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동지 등의 절기와 불교와의 관계는?"
"불교가 단순히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로 머물지 않고 민족종교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우리 고유의 풍습을 받아들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입춘이나 동지같은 세시풍속은 농경문화의 산물이며 일반서민들의 축제이기도 합니다.
입춘(立春)은 양력 2월4일이나 5일에 돌아오는 절기입니다.
이날은 홍수, 태풍, 화재의 세 가지 재난인 삼재(三災)를 벗어나게 하는 삼재풀이를 하고 일년내내 풍요로움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동지(冬至)는 양력 12월 22일이나 23일로 팥죽을 쑤어 귀신을 쫓고 액땜을 합니다. 우리의 민간신앙에서는 귀신이 붉은 팥을 가장 무서워한다고 하기 때문에 팥죽을 쑤는 것입니다.
절기는 앞서 말한대로 농사를 짓는데 풍년을 기원하며 화를 멀리하고 복을 비는 우리 고유의 풍습입니다. 이것을 단순한 미신으로 오해하여 그 의미를 왜곡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교의 깨달음의 목적이 개인의 열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생구제를 위한것이라면 세시풍속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여 중생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주는 중생들의 축제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불교전통의식은 아니지만 절기에 따른 입춘,동지와 같은 행사는 교리와 교리의 실천수행적인 면과는 다르더라도 중생구제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불교의식의 차원에서 담아내야 할 내용인 것입니다.
불교의 행사를 고유한 불교행사만으로 좁혀서는 안되며 전통적 세시풍속도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중생의 소망으로 이해하는 자세가 올바른 불자의 자세라 하겠습니다.
특히 불교의 참뜻과 멀게 보이는 민간신앙과의 결합은 부처님의 본질적 가르침으로 돌아와 이 땅을 정토로 가꾸는 민족종교로서의 불교를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으로 이해할수 있습니다.
[팥죽먹은 나한님- 팥죽공양 영험 신심 돋구기 방편]
갑오년(1892) 동지 날에 있었던 일이다. 불영사 공양주 스님이 새벽에 일어나 팥죽을 쑤려고 부엌으로 나갔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려고 불씨를 살펴보니 싸늘한 재만 남아 있어서 공양주 스님은 당황했다. 팥죽을 쑤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야 하는데 절 안에 불씨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공양주 스님은 송구스런 마음으로 자책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탁탁 장작불 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스님이 뛰어가 보니 아궁이에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공양주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나한성중”을 외치며 부지런히 팥죽을 쒀서 공양단에 올렸다.
아침공양을 마치고 아랫마을 휘씨댁에 볼일이 있어 들른 스님에게 휘씨댁 노인의 책망이 들렸다.
“스님네들이 남의 자식을 맡았으면 자비로운 마음으로 아끼고 가르쳐야지, 춥고 어두운 새벽에 불씨를 얻어오라고 어린아이를 보낸단 말이오?” 영문을 몰라 하는 스님에게 휘씨 노인은 “새벽에 불씨를 얻으러 온 아이가 하도 추워하기에, 팥죽 한 그릇 주었더니 다 먹던데요. 절에 불씨가 꺼져 부처님께 팥죽공양을 못 올리게 되어 불씨를 얻으려 왔다고 했소. 절에 불씨가 안 꺼졌단 말입니까. 불영사가 또 있다는 말씀이오.”
책망하는 노인에게 새벽의 일을 설명하고 급히 돌아온 공양주스님은 나한전에 가보았다. 여러 나한상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 중의 한 분의 입에 팥죽이 묻어 있었다. 입술에 팥죽을 묻혀둔 것은 나한님이 사람들의 신심을 돋구기 위한 방편이다. 이 일이 있은 후 사람들은 동지가 되면 팥죽을 쒀 올리고 기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