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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길
성경본문 : 전도서1:1-11
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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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간은 이제 장마 끝이어서인지, 아니면 중복이 끼어서인지 너무나 더웠습니다. 특히 열대야 현상까지 겹치므로 밤에 제대로 주무시지 못한 분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심신이 지치면 왜인지 인생살이가 고달프다는 생각에 매이게 됩니다. 더 나가서는 삶 전반에 대해서 짜증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성도들은 잘못하면 시험이 들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우리 성도들은 바른 인생관을 가져야 어떠한 시험이 온다할지라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1. 인생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본문 2절을 보면 가슴이 와 닿는 구절을 보게됩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한 문장에서 무려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외치고 있습니다.
이어서 3절에서는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고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라고 했습니다.
젊은이들은 세상에 대한 희망에 들뜨다 보니, 전도서가 읊고 있는 이런 허무한 노래를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전도서의 이런 고백은 점점 마음에 젖어드는 것을 발견합니다. 어느새 나이를 먹어 60고개를 넘어서고 있는 저부터라도 이 구절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떡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해는 떴다가 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끝임 없이 흐르고 흐릅니다.
그러나 태양은 졌다가 다시 떠오르고 바람은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물은 다시 수증기가 되어 옛날에 왔던 강 상류로 올 수 있으나 인생은 가고 나면 다시 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분명한 진리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젊은이들은 인생을 너무 희망적으로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혼하는 날부터 행복이 가득가득 고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어느 나이 많은 부인이 새로 결혼한 새색시에게 말하기를 '집안일이날 아무리 해도 끝이 없는 것이라오. 당신이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도 침대보는 구겨지고 있고 먼지는 계속해서 쌓이고 있고, 위(胃)는 점점 비어 가고 있으니 말이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 또한 아들 낳고, 딸 낳고, 키우고 공부시켜 뒷바라지하는 동안 인생은 늙어 가는 것이라오.'라고 했더니 새색시가 수심이 가득 차서 말하기를 '인생이 그렇게 따분한 줄 몰랐어요. 그것을 진작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부터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조 시대 시인인 길 재는 시를 읊기를
'500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보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을 간데 없네.
어즈버 테평세월은 꿈이런가 하노라"고 했고,
이성봉 목사님은 허사가를 쓰기를
'땀 흘리며 애를 써 모아논 재물,
안고 가나 지고 가나 헛수고로다.
적신으로 왔으니 또한 그같이
빈손들고 갈 것이 명백치 않나?
토지 많아 무엇해 나 떠나갈 때
삼척광등 일장지 넉넉하구요.
의복 많아 무엇해 나 죽은 후에
수의 한 벌 관 한 개 족하지 않나?'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도 얼마나 많은 인생들이 이 땅에서 영원히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욕망을 쫓아 살고 있습니까? 심지어 어느 사람은 부모형제도 외면한 채, 자기 욕심에만 매여 지내고 있습니다. 너무나 미련한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는 죽어서도 쓸모가 있어 가죽이나 고기, 내장이나 머리, 족발까지 다 유용하지만, 사람은 죽어서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어떤 과학자가 인간의 육체를 분석해 보니, 타올 한 장 빨 수 있는 물, 한 잔의 커피를 달게할 수 있는 당분, 몇 개의 말징을 박을 수 있는 철분, 두 세 자루의 연필심을 만들 수 있는 흑연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몸값을 계산해 보니 그 때 시세로 몇 달러도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몸값은커녕, 사람이 죽었을 때, 화장하면 많이 안 들지만, 땅에 묻으려면 아무리 작게 들어도 몇 백 만원이 듭니다. 