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흉터가 될게.”
....그것은 그와 나의 거짓 주문.
흉터
가시를 삼키다 번외 ver 강특
written by 냥꾼
2006.09.25
-난 데뷔하고 싶고, 성공하고 싶어.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이 악물고 이 시간들을 견뎌왔는데.. 이제와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을 이 어리석은 사랑 때문에 코앞에서 포기할 순 없어.
-............
-껍데기로 살래. 그게....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이야.
.....
...
..
.
강인이 번쩍 눈을 떴다. 덥지 않은 날씨인데도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다 머리를 치고 지나가는 지독한 두통에 눈살을 찌푸려버렸다. 아침부터 온 몸이 천근 같이 무거웠다.
왜 하필 오늘 같은 날 그런 꿈을 꾼 걸까. 지독했던 그 날의 일은 이제 그만 흑백 사진 속에 묻어두고 싶었는데... 이미 멈춰버린 지독한 운명인데, 과거는 그 색깔을 잃지 않고 내 심장을 갉아먹는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쥐고 강인이 서랍에서 두통약을 꺼내 거실로 나왔다.
숙소 안은 다른 때와는 다르게 너무나 고요했다. 이미 잠에서 깨어난 멤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오늘은.... 그들이 떠나는 날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을 배웅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두려운 거다. 이렇게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봐 버린다면.. 이젠 정말 마지막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까봐...
“어디 아파?”
알약 하나를 입 안에 털어 넣고 물과 함께 삼키는데 옆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꿈속에서의 차가운 그 목소리와 겹쳐져 강인은 얼굴을 찡그리고 말았다. 이렇게 베베 꼬인 채 끝나버린 우리.. 결국 함께이길 선택했던 그들이 부러워 왜인지 그에게 더욱 화가 난다. 이래선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동의했던 건 자신이었는데도...
“응. 두통.”
“많이 아파?”
“아니, 왜?”
나도 모르게 차가운 목소리가 나와 버린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감정 상태를 모를 리 없는 정수였다. 평소 같으면 조용히 자리를 피해줬을 텐데 오늘은 끝까지 옆에서 묻는다.
“오늘.... 가 볼 거니..?”
“응.”
“...........”
입을 다무는 그를 등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아직도 완전히 끝나지 못하고 베베 꼬여버린 이 감정. 계속해서 처연한 울음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녹슨 수레바퀴. 차라리 부수어져 버렸더라면 마음은 편했을 텐데. 차라리 그대로 망가져버렸더라면.. 귓가에 끝없이 울리는 이울음 소리 따위는 듣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세상의 모든 소리를 피하고 싶은 사람처럼 강인은 물속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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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이이이잉-----------
푹 눌러쓴 모자에 크고 짙은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강인이 주머니에 손을 꽂고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어두움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그의 두 눈동자가 어떠한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울고 있을까... 아니면.....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이특이 천천히 강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떠나가는 비행기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를 보고 싶었지만... 겁이 났다. 그 눈동자가 자신을 원망할까봐.
“은혁이랑 동해가... 너 못 봐서 서운해 했어.”
“고맙데. 그리고 미안하데. 최대한 이해해주려고 노력했던 게 너라는 걸 아는데.. 그 때 아무도 이해 못한다며 소리 질렀던 것...”
“왜 여기 까지 와선 배웅 안 해줬어?”
대답도. 그렇다고 그를 바라보지도 않는 강인의 단단한 옆모습에 이특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마음을 닫기로 했던 그 때, 그도 그의 마음을 닫아 버렸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가끔 이렇게 단단한 그가 서글플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나의 선택이었다는 걸 알아...
네 마음을 닫게 만든 건 바로 나였으니까...
“.....하나만 물어볼게.”
먼저 숙소로 가기위해 뒤돌아선 이특의 등 뒤에서 강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뒤돌아선 이특은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안경을 벗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과거에 대한 상처가 잔뜩 담겨있어서....
덜컹- 심장이 소리를 낸다. 아프다고...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흉터가 되지 못한 이 상처들이 아프다고....
왜 이 상처는.... 흉터가 될 수 없는지.....
“왜... 그랬어...?”
“‘그 날’... 왜 갑자기 날 그렇게 놔버렸어?”
아무런 대답도 해 줄 수가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입 바로 앞까지 튀어 나와 가슴이 답답했지만 이특은 그의 물음에 대한 대답대신 자신의 입을 두 손바닥으로 막아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이특의 모습에 강인의 무표정했던 얼굴에 피식- 쓴 웃음이 스쳐지나갔다.
혹시... 너도 아직 흉터가 되지 못했니....?
“끝까지... 대답해주지 않는구나...”
“....영운아...”
