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5일(주일) 낮 설교 - 강림절 제2주[군선교주일] -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사람
( 로마서 15 : 1~13 )
Ⅰ. Story. 「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 산마루 & 창작 예화
로빈 S. 샤르마가 쓴『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은 보통 하루에 6만 가지 생각을 한다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생각의 95%가 어제했던 생각과 같다는 거지.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내면을 가난하게 만드는 원인이지. 그리고 그렇게 계속 되풀이되는 생각은 대개 ‘부정적’이기 십상이네.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데 힘쓰기보다는 ‘과거의 포로’가 된 사람들이라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이 ‘과거의 포로’가 되어 전진하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살아갑니다.
사람이 뒤를 돌아보기 시작하고, 뒤를 돌아보는 것이 습관이 된다면 그의 정신세계는 늙어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뒤를 돌아보기보다 앞을 향해 부단히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믿음의 사람은 롯의 아내처럼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로빈 S. 샤르마는 또 같은 책에서 이런 말도 했습니다. “15번이라도 웃어보게나. 무슨 말인지 알겠나? 웃음은 우리의 영혼을 치료해주는 보약일세. 설사 웃을 기분이 아니더라도 거울을 보면서 잠시라도 웃어보게. 그러면 정말 멋진 기분이 들 걸세.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게 아니다.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네.”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나 실망스러운 일에 직면한다하더라도 웃으며 사는 사람은 긍정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긍정적인 사람이란 한마디로 “나는 할 수 있다!”고 외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결국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야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과연 연약한 인생인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 수 있을까요? ‘나는 할 수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이 예수님처럼 살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다릅니다. 비록 자신의 연약함을 알지만 또한 자신이 혼자가 아님도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자신과 함께 하시는 주님이 계심을 확신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도와주시니 나는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100%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Ⅱ.
강림절에는 그 어느 때보다 예수님을 더 많이 생각하는 절기입니다. 강림절은 곧 성탄절을 준비하는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탄절을 준비하기 위해 무슨 준비를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이미 2천 년 전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성탄절은 이미 탄생하신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의미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바로 우리 가운데 탄생하도록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모셔드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예수님을 내 마음에 품어야합니다. 그래서 오늘말씀의 제목을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사람”이라고 정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때 당연히 예수님처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고,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바람직한 성도의 모습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이타적인 삶”이라고 말합니다. 이타적으로 산다는 것은 날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는 말입니다. 예전에 부모들이 자녀를 공부시킬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공부해서 남주냐? 다 널 위해 공부하는 거 아니냐?” 물론 공부하면 그 만큼 내 것이 됩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해, 자기의 출세만을 위해 공부한다면 그것은 이기적인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배워서 남 주자!”는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것은 단지 ‘나’ 하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인데,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한 이는 다름 아니라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을 닮아야하며,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야합니다. 주님을 본받은 삶이란~
Α. 나 아닌 다른 사람(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1-3).
1. 예수님의 삶은 한마디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또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간들에게 참 기쁨을 주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으니”(3) 그렇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2). 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 이웃에게 선을 행하고, 덕을 세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중심으로 살면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아야 합니다.
3. 특히 믿음이 강한 사람은 마땅히 믿음이 약한 사람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면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내가 관심가지고 돌봐주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내게 돌볼 능력이 있다면 그 능력을 잘 활용하여 기쁨을 주며 살아야합니다.
Β.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합니다(4-8).
1. 서로 마음을 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모두 주님을 본받는다면 우리는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5)이 되라 한 것입니다.
2. 우리가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6)입니다. 예수님을 본받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이 땅에서 살아가셨습니다.
3.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뜻이 되기 위하여 서로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받아주셨습니다. 우리는 점과 흠투성이였지만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받아 주어야합니다. 그래서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합니다.
Γ. 모든 열방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해야합니다(9-13).
1. 바울 사도를 “이방인의 사도”라고 부릅니다. 베드로를 위시한 12사도들은 주로 유대인을 위해 세움 받았다면, 바울은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세움 받은 사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도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죠. 모든 민족이 함께해야합니다.
2. 바울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구원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에서는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 이방인(고넬료)과 함께 식사를 했다는 것이 문제꺼리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행 11:3). 그 정도로 이방인에 대한 유대인의 생각은 폐쇄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름.
3. 이미 구약성경에도 “열방”에 대한 관심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에도 열방이라는 말이 4번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와 우리”의 울타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열방과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선교하는 것!
Ⅲ.
한 여성중창단이 창단되어 공연을 했습니다. 주로 지긋한 나이의 여성들이 주축인데, 그 이름은 “소리하나중창단”입니다. 지휘자(한영혜)선생님은 공연 중에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리 중창단은 공개모집하여 구성되었습니다. 오디션을 할 때 전공자는 하나도 뽑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우리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모여서 노래하고 싶습니다. 소리를 만드는 것을 즐기고 재미있게 지내고 싶을 뿐입니다.” 이 여성중창단은 ‘전공자 없는 중창단’, ‘스타가 없는 공연’을 하는 중창단으로 특별한 개인의 소리가 아니라 전체가 만들어내는 소리로 감동을 주는 중창단입니다. 참 소박하고 아름다운 중창단입니다. 어떤 목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노래하고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 자체를 즐기는 그 정신’이 삶을 더 소박하고 더 순수하게 “들꽃 같은 아름다움”을 지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산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나 홀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아니 더 나아가 세계열방과 함께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며, 한 뜻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 이것이 바로 주님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이요, 또 우리의 꿈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