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쯤 전, 친구 다섯명이 '길위에서 세상의 이치를 묻는다'는 뜻으로 "五道理"이라 이름하고 산길을 헤메어 다닌적이 있습니다.
길은 길로 이어지고 어지러운 듯하여도 항상 제 이치대로 구비져 흘러갑니다.
그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보태고 땀으로 보답하여 세월을 이기고 기나긴 이야기로 남았습니다.
시민단체가 시작했던 '지리산둘레길'이 모든 배달의 후손들을 끌어모았고 '제주 올레길'은 마침내 흘러드는 길의 대명사인 것처럼 이정표를 찍은 뒤 이곳저곳에 이름도 달리하는 수많은 길들이 생겨났지요.
아니 이미 있었던 길이니 길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의 '이름'들이 생겨났다는 것이 올바른 말일 것 같습니다.
길떠나는 나그네는 항상 두려움과 설레임이 많습니다.
이것 저것 챙겨야 할 것도 많지만 두고 가야할 것은 청마의 해에도 여전히 '말'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제가 태어나서 시푸른 댓잎같은 청소년기를 보내고 지금도 가끔 추레해진 낙엽처럼 '쉼'을 위해 찾아드는 여수의 '갯가길'에 발자욱 하나 보태어볼까 합니다.
이름도 생소한 갯가길을 따라 나선 것은 금호도 비렁길과 꽃섬, 그리고 백호산둘레길에서 산길을 다듬어 길을 이어내는 여수사람들의 지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돌산대교를 건너 거북선이 있는 바닷가에서 부터 시작되는 갯가길은 돌산의 해안선을 따라 향일암까지 이어집니다. 다만 지금은 제1코스인 무슬목까지만 길이 완성되어 있습니다.
무슬목까지의 거리가 약 23킬로미터이니 하루만에 걷고자 하면 일찍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계단 난간에 새겨진 '청거북이'를 따라 발길을 옮기기 시작한 시간이 오전11시50분, 얼마나 가다 돌아설지는 걸어보면서 판단하기로 했습니다.
계단을 올라선 뒤 2차선 도로를 건너 돌산공원으로 올라갑니다. 어둠이 내리면 멋진 여수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멀리 종고산이 보입니다. 종고산은 이순신의 한산대첩 후 연 삼일간이나 은은한 종소리를 냈다는 전설이 있고 기우제를 지낸 곳이기도 합니다. 여수의 진산으로 전라좌수영을 감싸안았던 종고산, 그리고 돌산대교 아래로 있는 작은 섬, 장군도는 둘레가 600미터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이지만 수중석성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연산군시대에 수군절도사 이량장군이 수중에 돌로 성을 쌓아 왜구의 침입에 대비했다고 합니다.
이곳은 돌산제2대교 '거북선대교'로 이름붙여진 다리가 보이는 신추마을입니다. 여기까지가 1.72로미터, 십분이 채 안되어 도착했습니다. 이후의 구간들도 대개 1.3킬로미터에서 2.3킬로미터의 내외의 길이로 약 20~30분을 걸으면 구간을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갯가길 제1코스 제2구간의 시작점입니다.
오동도에서 종포로 연결되는 터널이 보입니다. 지금은 공사가 한창이던데...
그리고 만난 시누대와 대나무가 우거진 터널
예전에 시누대의 표준말을 몰라 한참을 헤맷던 기억이 납니다. 시누대, 신이대 등등으로 불리지만 표준말은 '이대'입니다. '이대 나온 여자' 김혜수가 갑자기 떠오릅니다.
호젓한 숲길 옆으로는 코발트색 향기가 물씬 풀어지는 남해의 바다가 그리운 님의 품처럼 아늑합니다.
이길을 만드신 분의 마인드가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백호산둘레길부터 옛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이어줬던 오솔길을 이어내고 최소한의 작위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길을 살려내는 이분의 생각이 존경스럽습니다.
이런 작은 배려로 길의 흙이 쓸려가는 것을 막고 애써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안전도 더했습니다.
