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민일보 2024년 5월 24일 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시집의 쓸모
손택수
벗의 집에 갔더니 기우뚱한 식탁 다리 밑에 책을 받쳐놓았다
주인 내외는 시집의 임자가 나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차린 게 변변찮아 어떡하느냐며
불편한 내 표정에 엉뚱한 눈치를 보느라 애면글면
차마 말은 못하고 건성으로 수저질을 하다가
(책을 발로 밀어 슬쩍 빼면
지진이라도 난 듯 덜컥 식탁이 내려앉겠지
국그릇이 철렁 엎질러져서 행주를 들고 수선을 피우겠지)
고소한 복수 생각에 젖어 있는 동안
이사를 다니느라 다치고 긁히고 깨진 식탁
각을 잃고 둥그스름해진 모가 보인다
시집이 이토록 쓸모도 있구나
책꽂이에 얌전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기보단
한쪽 다리가 성치 않은 식탁 아래로 내려가서
국그릇 넘치지 않게 평형을 잡아주는,
오래전에 잊힌 시집
이제는 표지색도 다 닳아 지워져가는 그것이
안주인 된장국마냥 뜨끈하게 상한 속을 달래주는 것이었다
♦ ㅡㅡㅡㅡㅡ 시집을 읽는 것은 시인을 읽는 것이다. 시를 통해 인생을 읽는 것이다. 내 시집이 벗의 집 기우뚱한 식탁 다리를 받치고 있는 것을 본다면 기분이 어떨까? 상상하기도 싫은 장면이다. 시인친구는 알아도 시는 몰라서? 돈 안 되는 시집이라서? 이제는 표지색도 다 닳아 지워져가는 오래전에 잊힌 책이어서?
이사를 다니느라 긁히고 다치고 각이 떨어져나간 식탁을 보며, 벗 내외의 무심함에 상한 속을 달래보는 시인의 심정이 낡은 식탁의 모서리만큼 둥그러진 것일까? 헌책방에서 시인의 자필 사인이 그대로 있는 빳빳한 시집을 발견했을 때의 난감함 보다는 나을까?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책꽂이에 방치되거나 찢긴 채로 쓰레기장에 버려지지 않고, 가난한 벗의 기울어진 식탁을 받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일까?
시를 쓰고, 읽는 것은 삶의 내밀한 정서를 공유하는 것이다. 돈을 주고 시집을 싸서 읽는 이들이 시를 아는 진정한 독자이겠다.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