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생명의 본질을 생각해보며~
베드로전서 1장
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Being born again, not of corruptible seed, but of incorruptible, by the word of God, which liveth and abideth for ever.
씨 안에 그 식물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다윗과 아브라함의 씨(자손)는 예수 그리스도셨다.
갈라디아서 3장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Now to Abraham and his seed were the promises made. He saith not, And to seeds, as of many; but as of one, And to thy seed, which is Christ.
우리는 교회의 DNA 곧 그 근원적인 씨를
교회의 역사 가운데서 찾고
있는 것을 많이 보아 왔고 동조하여 그러한 교회를 이루고자
고무되기도 했다.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며
그러한 모델을 신약의 말씀을
인용하며 제시하는데
동감하기도 했다.
소경 코끼리 만지기식의
어느 한 부분을 인용하며 초대교회를 운운云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뮌가 석연찮은
것들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일리가 있고
이상적이며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간절할 정도로
마음이 당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율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렇게 될려하는 사람의 각오와 노력이 들어가지 않을려고
최대한 애를 쓰며 그 무뉘와
모양에 접근하여
성령의 도움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여
간구하는 불확실한 노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단도 광명한 천사로 위장하고
그리스도를 흉내내지 않는가!
우리의 육신의 혼적인 생명을
통해 기가 막히게
유사품을 만들기도 하기에
진위眞僞 여부는
예리한 영적 감각이 요구됨은
너무나 자명한 것이다.
여러 말씀의 인용과 짜맞추기와
영적 논리의 연결고리가
있지만 애매한 부분과
영적 논리의 비약적인 부분으로
전체적인 결론에 이르는
우愚를 범했음을 지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물의 생명의 근원은
정자와 난자에 있다
그 DNA에 다 들어 있다.
식물은 씨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기에
성경은 우리의 거듭난 생명이
썩지 않을 씨로 되었다 했다.
썩지 않을 불멸의
생명의 씨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지 않은가!
놀라운 것이다.
그리스도도
다윗과 아브라함의
씨였다.
썩지 않을 불멸의
영원한 생명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은 생명이었다.
그 보혈로 우리는
영원한 속죄를 받았고
성령을 받았고
하나님과 가까와져 하나된
생명을 가지게 되었다.
그 씨 안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시작의
예비와 예정으로부터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과
장사지내심과
부활 승천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의 모든 것 곧 그리스도
자체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
있음을 알고 믿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씨가
어떻게 겉껍질이 썩어지면서
발아하여 싹이 나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사도는 우리의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다고
했다.
고린도후서 4장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朽敗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For which cause we faint not; but though our outward man perish, yet the inward [man] is renewed day by day.
우리의 겉사람,
아마도 그냥 대체로
나 자신이라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속사람은 베드로의 지적처럼
숨은 사람이라 했다.
베드로전서 3장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But [let it be] the hidden man of the heart, in that which is not corruptible, [even the ornament] of a meek and quiet spirit, which is in the sight of God of great price.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성패는 겉사람이
온전히 썩어짐으로써
속 생명의 사람이 드러나는 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교회 곧 공동체인
에클레시아의 기본 단위는 이 속사람이며 속 사람들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
곤충이든 동물이든
그들의 거처인 집을 짓는 것이
누가 가르쳐 짓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자연 환경을 보고 안다.
천부적인 타고난 디엔에이
속에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의 에클레시아도
그렇게 성령으로 거듭난
그 생명으로 교회를
이루고 건축해나갔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초기 교회를 아무리 연구하여
설사 그대로를 복원할 정도의
실상을 알았다 손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모방하는
어떠한 형태의 접근으로
이루어낼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기 쉽지
겉생명의 썩어짐으로
모든 것이 내재되어 있는
속생명의 드러나 자라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으로 나아가기는 결코
쉽지 아니할 것이다.
거듭난 생명 안에 주어진
그 생명으로 교회를
이루는 삶을 살아 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교회역사의 고찰의 노력들은
다만 우리의 교회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우리의 교회의 삶의 방향에는 어느 정도의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 사료된다.
우리의 구원도
멀리 하늘이나
바다 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가까이 있어
마음으로 믿어 義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듯
우리의 공동체인 주님의 몸된
교회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가정은 다만
가장 작은 교회의
기본 단위일 뿐이다.
민수기에서도
인구 수를 계수하면서
가장 작은 단위가
가정이었다.
인류의 시작도 아담과 하와로
그 가정이 기본 단위로
출발하지 아니했는가!
그래서 가정은 중요한
것이다.
가정을 파괴하면서
교회를 이루는 것은
마귀적인 것이다.
영적으로도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인
우리 자신이 가장 작은
기본 단위이다.
하늘의 모든 처소들의
신령한 복으로 복 주었기에
부흥은 그러한 내적으로
부여된 모든 하늘의 복을
일깨우는 성령의 각성으로
말미암는 것이리라
제시펜 루이스가
더러운 헝겊을 태우면서
여태까지의 자신의 모습을
더러운 옷의 조각으로 말씀한
이사야의 말씀이 조명됨으로써
성령 충만을 입었듯이...
첫댓글 아멘....교회 곧 공동체인 에클레시아의 기본 단위는 이 속사람이며 속 사람들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좋은 말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