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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 < 에베소서 4:25 > <2017.7.23> 거짓과 참의 문제는 사실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우선 거짓말을 정의하는 것부터 단순하지 않고, 그보다 더 어렵고 복잡은 것은 거짓말이 언제나 죄인가 하는 것입니다. 애굽 왕 바로 가 히브리 아이들을 죽이려고 했을 때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산파가 했던 거짓말, 여리고 성 에서 정탐꾼을 살리기 위해 라합이 여리고 군사들에게 했던 거짓말은 죄가 아닌 것처럼 보 이지 않습니까? 어쨌든 거짓말이니까 죄라고 해야 하는 건가요? 정직은 그리스도인에게 있 어서 정말 소중한 가치입니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은 그리스도인의 성품으로 정직 은 당연한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을 쉽게 생각해서도 안 되고 이 문제는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단순히 정직함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이 정직함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함을 다루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진 실함과 정직함은 동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 는 정직함과 참된 것을 말하는 이 진실함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 늘 본문 말씀을 나누면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첫째로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하셨는데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참된 것이 란 무엇일까요? 몇 주 전에 나누었던 것처럼 15절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는 말씀은 진리를 진실하게 말하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는 말 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거짓은 사실이 아닌 것을 말 씀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이신 예수가 아닌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방 신들 우상들을 의미한다고 보는데, 이방인이었던 에베소 교인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이전에 섬기던 우상과 그 이방종교에서 말하던 가치관들이 다 거짓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 다. 전에는 내가 인생의 주인인 줄 알고 돈과 명예와 권력을 가지려 했고 쾌락을 추구했습 니다. 돈이 많아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이 가진 것을 보면 너무 욕심이 났고 그래서 그 것을 소유해야만 했고 그러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이제는 알았습니다. 무엇이 참인지를 알고 보니까 지난 시간 주님을 알지 못하고 살 았던 그 삶은 거짓에 속아서 산 삶입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거짓의 의미이고 오직 예수 안에 있는 것이 참된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여전히 버리지 못한 거짓이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 다. 이런 말은 어떨까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잖아.’ ‘그렇게 고생한다고 누가 알아주 지도 않아. 적당히 해.’ ‘양심의 가책은 잠깐이지만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평생이 편한 법이 야.’ 이런 말들은 거짓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알고 계심을 믿는다면 어 떻게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아는 사람이 어떻게 횡령을 하고 사기를 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쉽게 속이려고 할까요? 적어도 복음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세속적인 가치관에 의해서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하는 말들,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것들은 다 거짓입니다. 자녀가 좋은 대학을 가는 게 중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중요한 일이지요. 그래서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낼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것이 부모들의 마음일 겁니다. 하지만 그럼 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살펴보면 좋은 대학 에 보내기 위해서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사실은 다 거짓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짓과 참의 구분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의해서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는 말씀은 단순히 윤리적인 요구가 아 니라 본질적으로 신앙적인 요구입니다. 둘째로 오늘 본문 말씀은 단순히 일반윤리가 아니라 교회를 향해 하신 교회적인 권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고 하십니다. ‘이웃’은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입 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그러니까 우리 가 다 한 몸의 지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참된 것을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참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그 믿음 안에서 때로는 진실한 마음으로 책망을 하기도 합니다. 교회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참된 것에 대한 일치된 고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선포하며 그렇 게 살지 않는 사람들을 책망하고 낙심한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통해서 위로와 용기를 주는 일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진리라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신중해야 하고 조심해야 합니 다. 주님의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에서 세속적인 것들이나 인간적인 것들이 자꾸만 드러나고 사람을 높이고 자랑하려고 한다면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그러한 거짓된 것을 버리 고 참된 것을 말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곳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것들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참된 것을 말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말을 불신자들에게 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그 우 상을 깨뜨리고 그렇게 공격적으로 참된 것을 말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들은 아직까지 우리와 동일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오히려 훨씬 더 신중해야 되고 정중해야 되고 무례하지 말아야 합니 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할 때에도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주님은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 하시면서 우리가 다 한 몸의 지체들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한다는 것이 때로는 고통 중에 참고 기다려야 하는 침묵을 의미하기도 하고 아 픔과 두려움 중에 해야 하는 대면과 직언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정직하게 사 실을 말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못을 박고 상처를 주는지 모릅니다. 그 말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닌데 참된 모습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참된 것을 말할 때 우리가 한 몸의 지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 고 공동체를 아끼는 마음으로 말할 때에만 참된 것을 말한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다 상하게 만든다면 아주 극단적인 경우에는 팔을 잘라 내거나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 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팔이나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면 얼마나 안타 깝고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겠습니까? 그걸 어찌 쉽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쉽 게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쉽게 다른 사람을 정죄하면 안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거짓 을 버리고 네 이웃에게 참된 것을 말하여라. 이는 너희가 한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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