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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는 본다. 어떤 풍경은 보고 싶어서 보고, 어떤 풍경은 보기 싫지만 본다.
대체로 눈을 감지는 않는다. 눈을 뜨는 것이야말로 너의 일이라 타이르면서.”
왜 찍는가, 왜 헤매는가, 왜 넘어진 곳에서 생각하는가
사진가 노순택을 오래 붙든 생각과 장면이 집약된 첫 사진론 『말하는 눈』
“어떤 눈은 말을 한다. 입으로만 말을 하는 게 아니고, 귀로만 말을 듣는 게 아니다. 눈이 하는 말을 들으려면 눈길을 마주쳐야 한다. 사진기 뒤에 숨은 채로도 눈맞춤은 벌어진다. 말하는 눈을 본 탓에 나 역시 내 눈으로 본 것에 대해 말하려 했다.” 노순택은 [분단의 향기], [비상국가], [망각기계], [검은깃털] 등 연작으로 분단국가의 모순과 국가 권력의 오작동 풍경을 포착해왔으며, 사진가로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작가다. 그는 독보적인 사진 작업뿐 아니라, 작업의 고민을 담아낸 정교하고 울림 깊은 글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작품집이나 연재글을 일괄적으로 묶어낸 책을 빼면 자신의 사유를 총체적으로 정리하고 응축한 단행본을 출간한 적은 없었다.
『말하는 눈』은 사진가 노순택을 오래 붙든 생각과 장면이 집약된 ‘첫 사진론’이다. 사진과 사람과 사회에 관한 생각을 담은 이 책은 사진의 가위질과 의미의 바느질을 숙고하는 「사진의 가위질」, 사진이 놓인 맥락을 관찰하는 「방아쇠, 총알과 필름」, 사진에 담긴 존재와 부재를 성찰하는 「사진의 시간」, 망각에 맞서 투쟁으로 기억을 지켜온 이들에 관해 말하는 「기억 투쟁」 네 장으로 이루어진다.
노순택은 ‘그때 그곳에, 내가 있었다’라는 사실 하나에 스스로를 묶은 채 자신이 찍은 사진과 글 안에 서성대고 머무른다. 그는 말한다. 어떤 눈은 말을 한다고. 말하는 눈을 본 탓에 나 역시 내 눈으로 본 것에 대해 말하려 했다고. ‘본 탓에 진 빚’에 대해 사고할 수 없다면 사진을 멈춰야 한다고. 비평가이자 작가 존 버거는 사진에서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불러낸다’고 말했다. 사진이 지닌 진실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모두 유심히 관찰할 때 만날 수 있다. 『말하는 눈』은 그 의미를 강렬하게 전하는 책이다.
목차
여는 글: 말하려던 눈들 ·7
사진의 가위질 16
쓰러진 당신을, 나는 찍지요 ·20
살, 삶, 사진 ·24 / 이것은 대통령이 아니다 ·31 / 당연했던 일들의 어색함 ·36 / 죽음과 웃음이 울면서 싸울 때 ·43 / 똑같은 사진의 주인은 누구인가 ·50 / 의존하는 자는 알고도 모른다 ·56
방아쇠, 총알과 필름 62
밥 먹을 땐 쏘지 마라 ·66
찍힌 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68 / 그때, 찍사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73 / 찍히는 모욕 찍는 모욕 ·80 / 나쁜 끝은 없다 착한 끝은 있다 ·84 / 지켜본 다는 것과 지킨다는 것 ·89
사진의 시간 96
사진의 시간, 시간의 사진 ·100
잠자던 필름이, 어느 날 깨어날 때 ·103 / 시간은, 기억을 데리고 떠난다 ·109 / 누적된 처음 ·113 / 그때 안 보였으나, 지금 보이는 것 ·116 / 새로운 과거가 쏘아올린 거대한 공 ·123 / B가 A의 모든 것이었다면, 만일 그랬다면 ·127 / 옳았기를, 틀렸기를 ·131 / 저녁, 그는 죽음으로 내 귀를 때렸다 ·136 / 차에서 우는 사람 ·139 / 새야, 새야 ·144 / 모르는 자들의 죽음 ·147 / 돌아오지 않는 화살 ·150 / 어머니가 묻히자, 눈발이 쏟아졌다, 우연 또는 필연처럼 ·154
기억 투쟁 158
기억은 선, 망각은 악인가 ·162
답하라, 왜 우는가 묻고 싶거든 ·167 / 미리 망한 사회의 판결문 ·173 / 내가 아는 어떤 영화 ·179 / 가뭄 ·182 / 백기완이 싫었다 ·186 / 보이는가, 이 불 ·190 / 그의 싸움은 매번 실패했다 ·195 / 4·3 이후의 4·3은 누구의 책임인가 ·200 / 어떤 이의 죽음이 더 많은 죽임의 예고가 될 때 ·204 / 남자는, 그건 또 아니라고 했다 ·213 / 주제 파악 ·225