“됐어. 이제 나도 더 이상 묻지 않을게.”
자신을 스쳐 지나가버리는 강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특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앞에서는 결코 보일 수 없었던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투둑-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흡....”
결국 내 사랑은... 눈물 소리조차 마음껏 낼 수 없다.
결국 이런 사랑은... 아프다고 그 누굴 원망할 수조차 없어.
그런데.... 그런데 영운아.....
이렇게 가엾은 마음인데도...
그 누구도 우릴 보듬어 주지 않아.
아니, 우리도 스스로를 보듬어 줄 수 없어...
그래서...
아니, 그런데도...
“.....사랑해.....”
결국은... 네 앞에선 할 수 없는 고백.
“많이.... 힘드냐?”
지글지글 고기 구워지는 소리.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음. 또르르륵- 조그마한 잔에 맑은 술이 들어차는 소리. 매캐하게 섞이는 연탄불 연기와 담배 연기. 그 속에서 기계처럼 반복적으로 익은 고기를 뒤집고 술잔을 비우던 영운이 고개를 들었다.
“뭐가?”
“...네 맴버들.. 기사 떴던데, 오늘 한국 떠났다고.”
“.........”
“그럼 넌.. 아니, 슈퍼주니어는 어떻게 되는 거냐?”
태형은 강인이 가수가 되기 위해 했던 그동안의 노력들을 모두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친구들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 상황이 이렇게 까지 악화되어버린 지금, 그 무엇보다 자신의 앞길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비어있는 잔을 채워주며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태형에게 영운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사무실에선 일단 잠잠해질 때 까지 지켜보자는 쪽이야.”
“모르지. 그 기간이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아니면 그 이상이 될 지.”
“너무 길어지면 이대로 공중분해 될 수도 있는 거고.”
씁쓸한 소리를 너무나 담담하게 하고 있는 영운의 속을 태형이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냥 모르는 척 했다. 그리고 금세 비워버린 잔을 다시 채워주었다. 째깍째깍- 왁자지껄한 술집에서 구석에 앉은 영운과 태형만이 아이러니하게도 초시계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또 강인은 기계처럼 입 안으로 고기와 술을 번갈아 집어넣으며 소주 한 병 반을 혼자서 다 비워냈다. 시간이 흐르고 술기운이 오르기 시작하자 영운이 붉어진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때까지 태형도 아무 말 없이 기다려 주었다.
“처음 그 사람을 봤을 땐... 사실 별 생각 없었거든. 그러다 곧잘 화도 내고, 쓴 소리도 하는 그 사람 보면서 어라? 생각보다 성격 까칠하네.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 음... 그러다 그렇게 앞에서는 나서서 쓴 소리 하던 사람이 뒤에서는 미안해서 혼자 우는 모습 보면서... 그때부터 조금씩 신경 쓰였던 것 같아.”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 하다가 뜬금없는 이야길 하는 영운의 얼굴을 태형이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알콜 탓일까.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낮고 느리게 반응했다.
“그리고... 언젠가 부터 자꾸 그 사람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어. 눈에 안 보이면 뭐 하고 있을까 궁금하고.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그냥 신경 쓰이고, 조금 서운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속상해서 괜히 장난치고 싶고, 마음은 안 그러면서 작은 일에 시비 걸게 되고...”
“음.. 그리고 힘든 일 혼자 해내려고 할 땐 옆에서 도와주고 싶고, 나한테 든든하게 기대고 의지했으면 좋겠고. 또 그렇게 의지해주는 그 사람 보면 왠지 가슴 한쪽이 따뜻해지고...”
영운이 숨을 삼켰다. 그리고 심장이 뛰고 있는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가져가며 말을 계속했다.
“있지.... 그 사람을 보고 있으면 내 가슴이 따뜻해진다. 여기가.. 여기가 따뜻해져. 근데.. 조금 아프다. 아니, 실은.. 많이 아프다.”
“..............”
“숨도 못 쉬게 아파... 이런 감정이.. 이 감정의 이름이 뭔지, 너는 아냐?”
“............”
“아니?”
영운의 미간이 좁아져 있었다. 가슴을 움켜쥔 손에는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뼈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리고 태형은 생각했다. 어쩌면 그가 힘들어하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미래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사랑... 아니냐?”
“그래, 그렇지.. 사랑이지..”
“나도 당연히 사랑이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그게 남자면?”
태형이 이번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도대체 자신의 친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가 한 마지막 말의 의미 역시 파악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부정하고 싶었다.
“....뭐?”
“그게 남자면, 내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남자면, 그래도 사랑이냐?”
“그래도 사랑이냐고.”
설마.... 태형이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부정하고 싶은 것 처럼 일부러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대꾸했다.
