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사회의 또 다른 불의는 성차별이다. 성차별의 사례는 흔하다. 지구상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여성은 남성의 사적 소유물, 즉 남성의 성적 쾌락의 도구로 간주되고 있다. 이른바 선진국에서도 여성의 참정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여성은 영적수행을 하기에 부적합하다고 말하는 나라도 있다. 아난다 마르가에서는 남녀가 똑같은 책임을 맡는다.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므로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할 여지가 없다.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경우에도 여성은 남성보다 신체적으로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사회적 가치는 남성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기적인 남성들은 여성의 나약함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착취했다. 말로는 여성을 사회의 어머니로 칭찬하나 실질적으로는 여성을 가축이나 양떼 정로로 격하시켰다. 모든 생활영역에서 남성들에 의한 여성권리의 침해가 극심하며, 여성을 남성들의 변덕심에 복종시켰다.
사회의 반이 무기력과 편견의 늪에 빠져 버린다면 나머지 반도 의심할 바 없이 어려운 길을 가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의 반이 무기력한 가축떼와 같은 나머지 반의 짐도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생활에서 순결은 남성과 여성에게 공통적으로 필수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영적인 안목이 절실하다. 그러나 어느 한 편에 대한 불의가 도사리고 있는 한 불가능하다.
장관직이나 국회의원 자리를 몇 개 차지하는 것을 여권신장과 평등의 실현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 견해가 옳은가? 진보를 가속시키기 위한 유일한 길은 올바른 교육제도이다. 몇몇 여성들이 장관직이나 대사직을 맡는다고 해서 곧 여권신장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다. 사회에서 여성의 권위를 높이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도 값싼 것도 아니다.
어떤 유기체라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분들 사이에 밀접한 협력관계가 있어야 한다. 인간은 무기력하지 않으며 또한 인간관계는 협동에 의지한다. 복종적인 협동이 아니라 평등한 협동이어야 한다.
여권이 신장되지 않는 한 세계평화는 기대할 수 없다. 새는 한 날개로 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