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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동초등학교19,2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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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쉼터 스크랩 1929년1월23일/독고의용수비대장 홍순칠, 세상 - 2015.1.23.뉴투外
하늘나라(홍순창20) 추천 0 조회 39 15.01.28 16: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929년1월23일 - 독고의용수비대장 홍순칠, 세상

 

[오늘의 인물] 

 

 

<홍순칠>
<독도>


외로운 섬, 새들의 고향‘ 우리땅 독도를 노리는 일본의 야욕은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끈질기지만 이와 함께 독도를 지키기 위한 이들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홍순칠’은 일본으로부터 독도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맞서 싸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1929년 1월 23일 태어난 홍순칠은 조부인 홍재현으로부터 ‘독도 이야기’를 듣고 자라며 독도에 대한 사랑을 키웠으며 어느 날 우연히 경찰서 마당 한 쪽에 ‘시마네현 오키군 다케시마’이라는 표목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독도를 수호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6·25 참전 경력이 있는 군인으로, 1953년 4월 20일 일본의 독도 침탈에 맞서기 위해 군인 출신들이 주축이 돼 자비로 결성한 민간부대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해 독도 수호에 나섰다.

 

1974년 12월 독도의용수비대장 홍순칠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홍 대장의 미망인 박영희는 남편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사흘 간 붙잡혀 있으면서 "'앞으로 독도에 대해 언급하지 마라'고 강요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박정희의 독도밀약과 그의 이율배반적 태도의 내막을 알지 못하는 홍 대장은 1969년, 1972년 두 차례에 걸쳐 독도개발계획서를 경상남도에 제출하나 무시당했으며 이후 1976년 다시 제출했을 땐 예산이 없다는 핑계 뿐인 회신을 받는다.


80년대 초 홍순칠은 북한 방송에 소개됐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다시 고문을 받았으며 1986년 고문후유증으로 숨졌다.


홍순칠은 민주화가 되면서 2005년 전병헌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 등이 특별법을 제정해 국가유공자로 지정됐다. 이 특별법으로 홍순칠을 비롯한 독도의용수비대의 다른 유공자들은 국립묘지에 묻힐 수도 있고 지원금도 타게 됐다.

 

 

 

홍순칠

업로드된 날짜: 2011. 7. 3.  DOKDO!!

 

박근혜 유신독재 때 독도수비대장 홍순칠고문과 죽음, '독도밀약'

2012. 11. 9.

새누리당 대선 후보 박근혜는 독도에 관한 입에 발린 사견을 내세우기 전에 자신이 독재권좌에서 권력을 행사하던 시기의 사건들에 대한 해명과 자신의 정치적 자산인 박정희의 매국적 행각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사과가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독도를 지켜낸 이들중 홍순칠은 군사반란세력에 의해 온 갖 고초를 겪고...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고 어떤 일이 있었을까?


그는 박근혜가 유신독재권력을 누리던 1974년 중정에 끌려가
집필을 못하도록 하는 오른손 골절등의 고문을 겪고
80년대 초 또 다시 고문을 받고 끝내 그 후유증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독도예산’ 일본보다 많이 쓰고도 뒤통수 맞는 이유-2015.1.20.뉴타外  http://blog.daum.net/chang4624/8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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