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도덕은 영적수행의 바탕이다. 그러나 도덕 또는 선한 행위는 영적 수행의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도덕가로서 다른 도덕가에게 이상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영적 구도자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도 없다. 영적수행은 그 초기단계에서부터 정신적 균형이 요청된다.
이러한 정신균형을 일컬어 도덕이라 말할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은 “나는 종교의식을 따르지 않는다. 단지 진리를 따를 뿐이다. 아무에게도 해를 가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이상 할 것도 배울 것도 없다.” 라고 말한다. 도덕은 잘 짜여진 생활을 유지하려는 노력일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도덕을 정적인 것이 아닌 동적인 것으로 정의하는 것이 더 올바르다. 왜냐하면 외적 영역에서의 균형은 모든 대립적인 힘과 끊임없는 투쟁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외적 유혹으로 흔들리고 심한 동요를 겪는다면 내적 투쟁력이 외적 압력에 굴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외적 균형 또는 도덕의 과시는 어느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그러므로 도덕은 목적이 아니며 어느 순간에는 사라진다. 2달러의 유혹을 물리친 사람이 20만 달러의 유혹도 물리친다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생활에서 도덕이 완전히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도덕은 선한 시민의 특성이며 영적 수행의 출발점이다.
인간 삶의 궁극 목적이 도둑질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없다. 바람직한 것은 도둑질하려는 성향을 제거하는 것이다. 삶의 목적은 거짓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거짓말하려는 성향을 마음으로부터 뿌리 뽑는 것이다. 도덕의 목적은 도둑질하려는 성향과 거짓말하려는 성향이 사라져버린 신과 하나 됨의 경지이다.
현자는 깨끗한 마음에 한 순간이라도 때가 낀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정신영역의 청결을 위해서는 힘을 사용하여 내적,외적인 더러움을 제거하여야한다. 이러한 힘의 사용은 특수한 형태의 행위여야 한다. 더러운 이기심이 마음의 구석구석까지 침입하여 인생을 무거운 짐으로 만들어 버릴 때에는 영적 수행의 불길로 태워버려야 한다.
그러한 수행은 야비함과 이기성의 정반대이다. 영적수행은 모든 더러움과 때를 제거하려는 노력이다. 마음의 더러움을 청소하기 위한 유일한 치료책은 아집을 버리고 모두가 하나라는 보편주의를 받아들이는 길 밖에 없다. 사물에 현혹되는 사람들은 그 정반대의 길을 걸음으로써 이기심에서 솟아나는 마음의 더러움을 벗을 수 있다. 돈에 탐착하는 사람들은 베푸는 마음을 길러 인류에게 봉사해야 한다. 화를 잘 내거나 이기적인 사람은 겸손을 길러 인류에게 봉사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기심에서 벗어난 봉사행과 세계를 우주적 시야로 바라보는 노력만이 마음의 순결로 자리 잡는다.
도덕은 바탕이요, 수행은 수단이요, 신성과의 합일은 목적이다.
한편에서의 반사회적 군중을, 다른 한편에서는 도덕주의자들의 좌절을 볼 수 있다. 좌절한 도덕가들은 사회를 떠나려는 심리적 성향을 발달시켰다. 반사회적인 무리가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얻음으로써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도덕주의자들은 죄인으로 비쳐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바람직하지도 올바르지도 않기에 더 이상 계속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된다. 그대들의 의무는 도덕주의자들을 단결시키는 일이다. 양편으로 갈라놓아라. 공개적인 투쟁을 전개하라. 도덕주의자는 너무나 오랫동안 분열되었기에 싸울 수 없다. 다섯 명의 도덕주의자의 단결된 힘은 수백만 명의 비도덕주의자의 힘보다 훨씬 더 강하다. 왜냐하면 비도덕주의자들은 더러운 야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참여 없이 폐쇄적으로 명상만 해서는 아무 소용없다. 직관수행을 통하여 힘을 모으고 비도덕주의자와의 투쟁대열에서 서로 단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