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본인의 책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송사고려전은 고려도,거란도 아닌 제3자 송나라 입장에서 쓴것입니다.
송사고려열전
순화3년(993), 소덕항(蕭德恒) 등을 보내어 고려를 침략하였다.
4년(994), 고려왕 왕치(王治)가 표문을 올려 죄를 청하고 여진과 압록강 동쪽의 땅 수백 리를 떼주었다.(고려사와 다른점)
대중상부 3년(1010)
고려에서는 강조(康兆)가 그의 임금인 송(誦)을 시해하고 마음대로 송의 형 순(詢)을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므로 융서가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그들을 격파하여 강조를 사로잡으니, 동주(銅州)ㆍ곽주(霍州) 등이 모두 항복하였다. 순이 사신을 보내어 조회하기를 요청하므로 허락하고 정사사인(政事舍人) 마보우(馬保佑)를 개성 유수(開城留守)로 삼으니, 고려의 수장(守將) 탁사정(卓思正)이 사신을 살해하고 한희손(韓喜孫) 등이 보우를 내쫓음으로 융서가 소배압(蕭排押) 등을 보내어 개성(開城)을 공격하니, 순이 성을 버리고 도망하므로 마침내 개경을 불사르고 군대를 인솔하여 되돌아가더니 항복받은 성을 모두 고려에 되돌려주었다.
5년(1012), 고려에서 채충순(蔡忠順)을 보내어 신하라 일컫기를 요청하므로 융서가 순에게 명하여 직접 조회하게 하였으나 병을 핑계하여 사양하였다. 이보다 앞서 압록강 북쪽의 땅을 고려에 양도하였더니, 고려에서는 그곳에다 6성(城)을 쌓아 흥주(興州)ㆍ철주(鐵州)ㆍ통주(通州)ㆍ용주(龍州)ㆍ귀주(龜州)ㆍ곽주(郭州)라 하였는데 이때에 와서 순이 조회하지 않는 것을 이유로 노엽게 여겨 다시 타일러 6주를 반환하게 하고 귀주(龜州)에다 태학을 설치하고 그곳의 주민에게 교육을 시키니, 본디 신라에서 옮겨온 사람들로서 문자를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사교과서는 거짓)
7년(1014), 해마다 야율자충(耶律資忠)을 사신으로 보내어 6주를 탈취하려 하였으나 고려에서 따르지 않으므로 소적렬(蕭敵烈)을 보내어 공격하게 하였더니, 고려에서는 여진과 함께 그들을 격파하였다.
9년, 야율세랑(耶律世郞) 등이 곽주(郭州)에서 고려와 싸워 크게 격파하고 돌아왔다.
천희(天禧 송 진종의 연호) 원년(1017, 고려 현종 8), 명을 내려 부녀의 재가(再嫁)를 금지시키고 소합탁(蕭合卓) 등을 보내어 고려를 침략하게 하였다.
2년, 소배압 등이 고려와 다하(茶河)ㆍ타하(陀河)에서 전투하였으나 크게 패하였다.
첫댓글 소설 같은 송사 이야기입니다. 고마워요.
龜州를 九州 또는 旧州로 읽고
江東六州의 興州를 高麗의 先代 高句麗의 北都地域로 추정하면,
江東(鴨淥)의 江은 (소생의 見解로는) 永定河 西쪽을 나란히 南流하여 白溝河와 大淸河로 이어지는 小淸河로 드러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