지난주간에는 유순금 권사님의 장례식 때, 수의나 관을 파는 진열장을 보다가 깜작 놀랐습니다. 가격표를 보니 최고로 좋은 수의나 관이 몇 백 만원입니다. 그런데 죽은 후에 그런 몇 백 만원 짜리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서 수백 평 짜리 호화묘지에 묻히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2-3일면 다 썩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욕망의 길을 따라 살면 그 결과 썩어진 것을 거두지만, 하나님의 길을 따라 산 사람은 영원을 거두는 것입니다. 영국의 아프리카 탐험 초기의 대표적인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세실 로드고 한 사람은 데이비드 리빙스턴입니다. 로드는 남아프리카에서 황금전쟁을 벌리어 원주민을 수십 만 학살하고 황금과 다이아몬드를 가져와 애국자 칭호와 작위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 가서 신앙양심 따라서 노예제도와 침략전쟁을 반대함으로 그 당시에는 영국의 반역자라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로드는 무덤조차 없는 반면, 리빙스턴은 영국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세계적인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로드는 황금에 매여 산 사람이었으나 리빙스턴은 하나님에게 매여 산 사람이었습니다. 로드는 세상에서 많은 권세와 부, 향락을 누린 사람이었으나 리빙스턴은 온갖 가난 속에서 남을 섬기며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한 사람은 썩어진 것을 거두고 한 사람은 영원을 거두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두 사람의 인생 중에 어느 유형을 따라 살고 싶습니까?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 기독교는 세상 욕망은 허무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줄 아시고 욕망에 매여 살므로 썩어질 것을 거두는 자들이 되지 마시고 하나님에게 매여 살므로 영원을 거두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7절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욕심은 땅처럼 두꺼워서 파고 파도 그 욕심의 끝은 보이지 않고, 우리의 욕망의 바다는 얼마나 깊은지 모든 세상의 강물로도 채워주지를 못합니다. 8절에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재물은 아무리 가져도 욕심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10억을 가져도 일생을 얼마든지 평안히 살 수가 있음에도 좀 더 많이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처음에는 재물을 내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었으나 물질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바르게 사용하는 연습을 하지 않은 채 계속 움켜만 쥐고 있으면 결국 돈에 빠지고 돈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1:14-15 "자기 욕심에 끌리어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영국의 휴즈라는 분은 말하기를 '탐욕은 질투와 같이 한번 뿌리를 펴게되면 그 사람의 생명을 빼앗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또한 프랑스 속담에는 '탐욕한 아버지에게는 방탕한 아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유명한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크라크 케이불은 100만 달러가 넘는 엄청난 부자였음에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어느 신문기자가 묻기를 '당신을 엄청난 부자임에도 왜 그렇게 영화를 겹치기로 출연하는 등, 애쓰고 있습니까?'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머지 않아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 아이를 위해서 돈을 많이 벌어 놓아야 합니다.'라고 했는데, 결국 그는 너무 과로한 나머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죽고 말았습니다. 이는 탐욕이라는 덫에 걸리어 결국 사망을 낳은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명예욕의 구멍은 그 어떠한 권세자리로서도 채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높은 권력의 자리는 대통령일 것입니다. 그 자리에 다 한 달만 앉아보아도 원이 없을 사람들이 너무나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임기를 다 마친 대통령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권력을 누리려다가 우리 나라 대통령들은 다 불행한 말로를 맞았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하와이로 쫓겨가서 조국을 그리워 하다가 쓸쓸히 죽었고, 박정희 대통령은 부하의 총에 피살되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도 9개월 동안 권좌에서 물러난 후 백담사로 유배되고 그의 형제들도 감옥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고 노태우 대통령도 재산을 다 뺏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도 5년으로 부족한가, 그 아들을 통해서 권력을 연장하려다가 나라를 큰 위기로 빠뜨리면서 지금도 욕을 먹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미국 대통령들이 대단히 부러워 보입니다. 