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일제 통치 기관을 무력으로 응징하다 - 안경신 의사(1888.7.22 - ?)
여성 독립운동가는 평안남도 대동출신의 안경신 의사
안경신 의사는 평화적인 외교보다는 무력 투쟁으로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일제의 등골을 서늘하게 하였다.
안경신 의사는 1919년 3.1만세운동 참여 후 오신도, 안정석 등과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대한애국부인회 본부에서 모집한 군자금을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교통부원으로 활동하였다. 2천 4백여 원에 달하는 군자금을 모집하며 활발하게 활동한 대한애국부인회는 일경에 의해 발각되어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안경신 의사는 상하이로 가서 임시정부와 교섭을 진행시켰다.
[사진출처-독립기념관, 타임트리]
“아이에게 독립된 나라를 선물해주고 싶다”
이후 100여명의 미국 의원 사찰단이 내한할 때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세계 언론에 호소하고자 폭탄거사를 실행하였다. 당시 임신 5개월 째였던 안경신 의사의 거사를 동료들은 만류했지만 “아이에게 독립된 나라를 선물해주고 싶다”라는 의지로 거사를 진행하였고 안주(安州)에서 검색하는 경찰 1명을 사살 후, 평양으로 들어와 평남도청에 폭탄을 던졌다. 거사 후 함흥으로 피신하여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낳은지 12째인 1921년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10년으로 감형되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그러나 이후 안경신 의사에 대한 기록과 유족 등에 대한 정보는 전혀 남아있지 않아 아직까지도 전달되지 않고 있어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