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개발 35년, 시대적 리모델링 필요
한강은 탄소를 흡수하는 소중한 자원
국민이 즐기는 문화공간으로 한강을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의 실행을 위해서는 탄소를 흡수하는 한강에 대한 전면적인 새로운 설계가 필요 시점이다.
대대적인 한강종합개발을 한지 35년이란 세월을 지나면서 한강권에 대해 시민과 생태환경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한강에 대한 관련사업은 제1차 한강종합개발(‘68~’70:강변도로건설, 공유수면매립 등 택지개발),제2차 한강종합개발(‘82~’86:한강인공호안 조성, 올림픽대로 건설),새서울 우리한강 기본계획(‘00:자랑스러운 한강조성,한강공원 정비 등),한강르네상스계획(‘07: 한강중심 소통회복과 새로운 한강창조(환경, 생태, 주운 등),한강공공성재편(’09:한강주변지역 정비사업 관리(한강통경축 확보),한강 자연성회복 기본계획(‘13: 한강(제외지중심) 자연성회복,한강 자연성회복 및 관광자원화 종합계획(‘15:한강(제외지중심)관광명소화·수변활성화등이 기획되었다.
하지만 한강에 대한 시각적 조형미를 살리지 못하고 한강으로 연계되는 도로,교통등도 연계되지 않아 한강은 아직은 그저 바라만 보는 조망권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도시설계, 도로교통,생태자연, 문화교육,체육등과 연계되지 못해 발생되었다.
하천정비는 간헐적으로 선착장 주변과 그동안 유출토사의 퇴적이나 각종 불순물질에 의한 저질오니등의 개선을 실행했지만 수초가 살고 멸종위기의 물고기들과 떠났던 새들이 다시 돌아오는 한강으로 살려내지는 못했다.
한강과 삶의 가치를 격상시키는 데 성공한 것은 오세훈 시장시절 ‘한강르네상스’를 통해 건설된 새빛 둥둥섬으로 가장 인기 높은 한강과 인간과의 어울림이다. 그러나 생태적 환경보호에만 집중된 박원순시장은 새빛 둥둥섬을 수년간 개장시키지 않고 있다가 후에 개장한 이후 시민들의 열열한 박수를 받기도 했다.
아직도 한강 주변으로 시멘트 옹벽등이 자연과 상극적으로 배치되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낚시터의 활용등 여가시설의 자유로운 접근에는 아직 미숙하다.낚시밥에서 생지렁이등만 사용하는 제도적 개선과 기초시설물의 설치등을 통해 외부로 나아가는 인파를 한강으로 불려들이는 전략도 필요하다.
실버층의 증가를 겨냥한 게이트볼장,노인그라운드 조성과 어린이나 학교교육에 도움이 되는 생태현장학습장의 개설도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시설물이다.
이런 측면에서 35년 전 당시의 한강개발에 대한 국가적 관심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1985년 12월 당시 서울시 염보현시장이 편찬위원장으로 간행된 ‘한강사’에는(한강사는 당시 전두환대통령이 쓴 글씨이다)
“1960년대 급속한 공업입국의 과정에서 수질오염등 심각한 현상을 보여 한강은 황폐되어가고 있었다. 한강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당연한 자각은 전두환대통령의 영단으로 1982년 한강종합개발사업이 시작되었고 그 대역사는 마무리로 접어 들었다. 수도서울을 환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강은 조국의 정수이다....주변의 환경을 잘 가꾸어 놓을 때 한강은 바로 민족의 영광으로 된다.”라고 서문에 적어 놓고 있다.
88올림픽대회 서울유치가 확정된 이후 전두환대통령은 “서울지역내 한강골재와 고수부지를 활용한 방안 검토”라는 지시가 내려지고 한강개발을 하기 위한 수리모형실험이(수리실험시 안수환교수와 이원환교수와의 의견충돌이 있었다) 실시된다.
기본사업으로 행주대교에서 암사동까지 36km를 하폭 600-1,175m,수심 2.5m로 총길이 54km의 송수관을 매설한다는 계획이다.
이 구역에 수상스키장,요트경기장,조정경기장,선착장 11개소를 신설하고 행주대교에서 팔당댐까지 52km는 배가 다닐 수 있게 했다.