워싱톤이나 제퍼슨, 포드나 카터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고 고향에 내려가서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는 모습이나 특히 클린턴같은 대통령은 섹스 스캔들로 온 세계 앞에 미국의 망신을 나타낸 대통령임에도 임기를 마친 후에 여기 저기 다니면서 특강을 하는 모습은 너무나 멋집니다. 그러면 과연 미국이 이런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저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미국 대통령들은 조상 적부터 내려오는 청지기 정신으로 그 직을 수행했으나 우리 나라 권력자들은 지나친 야욕으로 치닫다가 결국 비참한 정치적인 종말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의 세상 쾌락도 내게 완전한 만족을 주지 않고 더 큰 갈증을 주는 줄 아시고 이 세상의 어떤 욕망으로 만족이나 행복을 얻으려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마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인생의 길에는 밝은 날도 있지만 어두운 날도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만약 전도서를 어떤 철학자나 율법학자가 썼다면 '헛되고 헛되다'라는 말로 시작한 오늘 본문은 설득력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아마, 약자의 비명쯤으로 취급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글을 쓴 솔로몬왕은 이 세상의 최고의 욕망을 다 누려본 사람입니다. 솔로몬은 주변 국가를 전부 장악한 최고의 권력자요, 최고의 부강국의 왕으로 군림해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궁궐에서 많은 미인들과 살았던 왕으로, 후비만도 700명이요, 빈첩만도 300명이나 되었으니, 이 세상에서 그처럼 부귀공명을 누려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살아본 결과, 그의 결론은 인생무상이라는 것이었기에 강한 설득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솔로몬은 9절에서 말하기를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길 가다보면 편편한 길도 있는가 하면 때로 높은 고갯길도 만납니다. 해가 뜨는 날이 있는가 하면 해가 지는 어두운 날도 만납니다. 바람이 몰아치는 날도 있지만 무풍지대를 순탄히 가는 고요도 만납니다. 모든 좋은 조건이 내게 닥아올 때도 있지만, 그 좋은 조건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고, 음지가 양지가 되는 날이 있다는 말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내려가는 날이 있을지라도 희망을 잃거나 비굴해서는 안됩니다. 더욱이나 하나님을 불평하거나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약5: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고 했습니다. 대신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기다리며, 내게 맡겨주신 무슨 일이든지 같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믿음으로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기회를 주시는 날이 옵니다.
또한 올라가는 기회가 있을 때에라도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재물이 있을 때, 높은 자리에 있을 때, 건강한 날에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많은 것을 심어두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갈6:10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돈은 언제나 돕니다.
내 주머니에 있던 돈이 어느 날 다른 사람의 주머니에 가기도 하고 빈 내 주머니에 다른 사람에게 있던 돈이 채워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주머니에 돈이 있을 때 열심히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많이 심어두는 자가 지혜 있는 자요, 천국 창고에 재물을 쌓아두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심지는 않고 씨앗만 움켜쥐고 있는 자는 씨앗이 죽고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일제시대 경상도에 한 부자가 있었는데 얼마나 부자인지 일본정부에 비행기 한 대를 헌납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상해 임시정부에서 파송한 독립투사 하나가 와서 독립자금을 요구하면서 '도와주면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국채를 주겠다. 그러면 독립 후 정부가 책임지고 돈을 갚겠다'고 했습니다. 부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3일 후 다시 오시오'라 했습니다.