닫는 글: 그때, 내가 본 것의 의미 ·229
사진 목록 ·253
글 가져온 곳 ·254
저자 소개
저 : 노순택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대학원에서 사진학을 공부했다. 세상 돌아가는 온갖 문제에 관심을 품어왔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전쟁과 분단이 낳은 부조리한 사회적 풍경에 주목해왔다. 2004년 <분단의 향기>를 시작으로 <얄읏한 공>(2006)·<붉은틀>(2007)·<비상국가>(2008)·<좋은살인>(2010)·<망각기계>(2012)·<시켜서 춘 춤>(2016)·<핏빛파란>(2018)·<검은깃털>(2022) 등의 국내외 개인전을 열었고, 같은 이름의 사진집을 펴냈다. 동강사진상(2012)·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2014)·구본주예술상(2016)을 받았다.
도시를 떠나 섬으로 이주한 뒤, 바닷가로 쓸려 온 잔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책 속으로
우리에게 지난 시간이란 대체 무엇일까. 돌아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지난 시간을 사진으로 붙들어 맬 수 있을까. 사진은 본성적으로 과거 지향적이다. 현재를 찍는 순간 이미 과거의 장면이요, 미래를 찍는 사진은 발명된 적도 없다. 내가 썼건, 남이 썼건 사진에 관한 수많은 글 또한 과거를 거닌다, 과거를 헤맨다. 아픈 일이다, 돌아본다는 건. 즐거웠던 일조차도..
---「여는 글: 말하려던 눈들」중에서
판단은, 단판이 아니다. 겹겹이다. 물리적 차원의 판단이 끼어 있는가 하면, 정신적 차원의 판단도 끼어 있다. 아무튼 끼어 있다. 고로 우리가 마주하는 사진은 겹겹의 선택과 배제가 토해낸 의결의 산물이다. … 사진이 뭔가를 보여준다는 얘기는, 뭔가는 감춘다는 얘기다.
---「사진의 가위질」중에서
인상 깊은 말씀이 있었다. “나쁜 끝은 없어도 착한 끝은 있다”는 말이었다. … 그 한 문장이 며칠째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쁜 끝은 없어도 착한 끝은 있다. 그 말씀을 읽는 방법이 여럿일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착함의 좋은 끝’을 말하였으나, 나는 ‘착함의 한계’를 생각했다. 사람의 착함엔 한계가 있다. 사람의 나쁨엔 한계가 없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건 결국 나쁜 짓이 아닐까.
---「방아쇠, 총알과 필름」중에서
사진 안에 선의가 있는가 없는가를 판가름할 잣대는 없다. 사진은 결국 콘텍스트(맥락)에 의존하는 텍스트일 뿐이고, 어느 맥락에 사진을 놓을 것인가, 어느 맥락으로 사진을 읽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을 뿐이다. 사진은 결코 착한 매체일 수 없다. 어떤 ‘선의’도 쉽게 ‘악의’로 변질시킬 수 있고, ‘악의’마저 ‘선의’로 포장할 수 있는 교묘한 매체다. 선악의 판단 기준은 사진 그 자체가 아니라, 사진이 놓인 맥락일 수밖에 없다. … 그것을 사진의 함정이라 부를 수도, 반대로 가능성이라 여길 수도 있다. 어쩌면 사진 자체에 선의를 판가름할 잣대가 내장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이야말로, 타인의 고통을 담는 사진의 생산과 사용에 관해 중단 없이 사고해야 할 이유가 아닐까.
---「방아쇠, 총알과 필름」중에서
사진기에 담긴 장면들은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에 관한 존재 증명이 되었다가 이내,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이 이젠 흘러가 버렸다’는 부재 증명이 되고 만다. 존재를 증거하기 위해 태어났으나, 부재를 증거하고야 마는 사진의 역설. … 시간을 붙들 수 없다는 불안 속에서 눌러대는 우리의 추억 사진, 그래서 우리가 제 맘대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사진을 더 찍을까, 덜 찍을까.