“야..... 말이 되냐? 그런 일 있었다고 너까지 왜 그래. 그런 건.. 나도 쉽게 느끼는 거야.”
영운이 고개를 들고 태형을 바라보았다.
“나도 나랑 제일 친했던 네가 다른 사람이랑 더 친한 것 같으면 괜히 서운하고 그래. 난 또 뭐라고. 술이나 마셔, 임마.”
피식 웃으며 소주 한잔을 단숨에 삼켜버리는 태형의 모습을 영운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가 막힌다는 듯 웃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눈동자 속에 숨어있는 어떠한 것의 이름이 당황이나 의심, 혼란 같은 어지러운 이름들이라서 영운도 그만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우습다.”
“.....뭐가?”
씁쓸하게 웃으며 또 술 한 잔을 단숨에 비우는 영운의 말에 태형이 이번엔 조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자 영운이 비어버린 소주잔을 다시 채우며 입을 열었다.
“똑같은 감정인데 그 대상이 여자냐 남자냐에 따라서 그 이름이 다르다니. 우습지 않냐?”
“푸하하! 생각해보니까 진짜 우습네.”
웃음을 터트리는 영운을 바라보며 태형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리고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장난기 묻어있던 얼굴을 지우고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너.....”
“깊게 생각하지 말라며. 술이나 마시자. 벌써 고기 반은 다 탔다.”
영운은 그런 그를 잘라버렸지만.
달칵---
이미 어둠에 익숙해졌던 영운이 문을 열자마자 쏟아져 나오는 밝은 빛에 눈을 찌푸렸다. 이미 어둠이 깊게 내려앉은 새벽... 모두들 당분간 집에 가 있기로 했었기에 숙소는 비어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거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주량을 조금 넘긴 탓에 무겁게만 느껴지는 몸을 이끌고 영운이 숙소 안으로 발을 디뎠다.
희미한 초점. 지지직거리는 TV소음만 가득 찬 거실을 천천히 둘러보자 소파에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든 그가 보인다. 자신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한숨이 세어 나왔다.
왜 내 시선의 끝엔... 항상 당신이 있지.....?
지지직거리는 소음보다도 쌔근대는 그의 작은 숨소리가 더욱 깊이 머릿속에 새겨지는 것은.. 분명 우정과는 조금 다른 이름. 하지만 알면서도 숨겨야하는 이름.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든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영운이 허리를 굽혔다. 혹여 곤히 든 잠이 깰까.. 조심스럽게 그를 품에 안자 따뜻한 사람의 체온을 찾아 자신의 품으로 파고들어온다. 그리고 그런 그를 내려다보는 영운의 눈동자는 짖어졌다.
아직도 이렇게 당신의 체온이 간절해.
그런데... 왜 이 인연은 이미 멈춰 버린 걸까.
조심스럽게 그를 침대에 눕히고, 차가운 이불의 느낌에 몸을 움츠리는 그의 어깨까지 이불을 덮어준 영운이 침대 옆에 앉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와 단 둘이 있는 이 공간을 도망치듯 빠져나왔을 테지만, 지금은... 술기운 때문에 몸이 무겁다고, 그렇게 핑계를 대 버렸다.
곤히 잠들어있는 그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 그의 체온을 손끝으로 느끼기도 전에 주먹을 쥐어버렸다. 그는.... 내게 허락된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단 한 순간도. 아니, 이미 흑백이 되어버린 그 기억의 저편에서 당신은 내게 허락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이름과는 다른 이름으로...
하지만 내가 우정과는 다른 이름을 꿈꾸는 순간. 그 순간부터 그는 절대 자신에겐 허락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는 일이야.
-...뭐...?
-.....난 사랑보다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이 더 소중해.
-형은 자신 있어? 나 놓고, 형 심장 도려내고, 그렇게 빈껍데기로 행복할 자신 있냐고!
-왜 대답 못해! 그럴 수 있냐고!
-.......할 수 있어.
-거짓말 마! 나 놓기가 무섭다고 했잖아.. 날 놓을 수가 없다고 했잖아!! 형도 자신 없잖아!!!
-사랑 없이 세상을 살 순 있어도, 그 사랑을 택하기 위해서 버려야할 많은 것들 없이는 살 수 없어. 난 우리 부모님 절대 배신 못해.
-우리는... 안 돼.
그 날의 나는.. 그의 앞에서 무릎 꿇고 비참하게 울었다. 감추고, 숨기다 결국 내뱉어 버린 내 고백. 그리고 내 마음 앞에서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을 놓을 수 없다며 울음을 터트렸던 그. 그리고 그 다음날, 싸늘한 목소리로 역시 안 되는 일이라며 등을 돌렸던 그.
