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배우라(에베소서 4:17-24)
(에베소서 4장)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묵상/엡 4: 17-24)
◆ 이방인의 행위를 따르지 말라
(17)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유대인이 아닌 자들이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이 이방인이다. 이방인들이 추구하는 것을 보면 모두 같다. 형편없이 타락한 악인이나, 도를 닦는 종교인이나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고상해 보여도 그 핵심은 모두 ‘자기 쾌락, 자기 영광’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예외없이 허망한 것을 따르게 되어있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 있는 체를 하지만,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으며, 감각 없는 자들이다.
감각 없는 자가 되었다는 말씀은 분별 능력을 상실했다는 말씀이다. 나병 환자들은 말초신경이 망가지면서 감각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뜨거운 것도 함부로 만지게 되고, 추워도 제대로 보호하지 않고, 날카로운 것에 베어도 별 신경을 안 쓴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나면서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동상에 걸린 코가 떨어져 나간다. 그런 식으로 몸의 지체를 하나씩 잃어버리다 보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이 참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감각을 잃어버린 존재다. 그들을 갉아먹는 균이 있지만,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이방인들이 추구하는 것을 살펴보면, 화려해 보이고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허망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정신 차리고, 세상을 제대로 분별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따랐다가는 그들을 닮게 된다.
오늘날 성도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돌아다니면서 아무것이나 클릭했다가는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게 된다. 그런 것을 절제하는 것이 바로 이런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절제할 능력이 있는가? 오늘날에는 밥을 굶는 금식보다 인터넷을 굶는 금식이 더 필요하다.
◆ 그리스도를 배우라
(20)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사람들은 율법과 복음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율법은 ‘이것을 행하고, 저것을 금한다’는 계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신약에서도 온갖 명령들이 즐비한데, 율법과 무엇이 다르냐고 질문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율법과 복음이 단지 내용 면에서 다르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말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단지 내용만 달라서는 복음이 율법과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주님께서 우리를 율법에서 벗어나게 하심은 단지 내용만 다른 율법으로 옮기려고 하신 것이 아니다.
복음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그것은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교훈이다.
과거에는 내가 주체가 되어서 이것저것을 행하고, 제대로 행하면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다른 사람을 비판했다. 반면에 내가 그렇지 못할 경우는 자책감으로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난 뒤에는 삶의 방식이 달라졌다. 내가 주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체가 되신다. 나의 삶은 그리스도를 믿음에 따라 그를 배우기 시작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주님의 보여주신 사랑, 겸손, 성실하심...이 모든 것이 믿음을 통해서 내 속에 각인이 되면서, 나는 그리스도가 표준이 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게 된다.
이렇게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살아계신 사람은 주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교훈이 율법이 아니라, 격려의 말씀으로 들리게 된다. 뛸 수 없는 장애인에게 뛰라고 강요하는 율법이 아니라, 잘 뛰는 선수에게 더 잘 뛰라고 박수치며 격려하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도가 할 가장 큰 일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그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갈 때 비로소 제대로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리스도를 배우자.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이야말로, 성도가 평생 추구해야 할 일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가장 단순한 말씀조차도 무거운 율법이요, 피곤한 여정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산도 가볍게 들어서 바다로 옮기는 믿음의 기적을 본다. 이웃도 사랑하기 힘들어했던 사람이 감히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한다. 이 모든 것이 다 믿음의 열매다.
많은 사람이 이 원리를 모르고 사람들에게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니, 율법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런 행태는 본인과 상대방에게 모두 족쇄요 무거운 짐이다. 예수님을 잘 믿고, 그를 배우도록 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바리새인으로서 철저하게 율법으로만 살던 사람이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율법을 준수하고 스스로 의롭다고 믿었지만, 예수님을 만나자 자신은 죄인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었다. 열심히 율법을 추구했지만, 그 속에는 탐욕스럽고, 야망에 불타는 자신이 있을 뿐이었다. 거룩한 체했지만, 사실은 인정받는 종교인을 추구했던 것에 불과했다.
도대체 어떻게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가질 것인가?
바울을 괴롭혀왔던 이 질문에 대해 바울은 마침내 명쾌한 대답을 얻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믿음 만이 우리를 의롭게 한다. 단순히 의롭다고 칭함을 얻는 명목상의 의가 아니라, 실제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그 의도 이룰 수 있음을 보았다.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19-20)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자. 그리스도를 배워가자.
주님,
제가 주님을 믿습니다.
이 아침에 주님을 경배합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 날마다 주님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더욱 알게 해주십시오.
[출처] 엡 4:17-24 / 그리스도를 배우라|작성자 야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