---「사진의 시간」중에서
흔들린다. 넘어진다. 엉뚱한 길로 빠진다. 산 사람을 찍어야 하는데, 어쩌다 죽은 사람을, 죽은 사람의 옛 사진을 찍고 있을 때가 많다. 산 사람의 터전을 찍어야 하는데, 어쩌다 죽은 사람의 뫼를 찍고 있을 때도 많다. 내 사진을 봐야 하는데, 모르는 사람들의 사진에 눈이 돌아간다. 사진에 길이 있을까. 이른바 ‘정도正道’가 있을까. 있다면 알고 싶다. 그 길을 피할 수 있도록. 시간 앞에 영원한 사람이 없듯, 영원한 사진이란 없을 것이다. 사람도 사진도 시간 앞에선 바스러진다.
---「사진의 시간」중에서
한 번의 전쟁을 직접 치르는 것과 여러 번의 전쟁을 목도하는 것의 무게는 어떻게 다른가. 겪는 것과 보는 것의 감도와 무게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무게를 계량화할 수 있는가, 잴 수 있는 감도인가. 나는 내가 진 짐의 무게도 몰라 허우적대며 살아왔다. 다른 이가 진 짐의 무게를 가늠하려 더듬이를 세웠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가늠이라는 사실을 안다. 어려운 일이다. 타인이 진 고통의 무게를 잰다는 것은. 본 것이 쌓였다 해서 겪은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더듬이가 부러진다.
---「기억 투쟁」중에서
파국이란 멀리 있는 시공간일까. 아직 당신에게 도달하지 않았을 뿐 이미 곳곳이 파국이요, 시시때때로 파국이었다. … 사진을 믿는가.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다루되,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닫는 글: 그때, 내가 본 것의 의미」중에서
출판사 리뷰
사진가의 시간과 공간, 사진의 안과 바깥
‘현장’을 바라보고 머무르고 담아내며 고민한 흔적들
『말하는 눈』은 글과 사진을 단선적으로 모은 선집이나 작품집이 아니라, 응축된 생각을 엮은 글을 세밀하게 배치한 사진과 함께 읽어내는 예술에세이에 가깝다. 그런데 여기에 사진산문이나 사진에세이 대신 ‘사진론’이라는 말을 붙였다. 그만큼 철저하게 ‘사진’을 성찰하겠다는 뜻이 아닐까. 이 책은 지은이가 사진가로서 ‘현장’을 바라보고 머무르고 담아내며 고뇌하고 사투한 흔적으로 가득하다. 그가 포착하고 집중하는 장면은 현실과 동떨어진 예술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제주·광주·평택 등 우리 일상 곳곳과 마주하고 교차한다.
『말하는 눈』은 「사진의 가위질」, 「방아쇠, 총알과 필름」, 「사진의 시간」, 「기억 투쟁」 네 장으로 이루어진다. 「사진의 가위질」에서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며 공정하여 사사로움 없는’ 사진이란 말장난에 불과하며 사진의 생성에는 반드시 의미의 확장·축소·굴절이 있음을 지적한다. 펼쳐지고 이어진 시공간을 잘라내는 사진은 반드시 은폐를 내포한다. 사진이 뭔가를 보여준다는 얘기는, 뭔가는 감춘다는 얘기다. 시공간을 찰칵 잘라내는 동시에 잘린 시간의 앞뒤, 잘린 공간의 안팎을 탐색하며 의미를 꿰어가는 과정의 치열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방아쇠, 총알과 필름」에서는 하루에 사진을 찍어대는 횟수가 밥숟가락을 뜨는 횟수보다 많아진 시대에 사진에 담긴 의도를 어떻게 판단할지 고민한다. 사진은 맥락에 의존하는 텍스트다. 중요한 건 생산된 사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어느 맥락에 놓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선의의 맥락에 놓였던 사진도 악의를 위해 봉사할 수 있다. 노순택은 그것이 사진의 함정이며, 또한 사진의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사진의 시간」에서는 산 사람의 터만큼이나 죽은 사람의 무덤을 자주 찾은 기억을 되짚으며, 시간 앞에 바스러지는 사람과 사진에 관해 숙고한다.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 과거·현재·미래의 관계와 의미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그는 “과거란 징검다리를 밟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는 현재란, 삶에는 없다”고 말한다. 「기억 투쟁」에서는 망각에 맞서 힘겨운 투쟁으로 기억을 지켜온 이들을 목도한다. 기억조차, 기록조차 때론 망각의 재료가 되는 고통 속에서 상처와 한 몸이 된 사람들의 풍경은 저릿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사진이란 오묘한 구슬이어서,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기도 하고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거울 앞에서 멈칫하게 하는 것, 그것이 지은이가 사진으로 건네고 싶은 말이다. 그런 까닭에 “사진을 믿는가” 하는 노순택의 물음은,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다루되,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통찰은 독자 마음을 뒤흔들고 요동하게 한다.