울고, 소리 지르고, 악을 쓰고, 가슴을 쳐도.. 결국 그의 선택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결국 내 선택도 같아졌고.
그를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매달려도 봤지만.. 결국은 나도 겁이 났었으니까. 그래서 어쩌면.. 그 때에는 당신을 핑계 대며 내 사랑을 놓아버렸는지도... 결국 붙잡지도, 놓지도 못했던 내가 가장 겁쟁이였는지도...
하지만....
“.....사랑해....”
이 마음은 흑백이 되질 않는다.
“....사랑해, 형....”
이 상처는 흉터가 되질 않는다.
“...흐읍.... 사랑해, 박정수...”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를 품에 안고 싶었지만 차마 손을 뻗을 수 없었다. 그를 대신해 침대시트를 손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고 꽉 움켜쥐고 강인은 울음을 터트렸다.
“흡... 사랑해...”
하늘아.....
네가 멈춰버린 이 인연이 너무나 지독해....
“사랑해!!”
기억만을 흑백으로 남겨두고, 여전히 향기가 남은 이 마음은 너무나 지독해...
“사랑해!!!”
아직도... 이렇게 간절한 마음.
“사랑해............”
울다 지쳐 눈을 감는 강인은 알지 못했다.
그와 똑같이 침대시트를 움켜 쥔 이특의 두 손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는 걸...
그와 똑같이 이특의 감은 두 눈에서 비에 젖은 아픔이 흘러내리고 있었다는 걸...
꾹 다문 그 입술이... 사랑해라고 속삭이고 있었다는 걸...
“영운이 학생 왔어?”
“아, 네.”
숙소 안에 정수와 단 둘이 남는 것이 부담스러워, 잠이 깨자마자 아침 일찍 집으로 왔다. 갑작스러운 강인의 방문에 놀란 듯 부엌에서 일하고 있던 가정부가 행주로 두 손을 닦으며 나와 그를 마중했다. 아버지는 일을 나가셨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침이면 항상 베란다에 가득 놓여있는 화분에 물을 주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녀의 모습을 찾아 집 안을 조금 두리번거리던 강인이 가정부에게 물었다.
“어머니 어디 가셨어요?”
“아, 사모님 병원 가셨어.”
“병원이요?”
“응. 사모님이 말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요즘 건강이 좀 안 좋으시거든.”
뜻밖의 소식에 놀란 강인이 되물었다.
“어디가 얼마나요?”
“뭐, 특별히 어디라기 보단.. 이번에 영운이 학생 있던 그 그룹에서 그런 일 터지고 나선.. 마음고생이 심하셨어. 그래서 몸이 전체적으로 좀 허약해 지셨나봐.”
아차 싶었다. 평소에도 마음이 강하질 못해서 조금만 신경을 써도 몸부터 나빠졌던 어머니였는데, 자신의 고통이 지독해 그녀를 돌보지 못했다. 자신이 말했다는 말은 하지 말라며 부탁하는 가정부를 등지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가족들이 쓸데없이 걱정하는 것이 싫다며 아프단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 어머니였다. 그래서 강인은 그녀의 몸 상태를 알려면 그녀가 복용하는 약의 양을 몰래 보곤 했다.
이번에도 습관처럼 안방으로 들어가 약 상자가 들어있을 옷장 맨 아래 칸을 뒤졌다. 어머니는 소중하거나 감추고 싶은 것을 항상 그 곳에 두셨다. 그래서 강인이 어렸을 때에는 어머니 몰래 옷장을 열어 그 안에 든 동전주머니에서 500원씩 꺼내다 군것질을 하곤 했었다.
“이게 뭐지...?”
그런데 그 곳엔 약상자 대신 낯선 봉투만이 하나 숨어있었다.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강인이 무심코 봉투 안에 든 것을 꺼내 펼쳐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든 낯익은 이름을 발견한 순간 그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워져버렸다.
“영운이가 왔어요?”
그리고 그 때....
안방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섰다.
“영운이 왔니? 연락이나 좀 하고 왔으면 맛있는.............”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서며 반가운 듯 말하던 그녀가 자리에 멈추어 섰다. 멍하니 옷장 앞에서 낯익은 종잇조각을 들고 있는 아들의 모습... 그녀의 손에서 투욱- 하고 가방이 떨어졌다.
“...여...영운아......”
“...이게.... 뭐예요....?”
자리에 앉아있던 영운이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녀에게 종이를 내미는 손이 파르르르 떨리고 있었다. 결국.... 어지러움을 느끼며 비틀하는 그녀에게 영운이 소리쳤다.
“이게 뭐냐구요!!!!!!!!!!!!!!”
그의 외침은... 절규에 가까웠다.
