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꽃 / 김별
도시의 빌딩 숲이 별천지로 내려다보이는 산동네
누구는 사변 후에 삼팔따라지며 오갈 데 없는 떨거지들 피난곳이라 하고
또 누구는 저 밑에 기차 화통 삶아 먹은 연기를 뿜어 올리는 공단이 들어설 때
칸칸이 방 하나에 부엌 하나 지게길보다 못한 미로를 따라 다닥다닥 판잣집이며 벌집이 들어섰고 굴속을 드나드는 박쥐처럼 공돌이 공순이 날품팔이며 뜨내기들이 눌러앉게 되었다는데 언제부턴가 연변이며 흑룡강성에서 온 우리말도 남의 말도 아닌 그렇다고 외국어도 아닌 제3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티베트며 동남아 어디 유달리 춥게 보이는 연탄 같이 검은 얼굴의 사람들이 얹혀살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야 어디나 매 한 가지
계단을 오르는 모퉁이 구멍가게 전봇대 옆 공중전화부스에 매달려 별을 헤며 약속을 하고 어두운 골목길에서 아직은 이른 눈물을 닦고 세 개밖에 남지 않은 손가락을 꼽으며 쓰러지던 마음을 다시 다잡았던 것인데
어느 날 재개발 현수막이 내걸리고 나서 사람들은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성을 쌓듯이 방책을 쌓으며 순한 짐승 같던 눈동자가 범 같이 번뜩거렸다
며칠에 한 번씩 원인 모를 불이 나고 사람이 죽고 수도와 전기도 끊긴 지 오래
어느 아침 몽둥이를 든 산적 같은 사람들과 진압봉을 든 철가면이 몰려와
취류탄에 화염병이 날고 돌멩이 물대포에 또다시 육이오보다 독한 전쟁이 터져
함성도 오열도 아비규환 속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처럼 닭장차에 태워지고
탱크 같이 몰려온 굴삭기의 굉음 속에 폐허의 잔해들이 말끔히 치워진 후
최고급 아파트며 오피스텔 번뜩거리는 상가를 따라 꿈같은 도시가 들어섰건만
저적저적 비가 오는 공친 날이거나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밤이면
누군가 숨죽여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있어 가만히 귀 기울이면
오랜 세월 볕 안 드는 담 밑이며 갈라진 벽 틈에 살았던 민들레가
멀미가 나도록 향기로운 넝쿨장미 화단가에 경비원 몰래 하얀 꽃을 피워 놓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모를 홀씨처럼 떠난 사람들이 보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말도 못하고 훌쩍훌쩍 울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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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