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경자 시집 {어초장} 출간
탁경자 시인은 전남 광양에서 출생했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전문가과정을 수료했고, 2017년 계간시전문지 {애지}로 등단했다.
상징과 은유는 최고급의 수사법이며, 깊고 뛰어난 성찰과 인식의 힘이 없으면 그 수사법은 이미 그 효과를 발휘할 수가 없다. 탁경자 시인의 첫 시집인 {어초장}은 상징과 은유의 수사법을 가장 잘 활용하는 시인으로서, 이형권 교수의 표현대로 “이 세상의 삶의 상처를 위한 응시와 역설의 노래”라고 할 수가 있다.
탁경자 시인의 첫 시집 어초장은 시와 삶,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사랑의 자세를 반듯하게 잘 드러내고 있다. 그의 시작법은 시를 위한 시를 억지로 치장하는 가식이 아닌, “누군가의 그림자에 불과한”(「물집」) 삶과 그리고 “먼바다를 가기 위해/ 그물에 탑을 달고”(「바다의 노인」) 있는 사람에 대한 진지한 접근에서 비롯되고 있어서 시가 가볍거나 추상적이지 않다. 더 나아가서는 서사의 한 축을 서정의 진경으로 확장시켜 시의 의미를 걸러내는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시와 삶, 그리고 사람을 근본적으로 사랑하는 탁경자 시인이 “시의 추를 던지며/ 별을 낚는” 어초장의 시집에서 “새벽을 수선하고 있는 수선화/ 꽃이 세상을 피우고 있는 거다”(「수선화」)와 같은 수준 높은 작품들이 “끙”하고 시의 무게를 내려놓는 것을, 때로는 편하게 때로는 아프게 획득해낸다는 사실을 마주치게 된다.
- 권혁재, 시인
탁경자의 시집 {어초장}은 삶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그 상처를 응시, 성찰하면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역설의 세계로 나가는 시편들로 구성되었다. 이 시집에서 상처의 응시는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사회적, 역사적, 이념적인 차원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시인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생명 혹은 심미의 세계를 상상하는데, 그 결과로 폐허 속에 핀 꽃이나 물속에 피어나는 꽃의 이미지가 탄생한다. 한편, 시인이 상처를 극복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세상 너머의 고요한 자연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다. 자연은 고요한 장소로서 세상의 소란스러움과 대비되는 세계로서, 인간마저도 자연의 일부가 되는 고요의 풍경 속에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은 “새벽 강가에서/ 꽃을 깨우고 있는 것은 새떼다/ 새떼가 어둠에 키를 꽂고/ 햇살을 사방으로 풀어 놓고 있는 거다/ 수런수런 번지며/ 새벽을 수선하고 있는 수선화/ 꽃이 세상을 피우고 있는 거다”(「수선화」 부분)라는 자연처럼, “새떼”와 “햇살”과 “수선화”가 하나로 화합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탄생시키는 장소이다. 자연은 항상 “새벽”처럼 상처의 “어둠”을 물리치고 밝은 세상을 꽃 피우는 세계인 것이다. 그곳에서는 인간도 자연과 하나가 된다.
---이형권, 문학평론가, 충남대 교수
이 시집은 시에 관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시집을 열자마자 맨 앞자리에 등장하는 「시」는 탁경자 시인이 오랜 세월 시의 길을 걸어온 마음이 어떠한지 드러낸다. 시의 길은 “보일 듯 아니 보일 듯/ 너는 구불구불/ 너무 멀리 있었고/ 불현듯 바람이 불 때마다/ 내 길이 아닌 듯싶어// 돌아오고 싶더라/ 울고 싶더라”(「시」 부분)라고 고백한다. “너무 멀리 있”는 시의 길은 가도 가도 그 실체를 보여주지 않아서, 이 지난한 길가기를 포기하고 “돌아오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인이 간직한 시적 자의식이라 할 수 있을 터, 한 시인으로서 시에 관한 이러한 생각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시인이 시에 관해 사유하는 것은 한 시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한 고뇌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낭만적 아이러니라는 말도 있거니와, 시인은 항상 자신의 시가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면서 완전한 시를 향한 열망으로 시를 쓴다. 자신의 시가 불완전하다는 인식은 오히려 더 나은 시를 향한 정신적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탁경자 시인이 이 시집의 첫 작품에서 이러한 인식을 드러낸 것은 그만큼 시를 향한 진심이 깊다는 것을 뜻한다. 가령 “시를 읽다/ 시를 쓰다/ 죽어도 좋을”(「시의 물에 빠진 파리」 부분)이라는 시구는 그러한 진심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시적 자의식이 타인을 향할 때는 시(인)에 대한 경외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녀의 첫 시집에서
시 한 작품이 걸어 나와
와인 속으로 들어가던 밤
우리는 마당에서 모닥불을 지폈다
하얀 철문이 건반이 되어 반짝이고
피아노 소리가 고샅길을 따라
가는 걸음으로 길게 걸어갔다
살구나무에 걸려 있는 달
고양이가 올라가
달을 물고 내려왔다
초겨울의 별이 잔물결로 흐르고
고양이가 달을 삼키며 사라졌다
밤은 차고 읽어가는 시집은
절정의 모닥불처럼 뜨거워졌다(「고양이와 달」 전문)
시인은 지금 “그녀의 첫 시집”을 읽고 있다. “모닥불”과 “와인”이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몇몇 지인들과 함께 시집 발간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는 듯하다. 장소는 “하얀 철문”과 “마당”이 있는 전원적인 집이고, 시간은 “초겨울”의 “달”이 떠 있는 밤이다. “모닥불”을 피우고 “와인”을 마시면서 “시집”을 읽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멋진 일이다. 이 아름다운 서정의 시간에 “살구나무에 걸려 있는 달”을 “고양이가 올라가”서 “물고 내려왔다”가 “달을 삼키며 사라졌다”라고 한다. 이때 “고양이”는 실제의 동물로 볼 수도 있지만, “고양이” 모양의 구름이 “달”을 가리어 버렸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달”빛이 가려지면서 어두운 하늘에는 “별이 잔물결로 흐르”고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달”과 “별”이 빛나는 “초겨울” 밤에 시의 향연을 통해 “시집은/ 절정의 모닥불처럼 뜨거워졌다”라고 한다. 시에 관한 진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달이 섬진강/ 은어 떼를 몰고 오면/ 강가에서/ 시의 추를 던지며/ 별을 낚는다”(「어초장」 부분)라는 송수권 시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도 그러한 진심과 관련된다. 탁경자 시인은 이러한 마음으로 시의 길을 찾아간다.
달이 섬진강
은어 떼를 몰고 오면
강가에서
시의 추를 던지며
별을 낚는다
그 별 손바닥에 올려
心자를 심으면
만장의 문장들이
서정의 잎새로 그늘 쳐 오고
민초들의 노래가 돌고 돌아
뻐꾹새 피울음으로
능선을 타고 넘어오는
지필묵 잃은 어초장
언제쯤 벗어 놓고 갔나
섬돌 위 밑창 닳은 신발 위로
솔바람 타고 온 새들이
한 그림자를 스치며 간다
*송수권 시인의 집필실
---[어초장] 전문
---- 탁경자 시집 {어초장}, 도서출판 지혜, 값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