-각서를 써줘.
-..........네?
이미 한바탕 울고 나서 기진맥진해진 정수가 새빨갛게 부은 두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함께 울었는지 창백한 얼굴에 두 눈만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다 다시 자신에게 내밀어진 종이와 팬을 바라보았다. 각서....
-내가 너무 잔인하다고 해도 할 수 없어. 이게 부모 마음이니까...
-....어...머니.....
-흡... 미안해. 이런 일 까지 시켜서 정수한테는 정말 미안해. 하지만 아줌마는 불안해. 우리 영운이.. 제 아빠 그렇게 반대하는데도, 이 힘든 일 하겠다고 이 악물고 견뎠던 애야. 이제 데뷔도 얼마 안 남았는데 나쁜 일 생길까봐... 난 너무 불안해.
그녀가 정수의 앞에 무릎을 꿇고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울음 앞에서 정수는 펜을 드는 수밖에 없었다. 펜을 쥔 손이 눈물에 젖어 미끄러웠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갈 때마다 눈물이 함께 떨어졌지만.....
박정수는 김영운을 동료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내 마음속에 묻을게....
..................사랑해, 김영운.....................
쏴아아----
쏟아지는 비가 마음까지도, 아픔까지도, 기억까지도.. 모두 쓸어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열린 창문에서 비가 세어 들어와 옷깃과 피부를 차갑게 적셨지만 정수는 그저 창문 앞에 꼼짝 앉고 서 있을 뿐이었다. 손을 뻗어 밖으로 내미니 손가락 사이로 물방울이 망울망울 떨어져 내린다. 가슴이... 서늘했다. 그의 손을 그렇게 놓아버린 후로 계속 그랬다. 빈 껍데기만 남아서 내 가슴은 언제나 창문을 열어 놓은 듯, 싸한 바람이 불었다.
콩콩--
그 때 문 밖에서 들리는 소음에 정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문을 두드리는 작은 소음. 머리보다... 심장이 먼저 반응을 한다...
문득 드는 생각에 서둘러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역시...
그가 서 있었다.
콰과광--!
어둠속에서 번갯불에 언뜻 들어난 그의 얼굴이 울고 있었다. 소리 없는 울음.. 아니... 어쩌면 거친 세상에 묻혀버린 우리의 심장처럼.. 거칠게 내리치는 천둥소리에 묻혀버렸을지도 모를..
갑자기 울컥 하며 올라온 무언가가 눈물샘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따라 정수의 볼에도 그가 부풀어 떨어진 투명한 빗물이 흘러 떨어졌다.
마음이.... 너무 아파.....
널 눈앞에 두고도.... 안을 수 없는 내 심장이.. 너무나 가엾어.
그의 모습은 단단해 보였다. 너무나 단단하게 보여서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리면 그대로 깨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 위태로운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서.. 손을 뻗어 영운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파르르 떨리며 감기는 두 눈. 그리고 그와 동시에 떨어져 내리는 무거운 마음.
하늘아......
네가 이런 우리들의 사랑을 안다면....
이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더라면.....
“한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가 천천히 눈을 뜨고 정수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 때에도.... 단... 한번도... 듣지 못했어... 그래서... 그게 계속... 마음에 남아서...”
“.............”
“.....나를..... 사랑...했었어...?”
투둑- 무겁게 흘러내린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정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가 모두 알아버렸다는 걸....
그리고...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걸....
“..나.... 형에게... 사랑받은 적... 있었어....?”
숨이 막혔다. 그를 마음에 품은 후로.. 항상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말할 수 없는 고통에,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에.. 숨이 막혔다. 하지만... 정수는 미소 지었다. 마지막을 알리는 고백은... 마지막에 와서야 말할 수 있는 이 마음은... 우리에겐 너무나 지독했다.
“....사랑했어.”
아니..... 아직도 ‘사랑 했어’가 아닌 ‘사랑해’지만....
“가슴 아프게... 가슴 벅차게... 너무나.. 간절하게...”
그래...
너무나 절실하게...
“‘인간’ 박정수가.. ‘인간’ 김영운을 사랑했었어.”
‘인간’ 박정수가 ‘인간’ 김영운을 사랑해....
손을 뻗는 영운의 품에 말없이 안겼다. 그리고 그제서야 들을 수 있었다. 거친 세상 속에 묻혀 들리지 않았던 그의 울음소리. 꼭 껴안은 팔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그래서... 정수도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점점.. 영운의 울음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강한 척 했지만.. 결국 이렇게 지독한 마음 앞에선 그 누구도 강해질 수 없었다. 그의 옷을 온통 적신 물방울은 어쩌면 빗물이 아니라 그의 눈물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고마워....”