시멘트를 바르고 데크목으로 심지어는 포크레인으로 산을 밀어내는 길이 아니라 땔감을 지고 모로서서 겨우 겨우 나아갔던 옛 갯가사람들의 노고가 묻어있는 그대로의 길이 해안을 따라 길게 길게 이어집니다.
생명은 위대하다 했던가요? 질기고 억센 것이 세월이라 했던가요.... 잠시 시멘트의 허락되지 않는 냉냉함을 거뜬히 이겨내고 마침내 그 질긴 생명의 집념을 얼키고 설키어낸 담쟁이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렇게 20여분만에 도착한 진목항에는 앞서 길을 나선 나그네들이 한무더기 자리하고 있습니다.
방파제 위엔 긴 침묵으로 바람에 몸을 맛긴 낚시꾼의 끝날 것 같지 않은 기다림이 있었고 바닷바람에 상기되는 가슴에 따뜻한 오미자 차 한잔 마십니다.
그리고 또 길을 나섭니다.
제3구간 진목항에서 밀듬벙까지 1.99킬로미터를 걸어갑니다. '오리'길이네요.
밀듬벙을 보고 있으려니 말의 어원을 캐는 못된 습성이 또 도집니다. 모르는 건 섣불리 아는 체 하지 말고 그냥 가기로 합니다.
진목항 방파제를 지나 바닷가를 따라 길도 없는 곳을 사람들이 나아갑니다. 갯가길의 또 다른 재미입니다. 7물에서 11물일 때에는 윗길로 가고 물이 많이 났을때는 이렇게 바닷가 몽돌과 바위를 디디며 나아갑니다.
그렇게 나아가는 길에 청거북이가 앞장을 섭니다. 거북이처럼 느릿느릿하지만 쉼없이 가다보면 길은 마침내 그 가고자 하는곳까지 갈 수 있게 할 것이란 암시가 저렇게 바위위에 자리하고 있는 듯 합니다.
소피스트의 괴변중에 '토끼는 절대 거북이를 앞지를 수 없다'고 한 논리의 극단적 궤변을 생각하며 갯가길 바위에 조심스레 발을 올려놓습니다.
갯가길에는 이런 시멘트블럭초소와 참호와 엄혹했던 시절, 사실보다 부풀려지고 과장된 공포와 그 공포를 통해 국민들의 마음을 지배하려했던 옛역사의 잔재들을 만납니다.
갯가길은 그렇게 갯가사람들의 고달픈 삶의 무게로 이어지고 했지만 한때는 '북괴간첩의 야간침투'에 대비한 아픈 기억에도 줄을 대어놓고 있습니다.
참 많은 우리 또래의 사나이들이 저 초소에서 추위를 죽이고 외로움을 죽이고 고참의 횡포를 견뎌내야했습니다. 이유도 제대로 모른체 그것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이라 굳게 믿으며......
사스레피 나무가 겨울의 황량함을 달래고 짙푸른 바다를 끌어안아 넉넉해지는 색감을 만들어냅니다.
몽돌해변을 지나 밀듬벙에 도착합니다.
시내버스 시간을 알아두면 좋을 듯하여 카메라에 담습니다.
밀듬벙에서 범바위까지 제 4구간이 시작됩니다. 1.31킬로미터로 구간이 비교적 짧은 걸 보면 길이 걷기에 좋지 않다는 뜻일 수 도 있습니다.
지나는 길손에게 길을 내어주고 지나는 길손은 아니온듯 다녀가는 것도 바람에게 배워야할 미덕인 듯 합니다.
산허리를 지나다가 다시 바다로 내려가 시큰한 겨울의 바람을 폐부 깊숙이 안아들입니다.
이렇게 길 곳곳에는 주홍색 리본과 청거북이가 길을 안내합니다. 열심히 손을 흔들며
이제 5구간 범바위에서 용월사까지 걸어갑니다. 용월사는 남산에서 점보시던 할머니께 돈 많이 벌어 세운 절이랍니다. 제가 용월사에 발을 들여놓았을때에도 점보러온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는 아니더라도 제법 많은 분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점을 한번 도 본적이 없어서 제 점을 보려면 옷을 다 벗어야 하나요?