3일 후에 다시 와서 응접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일본순사가 들이 닥쳐서 체포해 갔습니다. 이 부자가 몰래 고발했기 때문입니다. 그 독립투사는 얼마 후에 사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얼마 후, 한 밤중에 두 청년이 와서 부자에게 '이 민족 반역자야, 민족의 이름으로 너를 처형하겠다.'고 말한 후 살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얼마 후에 해방이 되었고 그 가족들은 너무나 부끄러워서 거의 빈손으로 해외로 도망치고 말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쉬운 일입니까? 만약 그 부자에게 기회가 왔을 때 해방 후에 아무 쓸짝에 없는 일본 돈으로 독립자금을 두둑히 주었다면 해방된 다음에 나라에서 얼마나 높은 대우와 보상을 받았겠습니까? 그리고 평소에 아버지가 너무 친일파 노릇을 하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기던 그 자녀들 앞에서도 얼마나 존경을 받았겠습니까? 그러나 올라갈 때, 힘이 있을 때 교만하였고 하늘이 기회를 주었을 때 선행대신이 악을 심음으로 악의 씨앗을 거두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은 지금 올라가고 있습니까? 그 때에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많은 시간, 많은 물질, 많은 사랑을 심어 두십시오. 반대로 지금 내려가고 있는 때에 있습니까? 밤이 있으면 아침이 오는 줄 믿고 낙심하거나 비굴하지 말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도로 기다릴 줄 아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인생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것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
12:13절은 전도서의 중심 멧세지요, 결론입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해 아래 모든 것이 다 헛되고 다 변함으로 풀의 꽃처럼 마르고 떨어지는 날이 오지만,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고 벧전1:25에 말씀했습니다. 옛말에는 화무는 십일홍이요, 권불 십년이요, 세불 백년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인생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사는 삶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인생만이 헛되지 않은 인생의 길을 가는 자란 말씀입니다. 장로교 요리문답 제1문에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뇨?'라고 했는데 그에 대한 대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겁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세상의 조류가 바뀌고 가치기준이 바뀐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인생의 본분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요1서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주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이 세상이나 인생의 청춘은 있다가 사라지고 이 세상의 인기나 부요나 권세는 꽃처럼 화려하게
피어났다가 떨어지지만 오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길만이 영원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강을 거스려 올라가는 고기처럼 이 험한 세파를 헤치고 주님을 향해 날마다 저 높은 곳을 행해 올라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들만이 영원의 길을 흔연히 가는 자들인 것입니다.
홍사익이라는 분은 경기도 안성출신으로 한일합방 전인 1909년에 일본에 유학하여 육군중앙유년학교를 거치어 육군사관학교을 졸업했고 이어서 육군대학을 나온 다음에 육군 중장까지 된 자로, 조선인으로서는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분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대한제국 황제의 군인 칙유까지 간직한 분이었습니다. 그는 일본의 패색이 짙은 1944년에 남방총군 병참감 겸 필립핀 포로수용소장으로 부임하였다가 일본이 망한 후 전범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언도를 받아 사형까지 된 분이었습니다.
일본인 야마모도씨가 지은 '홍사익 중장의 처형'이라는 글에 보면 일본의 가따야마 목사가 군종병일 때 홍중장의 독방에 성경을 넣어 주었는데 처형 전에 가따야마를 부르더니, 자기에게 성경을 읽어달라고 하더랍니다. 자기는 일개 신도이므로 성경을 잘 모른다고 했더니 시51편을 읽어달라고 부탁한 후 말하기를 '가따야마군 아무 걱정하지 말게. 나는 죽으면 곧 바로 하나님께 갈 걸세. 내게는 자신이 있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야마시다 대장 같은 자는 최후의 진술 시간에 '나는 도죠 녀석에게 배반당했다'고 발악하며 사형 당했으나 홍사익 중장은 조금도 흐뜨러짐 없이 최후를 맞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처형 전, 자기를 끌고 가는 이반케리라는 미국 헌병에게 성경을 주면서 전도를 했고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만나자'라고 작별을 고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 성경은 아들 홍국선에게 돌아가 큰 감동을 남겼다고 합니다. 너무나 담대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홍사익은 처음에는 풀의 꽃 같은 헛된 세상 욕망을 따라 살았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안 뒤에는 좁은 문을 열고 영원을 향해 흔쾌히 간 성도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은 지금 성도로써 어떠한 삶을 살고 계십니까? 세상에서 행복을 얻기 위해 세상 욕망을 따라 사는 자가 아닙니까? 아니됩니다. 인생의 욕망을 따라 살면 결국 허무만 남습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우리의 소망과 행복은 하나님께 있는 줄 알고 그만 믿고 그만 따라 순종의 삶을 사시므로 영원한 복을 누리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