“그거면... 됐어....”
영운아... 이제야 알 것 같아.
우린 그냥 껍데기는 아니었다는 걸..
내가 박정수라는 껍데기를 택한 대신...
네가 김영운이라는 껍데기를 택한 대신...
우린 서로의 심장을 온전히 가졌으니까,
이렇게 지독하게 서로를 사랑했으니까.
내 안에 김영운이, 네 안에 박정수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린 껍데기는 아닌 거야.
그걸.. 바보 같이 이제야 깨달았어, 영운아.
바보같이 마지막에 와서야.. 이렇게.....
그의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자신의 심장에 새기고 싶은 사람처럼..
목마르게 그를 갈구하던 영운의 입술이 정수의 왼쪽 가슴에서 멈추어 섰다.
그리고 그 위에 자신의 흔적을 세기는 영운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상처와 섞여 들어갔다.
“이제....”
영운이 고개를 들고 정수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가 왼쪽 가슴에 새긴 상처가 지끈지끈- 울었다.
“형의 흉터가 될게..”
흉터는 더 이상 아프지 않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었으리라.
대답대신 두 눈에 고여 있던 마지막 눈물을 떨어트렸다.
하느님........... 이대로 나의 눈을 멀게 해주세요.....
지금 내 앞에 선 이 사랑만을 기억하도록......
하느님........... 이대로 나의 귀를 멀게 해주세요.....
지금 내 앞에 울리는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만을 기억하도록....
하느님........... 이대로 나의 모든 오감을 잃게 해주세요......
지금 내 품에 안겨온 그의 모든 것만을 기억하도록.......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영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빠!”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총총거리며 뛰어와 품에 안긴다. 그 자그맣고 말랑한 몸을 품에 안으며 정수는 미소 지었다. 옹알거리는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니 아이의 손에 쥐어있는 달달한 아이스크림 맛이 난다. 다시 한 번 오동통한 볼에 입을 맞추고 정수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가 아이스크림 사주셨어?”
“네! 아빠도 먹을래요?”
“드실래요겠지! 어서 내려와. 아빠 옷에 아이스크림 묻으면 어쩌려고 그래.”
어느새 다가온 아내가 아이에게 손을 뻗으며 그런다. 그런 그녀에게 괜찮다며 고개를 저어보이곤 다시 아이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자신이 아빠를 차지했다고 생각했는지 아이의 표정이 의기양양하다. 그런 아이를 보며 정수는 또 미소 지었다.
그의 나이 서른아홉. 이젠 방송계에서 제법 큰 손이 되어있었다. 아니, 대한민국 대표 MC라는 칭호가 따라붙을 만큼 그는 그가 원하던 일을 완벽하게 쟁취해냈다. 그리고 그의 나이 서른둘에 어머니가 소개시켜주신 여자와 결혼도 했다. 마음이 없는 결혼.... 사실 그 누구라도 상관없는 결혼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녀는 마음이 곱고, 따뜻한 좋은 여자였고, 정수도 그런 그녀에게 최선을 다 했다. 아직도 비우지 못한 숨겨둔 마음 한 구석, 그녀의 방이 될 수 없는 그 곳. 그것이 미안해서 정수는 항상 최고의 남편, 최고의 아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근데 아빠. 이번엔 어디 가는 거야?”
“중국. 이번엔 아빠 혼자 가지만, 우리 하얀이 백번 코~ 자고 나면, 그땐 우리 하얀이도 아빠랑 같이 가자?”
이번에 중국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음악 축제에 영광스럽게도 대표 MC로 초청받아서 공항에 나온 길이었다. 이제 30분 뒤면 비행기에 탑승해야했다. 아빠 힘드시겠다며 이제 그만 내려오라고 손을 뻗는 아내에게 고개를 저어보이곤 아이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녀의 우려대로 아이의 손에 쥐어져있던 아이스크림이 티셔츠 끝에 흔적을 남겨버렸다. 그녀가 아이의 엉덩이를 아프지 않게 손바닥으로 때렸다.
“거봐, 엄마가 조심하라고 했지!”
“히잉...”
“괜찮아. 화장실 다녀올게.”
“지워지겠어요?”
“조금밖에 안 묻었는데 뭐.”
아내와 아이를 등지고 화장실로 들어왔다. 조금밖에 안 묻었다며 걱정 말라고 하긴 했지만 흰 티셔츠위에 남겨진 초코아이스크림의 흔적은 쉽게 지워질 것 같지 않았다. 한참을 끙끙 거리다 겨우 대충 흔적을 지우고 화장실 밖으로 나오던 정수가 누군가와 부딪혔다.
“죄송합니다.”
“..................”