역시 바다가 보이는 길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걸어갑니다.
그래도 순천봉화산 둘레길보다는 괜찮습니다. 순천봉화산 둘레길 이름을 지어달래서 상품에 현혹되어 얼마전에 시간을 내어 봉화산둘레길을 완주했지요. 욕나오더군요. 그래서 그길을 '요오물길'이라 이름붙였습니다. 들었다 놨다가 하길 너무 자주해서요.
그리고 다시는 안가기로 다짐했지요!
그렇게 용월사에 도착해서 물한모금 얻어 마시려했으나 물이 나오질 않아서 자판기 커피 한잔마시고 잠시 바닷길로 돌산을 휘돌아나가는 유람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여수놈인데도 아직 오동도에서 돌산 향일암을 돌아오는 유람선을 타보질 못했네요
용월사에서 차로가면 마지막 동네라하는 월전포로 나아갑니다. 이렇게 돌산 구석구석을 훑어가는 갯가길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이 길이 아니었으면 언제 이런 곳을 와봤을까요? 세상이 참 좋아졌습니다. 길이 너무 넓고 빨라지다보니 구비구비 여울지는 옛길이 이제는 향수깊은 치유의 길이 되는 듯 합니다.
제7구간 월전포에서 안심개까지입니다.
8구간, 안심개에서 하동삼거리까지..... 한정된 메모리양 덕분에 사진을 제대로 올리지 못합니다.
제 9간은 하동에서 마상포까지 입니다. 초반에 민원때문에 길이 폐쇄되어서 마을안길을 돌아 가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9간에서 만난 모양이 특이한 바위와 시누대 군락과 멋드러진 갯가길은 스맛폰의 밧데리가 다 되는 바람에 담아오질 못했습니다.
마상포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5시, 무술목까지는 8킬로정도를 더 가야하지만 날이 저물고 있어서 오늘의 나들이는 여기서 접기로 했습니다. 5분도 안되어 버스가 오고 버스에 몸을 실은지 10여분만에 돌산공원앞에 일행을 내려놓습니다. 문명의 이기가 감탄스럽습니다.
내고향 여수는 한이 많은 고장입니다.
'삼복삼파'가 그렇고 새로운 왕이 태어날 곳이라하여 모든 오동나무가 베어졌던 오동도의 전설이 그러하고 장수의 운명을 타고난 자식의 오른손을 도끼로 잘라야했던 어부의 전설이 그러하고 봉황이 돌이되어 바위가 된 백도와 홍도의 전설과 구봉산에 내려앉았던 아홉마리의 봉황이 그러합니다.
무엇보다 질곡의 역사속에서 '여순사건'은 끝나지 않은 상처로 계속되었고 70년대의 허봉용사건도 수출한국의 짙은 그늘의 한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수는 뛰어난 풍광과 맛을 지녔고 거친 성품만큼이나 짙은 애환으로 속깊은 이들이 사는 곳이도 합니다.
그렇게 점철된 역사는 소리없이 흘러가지만 갯가길에서 바쁜 일상을 놓아놓고 잠시 숨을 고르는여유를 만끽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첫댓글 잘 읽었 습니다
오랫만에 들어온 가페에서 산벗님의 녹차를 대접 받는 기분으로 글을 읽었 습니다
이렇게 좋은 여수의 갯가길 을 진즉에 나 알릴것이제 . 그 시끄러운 .F1 차길 은 왜 맹그럿는지 안타갑네요
갑오년 첫 여행지가 저 끄트머리에 있는 남도 쪽이 였으면 좋겠 습니다
참 오도리 친구분들 모이면 고스톱 을 칩니까?
고스톱은 판돈이 너무 거시기해서 막걸리마십니다. 남도 쪽빛바닷가에서 갑오년 첫 여행을 시작하실 수 있을거라 마음모아봅니다. 언제 막걸리 한잔하시지요!
산벗님!
사진과 글 잘 보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산벗님의 다방면으로 해박한 글들을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마루샘도 복많이 받으시옵고 어디서든 자주 뵐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