고수부지 조성사업에서는 총 693만㎡를 휴식처로 활용하기 위해 89개의 운동시설,수련시설,편익시설과 체육공원 7개소와 뚝섬과 광나루에는 83만㎡의 유원지 조성, 초지 386만㎡에는 연못,낚시터,자연학습장과 13만㎡는 잠실지역에 주차장을 건설하고 산책로 74km,를 조성하는 사업을 설계한다.(현재는 대다수 체육시설이 철거되고 녹지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강변도로 건설에서는 양화대교와 천호대교간 한강남측 26km에 양화대교에서 한양대교까지는 4차선도로 6.5km를 신설하고 국립묘지에서 천호대교까지의 17.5km는 4차선도로를 8차선으로 확장한다.
교차로 11개소와 자전거도로(폭 3m) 98.8km를 건설하고 가로등은 나트륨등(25Lux)으로 교체하게 된다.
53.8km(강북 20.65km,강남 33.15km)에 걸쳐 분류하수관로공사도 시행된다.(그러나 대다수 서울시 지역이 합류식관로로 인해 결국 분류식 하수관은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하수처리장 건설에서는 중량하수처리장 시설을 확장하고(106만t),탄천 50만톤,난지도 50만톤,안양 90만톤(현 서남하수처리장)을 신설하여 당시 1일 처리능력을 36만톤에서 296만톤으로 확장하는 대규모 계획을 세웠다.(당시 하수처리장건설이 오늘날 수도 서울의 하수처리 용량을 지탱하고 있는데 탄천,서남하수처리장은 공단이,난지와 중량은 서울시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제방사업에서는 영세민 취로사업으로 양화교에서 행주대교간 6.4km의 제방을 구축하게 된다.
이같은 한강종합개발사업에는 1982년부9월에 실시하여 1985년 12월에 준공하는 사업으로 총사업비 7,264억원이 투자된다.
분야별 소요액은 한강개발 1,962억원, 저수로정비 544억원,고수부지 공원화 사업 564억원,강변도로확장 854억원, 병행사업인 분류하수관로 846억원, 제방조성 397억원,하수처리장 건설 4,059억원이 투자되었다.
이중 골재 채취(6,300만㎡)의 매각대금으로 일부는 충당하고 하수처리장건설,분류하수관사업은 서울시비로 투자했다.
개발되기 이전 한강수역의 동식물조사(1981년 4월-12월,24회 조사, 책임조사 원병오)에서 총 52종 16,317개체의 조류가 관찰되었다.
논병아리,왜가리등 17종 15,219개체(93.27%),도요,물떼새,갈매기,물닭류가 21종 700개체(4.78%)등이 조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관찰된 조류중 흰 물떼새,종다리,노랑할미새,알락할미새,밭종다리등은 2000년대에 와서는 멸종위기 2급 조류이다.
한강개발당시 서울시 인구는 891만명으로 63년부터 82년까지 연평균 6%씩 증가했다. 가장 많이 인구가 유입된 해는 63년(9%),66년(9.3%),68년(9.2%),69년(10.2%),70년(15.7%)이었다.
80년 기준으로 도로율은 15%인 반면 상수도보급율은 93%,하수도보급율은 65%, 1일 상수도급수량은 259만톤이었다.(서울시 상수도본부가 간행한 상수도백년사에는 80년 보급률은 92.7%이며 급수인구는 836만명,1인 평균 급수량은 1일 395리터,유수율은 51.35%였다. 환경부 수도100년사에 수록된 전국 평균 보급률은 54.6%이며 유수율은 55.7%로 서울의 유수율이 전국평균보다 낮았다.)
환경국제전략연구소 김동환소장은 “한강은 해외의 세느강,라인강,미시시피강과 달리 도심과의 접근성이나 활용성이 매우 떨어진다. 이는 강폭이 넓다는 점도 있지만 한강과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는 도로망의 구축과 상호 연계되는 시설물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회환경의 변화만큼 요트,낚시,수상스키,강변 골프연습장,고수부지에 피크닉장과 캠핑장은 물론 학생들을 위한 생태학습관,실험시설,실버층을 겨냥한 케이트볼장과 노인그라운드등 시대환경에 맞는 문화시설을 비롯하여 강변전시장,음악당등 문화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한강은 물이라는 친수공간의 역할과 탄소배출을 흡수하는 소중한 자원이다. 바라만 보는 한강이 아니라 한강을 활용한 대중적 문화시설과 오락시설을 갖춰 시대의 흐름에 어울리는 한강의 새로운 정립이 필요하다. 이같은 문화공간이 활성화 되면 해외 및 지방으로 가는 인력의 상당수가 수도권에서 머물며 즐길 수 있다”라고 말한다. (환경경영신문 박남식부장/환경국제전략연구소 자료)
올림픽대로 청담대교 근처의 한강종합개발기념탑
1983년경 한강개발을 하면서 골재채취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