얼굴을 들키면 공항이 시끄러워질 것이었다. 그래서 습관처럼 얼굴을 숨기며 쓰고 있던 모자를 더욱 푸욱 눌러쓰고 사과를 전한 뒤 재빠르게 돌아섰다. 하지만 그는 몇 발자국 못가 걸음을 멈춰야 했다.
낯익은 시선.....
낯익은 향기.....
아니,
그리웠던 시선.....
그리웠던 향기.....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멍하니 자리에 서 있던 정수가 천천히 뒤돌아섰다.
숨이 멈췄다.
심장이 멈췄다.
15년 전의 그 날처럼...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 눈동자.
아니, 세월의 흔적이 묻어 그리움에 더욱 짖어진 그 눈동자. 15년 전 그가 왼쪽 가슴에 새겨두었던 흉터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흡...”
울음이 터져 나오는 입술을 막았다. 평생...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다. 앞으론 절대... 그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랬던 그가 꿈처럼, 환상처럼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자신과 마주하고 있었다.
어수선한 공항 안에는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득했지만, 그 곳에서 정수와 영운만이 멈춘 시계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째깍- 째깍- 지나가는 시계소리. 그 안에서 둘 만이 과거에 멈춘 사람처럼... 그렇게....
“...얼굴... 좋아 보인다.”
먼저 침묵에 금을 가른 것은 영운이었다. 희미한 미소. 그 미소가 너무 멀게만 느껴져서 정수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그가 다가간 한 걸음 만큼 영운이 뒤로 물러섰으니까. 안타깝게 바라보는 정수의 시선에 영운이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소식은... 종종 들었어.”
“......”
“아이가... 이제 5살이라고?”
“.......”
무어라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이 열리질 않았다. 입을 열면 울음부터 터져 나올 것 같아서.. 이제는 한결 편해 보이는 그의 앞에서 엉엉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았는지 영운도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겨우 진정이 되어갈 때 쯤.. 다시 입을 열었다.
“...형.. 지금 행복해....?”
-...형.. 지금 행복해...?
-응. 아직도 네가 내 곁에 있잖아.
그 언젠가...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 속 저편에서 들려오는 같은 물음. 하지만 이번엔 뭐라고 대답해야할까. 네가 내 곁에 없는데... 나는... 행복한 걸까....?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그의 눈동자만 바라보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종종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오는 아내의 모습... 아이와 아내, 그리고 나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던 영운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갑자기 몸을 바로하며 정수에게 허리를 굽혔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앞으로 세계를 대표하는 MC가 되시길 바랍니다.”
영운이 뒤돌아섰다. 심장이 덜컹 소리를 냈다. 그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게 정말..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란 걸. 그리고 그걸 느낀 다음에서야 정수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운아!!!”
15년만에 불러보는 제 사랑의 이름....
그리고 이제는... 평생 불러볼 수 없을 이름....
뒤돌아서는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들고 있던 작은 가방에서 팬을 꺼내 그의 손바닥에 꼼꼼하게 몇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자신의 손바닥에 적힌 글씨를 확인한 영운의 눈동자가 순간 일렁였다. 그를 바라보는 정수의 가슴도 일렁였다.
“나는... 행복해, 영운아.”
“그러니까 너도 행복해야 돼?”
영운이 글씨가 쓰여진 주먹을 꼭 쥐며 미소 지었다.
“나는... 그거면 됐어.”
영운이 다시 뒤돌아섰다. 그리고 그가 공항 밖으로 나가 더 이상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정수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젊었던 날의 내 사랑.
젊었던 그 날에도 가질 수 없었던, 용기낼 수 없었던 내 사랑....
그래서 아직도 이렇게 간절한 내 사랑....
“아빠.... 울지마....”
어느새 눈물이 흘렀는가보다. 바지자락을 붙잡고 아빠를 올려다보던 아이의 눈에도 금세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정수가 그런 아이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눈물을 감추려는 것처럼 아이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아이의 옷자락이 축축이 젖어 들어갔다.
“저 아저씨가 아빠 울렸어? 내가 때찌 해줄까?”
“....아니....”
“저 아저씨 누군데?”
“아빠의 흉터.”
“흉터가 뭔데?”
아빠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는지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 한다. 그런 아이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정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영원히.... 흉터가 될 수 없는... 아빠의 상처.....”
‘.....형의 흉터가 될게.’
꽉 쥔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볼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벽에 등을 기댄 영운의 주먹이 아플 만큼 꽉 쥐어져 있었다. 입술을 깨물고 있던 영운이 천천히 손바닥을 펴 들었다. 그러자 다시 나타나는 글씨... 이제는... 눈물에 섞여 번져버린.....
[아직도 네가 내 마음속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행복해, 영운아.’
