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세상에서
곽 흥 렬
밤이 깊어가는 시간, 텔레비전 화면에 눈길이 꽂혀 있다. 한 연예인의 인생 역정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마음을 빼앗아 놓아서이다. 한때는 유명 트로트 가수로서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사람이, 부인의 잘못으로 나락의 골짜기를 헤매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일어선 사연이었다. 파란만장한 지난 삶을 서리서리 풀어내는 목소리에 깊은 회한이 어리비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해 뜰 날》이라는 노래가 대히트를 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송대관宋大琯이다. 그는 이 곡으로 오랜 무명가수의 설움을 떨쳐내었고, 밝고 진취적인 노랫말로 하여 ‘희망 전도사’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다. 그 이후 승승가도를 달려, 《정 때문에》《네 박자》《차표 한 장》《유행가》 등 발표하는 노래마다 대단한 인기를 불러일으켰다. 그 덕분에 세상이 부러워할 큰 재물까지 덤으로 따라왔었다고 했다. 한창 절정기를 누리고 있었을 때는 감당이 불감당일 만큼 출연료가 들어와 밤마다 돈다발을 베고 누워 잠자리에 들었을 정도였다며 무용담을 펼치듯 털어놓았다. 돈방석에 앉는다는 말이 이럴 때 어울리는 표현이리라.
하지만 좋은 일에는 마魔가 끼어들기 십상이라고 하였던가. 그렇게 잘나갔던 사람이 훗날 돈방석 대신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될 줄을 그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인의 분수를 헤아릴 줄 몰랐던 물욕이 빚은 불행이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의 아내가 무리한 토지 개발 사업과 원정도박으로 집안을 풍비박산 내고 말았다고 한다. 그로 인해 수십 년 세월 동안 청춘을 바쳐 밤을 낮 삼아 벌어 모은 오백 억이라는 거금이 하루아침에 허공의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가족의 숨결이며 웃음소리가 밴 정든 집마저 남의 손에 넘어가면서 급기야 월세살이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내몰렸다. 눈물을 머금고 빚잔치를 한 뒤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고 나서도 여전히 백육십 억의 부채가 남았었다니, 참 얼마나 기가 막히고 가슴이 내려앉을 노릇이겠는가. 말이 쉬워 몇 백 억이지, 시시한 사람 같았으면 억장이 무너져 그 자리에서 그만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을지도 모를 일이다.
부인이 이처럼 용서 받지 못할 만한 일을 저질렀는데도 그는 그런 아내를 책하지 않았다. 책하기는커녕 자기가 오랜 세월 무명가수로 힘든 시절을 보낼 때, 가정을 건사하느라 애쓰며 고생한 아내를 생각하니 차마 그럴 수 없었노라고 오히려 역성을 들었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자신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속이야 이루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쓰리고 아팠겠지만, 그는 아내의 허물을 감싸 안는 것이 자기 스스로를 위하는 길이라 여기며 마음을 다스렸으리라.
그의 안타까운 사연을 만나고 있으려니, 문득 ‘조강지처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이라는 옛말이 떠오른다. 가난하고 어려울 때 고생을 함께 한 아내는 집에서 내쫓아선 아니 된다는 뜻이 아닌가. 이 귀하디귀한 가르침을, 걸핏하면 헌신짝 버리듯 팽개치는 것이 오늘날의 세태다. 돈이 피보다 진하고 물질이 사람 위에 군림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그래도 끝까지 사랑 하나로 해체 위기에 처했던 가정을 지켜낸 그의 순정한 삶의 자세에 아낌없는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그러면서 만일 그것이 나한테 닥친 일이었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처신하였을까, 그의 자리에다 스스로를 세워 놓고 질문을 던져 본다.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보아도 그 정도의 그릇은 언감생심일 것 같다. 이제 다시는 전과 같은 아픔이 없기를 바라며, 그의 앞길에 부디 좋은 일만 생겨났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빌어 주고 싶다.
가수 송대관, 지금 이 순간 그가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 아니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아니 아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참 크고 듬직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