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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 < 에베소서 4:21~24 > <2017.7.16> 한 의학 잡지에 실린 내용을 소개합니다. 미국에서 일 년에 평균 60만 명 정도가 바이패 스 심장수술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수술은 영구적인 해결이 아니라 일시적인 해결이기에 이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의 생활습관을 바꿔야만 합니다. 음식 을 잘 조절해야 하고, 술 담배를 해서는 안 되며, 항상 운동을 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큰 수술을 받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사람들이라면 삶의 방식 을 바꿔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을 잘 따를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해요. 수술 받은 사람들의 90% 이상이 옛날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이 전에 익숙했던 삶의 방식 을 다시 따라가게 된다고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바꾸느니 차라리 죽는 게 좋겠다는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옛 습관을 바꾸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 기도 하고, 바꾸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바꾸지 못하는 것 같고, 또 괜찮지 않다고 하더라도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충동을 이길 수가 없어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이 참 어렵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무 의미도 없는 말, 아무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난날 의 생활방식에 얽매여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 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우리가 너무 잘 아는데, 분명히 맞는 말씀인 것도 알겠는데 우리가 가 지고 있는 본능적인 충동과 죄성 때문에 도대체 안 돼요.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말씀 이 그렇게 힘이 없게 느껴집니다. 오늘 이 말씀에 대해 일반적으로 갖게 되는 두 가지 의문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 사람이 되었는데 다시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본문 21~24절까지 말씀의 주 동사는 ‘새 사람을 입으라!’라는 이 명령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굉장히 긴 한 문장인데 문장의 주 동사는 ‘들었다’와 ‘가르침 을 받았다’입니다. 그런데 이 두 동사가 과거형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새 사람을 입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 입니다. 어떻게 하면 새 사람이 되는가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새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 는가에 관한 말씀입니다. 옛 습관이 남아있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새 사람이 안 되는 게 아 닙니다.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옛 사람을 다 벗어버려야만 새 사람이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신 주님 안에 우리가 거하게 된다면 주님의 은혜 때문에 이제 우리 안에 새로운 원함이 생겼습니다. 새 사람을 입는다는 말은 이러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난 후에 가지게 되는 거 룩한 원함을 따라서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삶의 방식이 달라져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본질적으로 죄는 주권의 문제입니다. 죄는 내가 거짓말을 했는가 안했는가의 문제가 아니 라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가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은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 하고 내가 나이 주인이 되려고 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를 떠난 탕자의 상태 그것이 인간의 타락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것이 죄인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인간은 불행해졌습니다. 그런 인간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다시 주인이 되어 주시기를 원하셨 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다시 돌아와서 “이 제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이 마땅한 고백의 의미를 하나님께서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아니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받아 주신 것입 니다. 우리는 정말 그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 가 임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이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 님의 주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마땅합니다. 옛 사람은 벗어버리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의와 진리에 있어서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닮도록 새 사람을 입는 것이 마땅합니다. 비 록 실수하고 실패하고 좌절할 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는 새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착하게 살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할 수 있는 질문은 과연 우리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것입니다. 비록 신분이 바뀌었다고 해도 사람에게는 여전히 죄를 향한 원함이 남아 있어서 죄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죄의 본성을 누르는 것은 마치 강력한 스프링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아서 아무리 애를 써도 튀어 오르는 것은 한 순간이고 바로 그 한 순간이 수많은 사람들을 절망하게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건 안 되는 거라는 것을 아는 것부터 비로소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헨리 나우웬이 ‘집으로 가는 책’에서 인용한 내용입니다. “첫 번째 부르심은 예수님이나 하나님의 나라에 놀랍고 고상한 진리를 쫓으라 는 내용일 때가 많다. 그 말씀에 따르는 이들은 가족과 친구 공동체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두 번째 부르심은 얼마쯤 시간이 지나서 인간으로서는 예수님을 위해 거창 하고 대단한 일을 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에 찾아온다. 그 때는 포기와 굴 욕과 겸손이 지배하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되는 것 같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이 변했다는 말도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애를 쓸수록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철저하 게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애를 썼다면 아마 여러분들은 이미 실패와 포기, 좌절을 경험하셨 을 겁니다. 사소한 감정 하나도 절제가 안 되고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양보도 할 수 없 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믿음이 위선이라는 생각이 들고 나의 신앙은 가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변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꾸어 가십니다. 우리를 새로운 피조 물, 하나님의 작품으로 새롭게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오늘 성령을 통해 우리를 새 사 람으로 덧입히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때론 너무 더디게 느껴지지만 우리는 오늘도 변하 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변하지 않는다 생각이 드는 그 때에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 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예배를 통해서 또 다시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며 ‘하나님 다시 해볼게요.’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 번 겸손한 마음으로 오늘 말씀을 받읍시다. 이제 우리는 거짓된 욕망을 따라갔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 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 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크고 놀라운 그 은혜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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