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7월 7일에 베이핑(현 베이징 시) 서남쪽 방향 루거우차오(루거우 다리, 중국어 간체: 卢沟桥, 정체: 盧溝橋, 병음: Lúgōuqiáo)에서 일본군의 자작극으로 벌어진 발포 사건으로, 중일 전쟁의 발단이 되었다. 1905년,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만주 진출에 성공했다. 1928년에 난징 국민 정부가 성립되고, 1929년 대공황이 세계를 휩쓸자 일본은 만주, 몽골에 대해 본격적으로 야욕을 드러냈다. 1931년 9월 18일 밤, 심양 북쪽 유조구(柳條溝)의 만주 철도선이 폭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일본 관동군의 자작극이었으나, 일본 관동군은 이를 중국군의 소행으로 규정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제국과 중화민국은 전쟁 상태로 돌입, 그 후 전선을 확대하게 되었다.
중국이 일본의 침략 행위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동안, 일본은 1932년 2월에 만주 지역 대부분을 점령했고, 급기야 1932년 3월 1일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 푸이를 내세워 괴뢰 정부 만주국을 설립했다. 중국군은 기계화 병력인 일본군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베이징은 8월 29일에, 다음날은 톈진이 함락되었다. 이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중화민국과 일본의 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 되었고 중국내 반일감정은 더욱 거세졌다. 국민당은 공산군과의 내전을 종식하고 함께 대(對)일본 항전에 들어갔다.
2. 통킹만 사건 Gulf of Tonking Incid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