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창 앞에서
- 김상훈
등짐지기 삼십리길 기어 넘어
해방이 되어 귀향하는 화자 십리=4km
가쁜 숨결로 두드린 아버지의 창 앞에
봉건세대의 상징 단절의 상징
무서운 글자있어 ‘공산주의자는 들지 말라’
화자는 사회주의 운동가
아아 천날을 두고 불러왔거니 떨리는 손 문고리 잡은 채
물끄러미 내 또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고-
아버지의 창 앞에서 느끼는 회한과 안타까움
1연-아버지의 창 앞에서 느끼는 회한
과거회상→
태어날 적부터 도적의 영토에서 독(毒)스런 우로(雨路)에 자라
식민지 식민지의 고통스러운 삶
가난해두 조선(祖先)이 남긴 살림, 하구 싶든 사랑을
선조, 조상 민중에 대한 사랑
먹으면 화를 입는 저주받은 과실인듯이
전 근대적인 봉건적 유산
진흙 불길한 땅에 울며 파묻어 버리고
내 옹졸하고 마음 약한 식민지의 아들
자책감
천근 무거운 압력에 죽음이 부러우며 살아왔거니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고통스런 삶의 무게 식민지하에서의 치욕적인 삶
이제 새로운 하늘 아래 일어서고파 용솟음치는 마음
해방이 된 나라에서 자유롭게 살고싶은 욕망
무슨 야속한 손이 불길에 다시금 물을 붓는가
욕망의 의지를 꺾으려고 하는가?
2연 -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데 제약을 가하는 현실
징용살이 봇짐에 울며 늘어지든 어머니
형무소 창구멍에서 억지로 웃어보이던 아버지
머리 쓰다듬어 착한 사람 되라고
옛글에 일월(日月)같이 뚜렷한 성현의 무리 되라고
삼신판에 물 떠놓고 빌고, 말 배울 적부터 정전법(井田法)을 조
술(祖述)하드니
선인들이 말한 바를 근본으로 하여 서술하여 밝힘
이젠 가야할 길 미더운 깃발 아래 발을 맞추려거니
진보와 개혁에의 동참
어이 역사가 역류하고 모든 습속이 부패하는 지점에서
지주의 맏아들로 죄스럽게 늙어야 옳다 하시는고
아아 해방된 다음날 사람마다 잊은 것을 찾어 가슴에 품거니
상실했던 가치들을 회복하려는 마음
무엇이 가로막어 내겐 나라를 찾든 날 어버이를 잃게 하느냐
부모와 자식간의 인연을 끊게 하느냐
3연 - 아버지와 절연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
형틀과 종문서 지니고, 양반을 팔아 송아지를 사든 버릇
봉건제도의 상징물
소작료 다툼에 마음마다 곡성이 늘어가던
낡고 불순한 생활 헌신짝처럼 벗어버리고
저기 붉은 기폭 나부끼는 곳, 아들 아버지 손길 맞잡고
새로운 사회주의가 일어나는 곳
이 아침에 새로야 떠나지는 못하려는가 ……
아아 빛도 어둠이련듯 혼자 넘는 고개
스물일곱 해 자란 터에 내 눈물도 남기지 않으리
벗아! 물끓듯 이는 민중의 함성을 전하라
청자(聽者) 새로운 국가건설의 염원
내 잠깐 악몽을 물리치고 한거름에 달려가마
아버지와의 인연단절로 인한 괴로움
4연 - 민중의 함성을 전하기 위해 달려가고자 하는 마음
(「문학」, 1946.11)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운율 : 내재율
성격 : 독백적, 의지적
표현 : 비유와 상징을 통해 현실의 모순을 부각시킴.
주제 : 새로운 시대 건설에 대한 염원
<감상의 길잡이>
김상훈은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18세까지 봉건적 서당 교육을 받다가 서울로 올라와서
근대적 교육을 받았다. 연희전문을 수료할 무렵 징용에 끌려가 원산 철공장에서 1년 반
동안 선반공으로 일하다가 돌아온 후 항일 투쟁에 가담하기도 한다. 해방 직후에는 잡지
민중조선의 편집을 담당하면서, 해방공간의 짧은 시기에 개인 시집 대열과 공동
시집 전위시인집, 그리고 서사시 가족을 발간하는 등 왕성한 시작(詩作) 활동을
전개한다. 그는 해방공간의 시인들 중에서 시에서의 리얼리즘 창조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여, 서사시 가족에서는, 시인 주위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가식없
이 시적 제재로 취급한다. <아버지의 창 앞에서>는 이러한 김상훈의 면모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초기적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그의 시는 공통적으로 대상에 가까이 가거나 몰입하여 그것을 주관화시키기보다는 일정
한 거리를 두면서 시적 자아 자신마저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특징을 지니는데, 이 시도
이러한 공통적 특징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 시의 화자는 공산주의자로서 ‘등짐지기 삼십
리길 기어 넘어 / 가쁜 숨결로’ 아버지를 찾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창 앞에’는 ‘공산주의
자는 들지 말라’는 ‘무서운 글자’가 있어 그는 차마 문고리를 잡아당기지를 못한다. 그리
하여 시적 화자는 물끄러미 상념에 잠긴다. 기나긴 식민지의 질곡을 딛고 ‘이제 새로운 하
늘 아래 일어서고파’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데, ‘말 배울 적부터 정전법을 조술하’던 그의
아버지는 그의 공산주의적 활동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
을 선택한다. 그는 ‘지주의 맏아들로 죄스럽게’ 사는 삶을 거부하고, ‘가야할 길 미더운 깃
발 아래 발을 맞추’기 위하여 ‘붉은 기폭 나부끼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선택은 곧
아버지와 절연(絶緣)하는 길임을 자각한 시적 화자는, ‘아아 해방된 다음날 사람마다 잊
은 것을 찾어 가슴에 품거니 / 무엇이 가로막어 내겐 나라를 찾든 날 어버이를 잃게 하느
냐’라고 마음의 고통에 울부짖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쓸데없는 ‘악몽’으로, 한가하게
상념에 젖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금 ‘벗아! 물끓듯 이는 민중의 함성을
전하라 / 내 잠깐 악몽을 물리치고 한걸음에 달려가마’라고 하여 아버지가 아닌 민중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시는 평이한 서술과 독백체의 화법으로 아버지의 창 앞에서 느끼는 회한을 차
분하게 풀어가고 있다. 그러한 점이 오히려 시적 화자의 삶의 선택의 길에 대한 설득력을
높여주고 있는 바, 이것이 바로 시인이 의도하는 시적 리얼리즘의 세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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