것을 다시 세웠는데
日帝强占期에는 일본 군인들에 의해 영동군 양산면 금강 강변으로 옮겨져 금호루(
錦湖樓)라는 현판이 걸렸다가 1971년 무주 군민들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 놓았습니
다. 向後 持續的인 管理가 要求됩니다. 感謝 합니다!
●. 2012년 09월 21일. 文化財廳 家族 文化財 지킴이 龍湖 宋 哲 孝.
첫댓글 무주에는 한봉루가 있군요! 꼭 기회가 닿으면 가보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