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마시기와 禪은 둘이 아니다. 선은 물 흐르듯 꽃이 피듯 순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순리는 논리를 깨 부시고 지름길로 나아가 진리에 단박 도달하기 아닌가. 경전 읽기라는 문을 통하지 않고도 이를 수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경전 읽기를 거친다면 더 확실하게 이를 수 있다. 선과 교는 둘이 아니다. 모든 법은 둘이 아니다.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고, 시와 그림이 둘이 아니고, 시와 선이 둘이 아니고, 시와 글씨가 둘이 아니고, 글씨와 선이 둘이 아니다.
차를 마시는 자는 차 따는 하층민들의 배고픔과 고달픔을 생각하고 고맙게 여겨야 한다. 차맛은 깨달음의 맛이고 그 맛은 텅 빔의 맛이고, 그 텅 빔의 맛은 부처님 마음의 향기이자 중생들의 슬픔의 향기, 가난한 마음의 향기이다.
다선삼매 대숲과 솔 물결 소리 다 서늘하니, 맑고 차가운 기운 뼈에 슴배어 속마음 일깨운다.
흰 구름 밝은 달만 두 손님으로, 깨달음 얻으려 하는 이는 이 이상 좋을 수 없지. - 초의선사-
차는 혼자 마셔야 그 향과 맛을 잘 알 수 있다. 벗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더욱 값지게 된다. 보석은 손에 닿지 않은 곳에 두고 있어야 빛이 나는 것이다.
禪이란것 깨달음이란 것은 일정한 규격품이 아니다. 파도에게서, 배에게서, 어부가 쳐다본 비백 같은 구름장에게서, 멀미 앓는 몸뚱이에게서 배우고 깨닫는다. 보임이란 것은 가부좌 틀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하고의 만남을 통해 해야 한다. 보임, 그 먼지와 습기 앉아 얼룩지곤 하는 마음의 거울 닦아내기는 이름 없는 선지식들 이슬방울, 기는 벌레, 하늘을 나는 새, 무식한 뱃사람들의 말 한마디, 그들의 엉덩이짓 하나 방귀 소리 하나에서도 성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