손바닥으로 두 눈을 가리는 영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우리는 평생 서로를 마음에 품고 살 테니까.....
“나도..... 행복해 형.....”
영원이 흉터일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사는...
그러나 그것을 흉터라고 말하는...
그것이... 우리의 사랑......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사랑한다.
-The end-
================
제가.. 강특을 이어주지 않은 이유는..
제가 그들을 적게 사랑해서도 아니고, 그들이 덜 안타까웠기 때문도 아닙니다.
단지, 은해와 같은 사랑이 있었다면, 강특과 같은 사랑도 있었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아니, 사실은.. 현실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결국 강특과 같은 결말이 더욱 많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들이 서로를 여전히 품고 있기에..
이 소설의 결말은 Happy ending이었다고 감히 말해봅니다//
이제 드디어 가시를 삼키다를 제 손에서 완전히 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여러분도 마음 편히 가삼 마음속에 묻어두세요!ㅋ
곧 새로운 소설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몸 건강히! 필승!
첫댓글 아아진짜재밌어요ㅠㅠㅠ 은해꺼도봤는데 코멘못남겨서 죄송해요! 그러니까 저 눈팅한거아닙니다 ㅋㅋㅋㅋ
건필하세요~
저 처음 봤는데, 오늘 강특편. 은해편은 내일 봐야겠어요. 감동적이에요. 비록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작가님 말대로 해피앤딩인것 같습니다^_^ ..잘보고가요~
다 봤습니다... 너무 안타까워요.. 그냥 눈물이 나네요..ㅠㅠ
해피엔드네요, 완벽한.
가시를 삼키다를 보는 내내 마음에 걸렷던 강특 커플,,이렇게 번외까지 올려주시고,,감사해요:D 흉터일 수 없는 상처ㅠ아프겟죠ㅠ가삼 마음속에 잘 간직하겟습니다,,새로운 소설 기대할게요!!
최고에요~!!! 가슴을 찡~하게 만들더니 눈물까지 나오게 하네요.
단숨에 완결까지 읽어버렸어요~현실에 대항한 은해와 현실과 타협한 강특이었네요..가끔은 정말 그들에게 저런 일이 벌어진다면 현실과 타협하는 쪽을 택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지만요 ^^ 상처와 흉터라는 진행형과 과거완료형의 단어가 가슴아프게 다가오네요
반갑습니다. ^^ 노블리제에 가입하고, 처음 읽은 소설입니다. 완결방에서 하루에 서너 편씩 읽고, 드디어 오늘! 강특 번외편까지 보게 되었네요. 읽는 내내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가슴 한편으론 씁쓸하면서도, 입가엔 미소가 지어지네요. 저도 이 소설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 동성애를 현실적으로 다룬 소설이 비교적 적다고 생각했었는데, 좋은 소설 잘 읽고 갑니다. 다음번에도 좋은 소설로 뵐 수 있길 바라요.^^
ㅠㅠ 마지막에 막 울었자나요..ㅠㅠ 다음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건필하세요..
번외 기대하고 있었는데...역시.....말이 안나옵니다...너무 울어서 가슴이 너무 아파서 미칠 것 같은.....정말 해피엔드....가슴아픈 해피엔드....
첫댓글 아아진짜재밌어요ㅠㅠㅠ 은해꺼도봤는데 코멘못남겨서 죄송해요! 그러니까 저 눈팅한거아닙니다 ㅋㅋㅋㅋ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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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봤습니다... 너무 안타까워요.. 그냥 눈물이 나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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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를 삼키다를 보는 내내 마음에 걸렷던 강특 커플,,이렇게 번외까지 올려주시고,,감사해요:D 흉터일 수 없는 상처ㅠ아프겟죠ㅠ가삼 마음속에 잘 간직하겟습니다,,새로운 소설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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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완결까지 읽어버렸어요~현실에 대항한 은해와 현실과 타협한 강특이었네요..가끔은 정말 그들에게 저런 일이 벌어진다면 현실과 타협하는 쪽을 택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지만요 ^^ 상처와 흉터라는 진행형과 과거완료형의 단어가 가슴아프게 다가오네요
반갑습니다. ^^ 노블리제에 가입하고, 처음 읽은 소설입니다. 완결방에서 하루에 서너 편씩 읽고, 드디어 오늘! 강특 번외편까지 보게 되었네요. 읽는 내내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가슴 한편으론 씁쓸하면서도, 입가엔 미소가 지어지네요. 저도 이 소설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 동성애를 현실적으로 다룬 소설이 비교적 적다고 생각했었는데, 좋은 소설 잘 읽고 갑니다. 다음번에도 좋은 소설로 뵐 수 있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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