책의 표지부터 판권까지, 내용에서 물성까지,
책을 여는 순간부터 닫을 때까지 이어지는 깊은 서사
『말하는 눈』은 한 손에 들고 글에 몰두하여 읽기 좋은 사이즈로 만들되, 사진 또한 충분히 음미할 수 있도록 이미지는 개별 판면을 차지하도록 구성했다. 사진 판면은 사진 안에서 보이는 세계와 그 바깥의 세계를 함께 말하는, 노순택 사진에 내포된 뜻을 담아 디자인했다. 가운데 놓인 사진은 사진이 말하는 바에 집중하게 하며, 바깥 경계면과 닿아 있는 사진은 사진 바깥으로 연결된 세계를 암시한다. 제목을 하단에 놓은 본문과 표지 디자인은 기존 위계를 벗어난 시선과 생각을 상징한다. 또한 노순택 사진이 지닌 심도를 독자가 더욱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일반적인 4도 인쇄 대신 5도 인쇄를 시도하여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흑백사진의 밀도와 심도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표지는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하여 책이 담고 있는 은유적 의미를 디자인과 물성으로 구현했다. 띠지 디자인 역시 책에서 말하려는 바를 감각적으로 담아내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읽고 나서, 찬찬히 되짚어보는 책이 있다. 단지 아름다워서 서둘러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심해 깊숙이 가라앉은 생명을 찾아내듯 숨을 참으며 뜻을 꼼꼼히 더듬어보는 책. 『말하는 눈』은 노순택의 사진과 글에 담긴 뜻과 사유를 반추하고자 앞으로 되돌아갔다가, 책에서 마주한 세상이 내 삶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깊이 공명하게 되는 책이다. 무심히 넘긴 사진에 내재된 의미가 다시 읽힐 때, 물 흐르듯 읽은 이야기 속에 숨겨진 사연을 발견할 때, 무심코 바라본 표지가 어떤 뜻을 품고 있는지 인지할 때 온몸으로 다가오는 파동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무덤에게”로 시작해, 청년노동자 김용균의 이야기를 담은 판권으로 끝을 맺는다. 사진으로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말하는 눈』은 섬세한 시각으로 삶을 포착하고 통찰하려는 이,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에 부딪혀 고민하는 이,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서 몸살을 앓은 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탐구하고 사진의 본성을 궁리하는 이의 책장에 놓여, 곁에 가까이 두고 자주 보며 오래 되새길 책이 될 것이다.
추천평
읽는 내내 경기가 끝나고 자신이 둔 수를 처음부터 복기하는 바둑기사를 떠올렸다. 『말하는 눈』은 한국 사진사에 중요한 인물이 써 내려간 회고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에게 ‘자각’이 왜 소중한지 돌아보게 하는 철학서다.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의심하지만, 철저하게 곱씹어볼 순 있지 않을까 그 가능성을 믿는 이에게 묘한 위안이 될 기록물이 등장했다.
- 김신식 (작가·감정사회학자)
노순택은 오늘날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이자 최상의 결과물일 것이다. 지리적 범위를 전 세계로, 시간적 범위를 수십 년으로 확장하더라도 딱히 그의 앞자리에 놓일 이름을 떠올리는 일이 내게는 쉽지 않다. 물론 이것은 노순택에 대한 일방적인 상찬이 아니라 우리가 믿었던 어떤 사진들이 지닌 한계를 의미한다. 낡고 어둡고 협소한 세계관, 이미지에 대한 중독에 가까운 매혹과 그런 자신에 대한 혐오, 불필요할 정도로 단련된 육체적 기량, 대답도 출구도 없는 오래된 물음들. 이 작은 책은 그런 것들이 번잡하게 뒤엉켜 흘러 다니는 공간에 조용히 놓인다.
- 김현호 (사진비평가·보스토크 프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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