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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능력을 취하라!
마가복음 1:29~34
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우리가 세상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을 만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택하신 자를 눈동자 같이 지켜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주시고 자손 천대까지 약속을 지키시겠다고 하시는데 때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 모습을 겪을 때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13년 동안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며 2,000여 명의 버려진 아기들을 먹여 살리고 16여 명의 지체 장애아를 자식으로 입적하여 기르셨던 주사랑 공동체의 대표 이종락 목사님의 사모님이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모님은 극한 우울증에 치매로 시달린다고 하였습니다. 둘째 아들은 전신 마비의 장애로 태어나 14년 동안 병간호를 해야 했고, 미혼모들이 포기한 아이를 자기 아들딸로 여기며 온 마음을 쏟아 길러내었다면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평안의 복을 주셔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 친구의 어머니는 신앙이 참 고운 분이셨습니다. 아침이면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다니셨습니다. 어느 날 변함없이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시다 건널목을 건너오시다가 급발진하는 트럭에 치여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젊었을 때 이 소식을 접하고 한동안 혼란스러워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경건한 자녀를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교통사고로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하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이런 혼란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수용할 수 없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고전 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는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사심’ 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는 분이십니다. 게다가 그분은 하나님 본체가 되십니다. 그런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고 가장 극악한 죄인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분명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저주 아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내 것으로 그분의 죽음을 내 것으로 예수님의 저주를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믿음의 성도에게 다가오는 이해할 수 없는 저주의 사건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십자가 저주가 그것으로 끝났다고 한다면 우리도 혼돈과 혼란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의 영광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저주를 받았다면 예수님과 함께 부활의 영광도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저주고 혼돈이고 아픔이라 하더라도 복음의 생명이 그 안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을 이제는 저주라 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소망이 있고 오히려 기쁨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오직 복음의 능력만이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과 아픔을 이해할 수 있고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모든 믿음의 선진 들이 바로 이 복음의 능력으로 그들의 고난을 이겨내고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히 11:36,37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톱으로 두 동강이가 나서 순교한 사람은 유대 왕 중에서 가장 악한 왕이었던 므낫세의 명령으로 살해당했던 이사야라고 탈무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부활의 영광이 없었다면 이렇게 처참한 죽임을 당한 사람은 억울하기 그지없었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구약과 신약을 막론하고 이 세상의 죽음이 아무리 끔찍하고 억울하더라도 부활의 영광으로 모든 것이 회복되고 보상받게 됨을 말씀합니다.
오늘의 말씀으로 복음의 능력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복음은 무질서를 질서로 변환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모든 질병에서 자유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런 복음의 능력을 누리기 위하여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무질서를 질서로 변환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는 모든 것에 질서가 있었습니다.
밤과 낮 그리고 모든 계절이 빈틈없이 바뀌면서 혼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짓고 난 후 마귀가 세상을 지배하면서 세상은 어둠의 세력에 의하여 영향을 받게 되어 이해할 수 없는 질서가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결국, 무질서의 배후는 죄가 있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분리하게 되었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실 수 없었고,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지 갈 수 없었습니다. 사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깨지므로 세상에 혼돈과 혼란이 들어 왔습니다.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하였고 눅5: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고 예수님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므로 질서를 이루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그 사랑에 반응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질서가 세워지면 이웃과의 관계도 바르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막1: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회당에서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시고 다음 행보가 시몬 베드로의 장모댁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곧’이라는 부사를 사용하므로 바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태의 심각성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 그리고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으로 순서를 이루고 있는데 오늘 29절에서는 야고보와 요한이 먼저 나오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름의 순서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시몬의 장모 집으로 가게 된 것을 주도한 제자가 야고보와 요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30절에서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의 장모님의 병은 고열증세로 인하여 그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죽음에까지 이르는 심각한 병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열병은 헬라어 프레소사 (πυρέσσουσα)를 번역한 단어로 신약에 여섯 번만 쓰였는데, 네 번은 공관복음서에서 이 시몬의 장모와 관련해서 사용되고 나머지 두 번은 다른 사건과 관련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열병은 일종의 화병으로 어떤 예기치 않은 일로 불편한 감정이 생겨 그것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입술이 바싹바싹 타오르고 몸에 열이 생기고, 그러다가 오한도 생기는 마음의 병입니다. 화가 분출되어 밖으로 타오른 것처럼 속에 있는 화병이 고열로 드러나는 질병입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것이 마음에서 삭이지 못하게 되자 분출되어 올라오는 것이 바로 열병, 즉 화병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 무력하게 누워 있어야 했고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적절한 치료방법을 찾지 못하여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열병은 사람과 관계가 깨어지므로 얻어지는 병입니다.
관계성의 파탄이 빚어진 열병을 31절에서는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적극적으로 열병으로 고통당하는 여인에게 나가셨고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가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있는 제자들에게 ‘수종’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병을 치료하시고 치료함을 받은 여인이 수종을 들었다는 의미는 두 가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전하는 복음의 능력은 관계를 회복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죄에 빠져 내 영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더는 회복 불능의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말하고 이것은 이웃과의 관계도 회복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를 증명해 보이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하는데 이제는 일어나 수종을 드는 활기찬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수종 드니라’에 해당하는 ‘디에코네이(διηκόνει)’는 미완료 과거형으로서 계속하여 수종 드는 현재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복음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게 되면 그 생명이 살아서 예배자로 세움을 받고 봉사의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생명력이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예수님의 복음의 능력은 귀신을 쫓고 질병을 치료합니다.
죄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마귀는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이 마귀에 의하여 세상이 혼란스럽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롭게 살았어도 불의한 자가 겪는 불행을 겪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이 계속되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소망이 없습니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이유는 마귀의 일을 멸하고 하나님께서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마귀의 졸개 역할을 하는 것이 귀신입니다. 사람의 몸에 틈타고 들어온 귀신에 대하여 수식어가 있는데 ‘더러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는 거룩이라는 것입니다. 이 거룩에 반대는 ‘더러운 것’ 인데 귀신은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여 어둡고 악한 것을 좋아하도록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 귀신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도 행할 수도 없게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는 쫓아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쫓아낼 수 있습니다.
막1:32,33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의 계명을 어기지 않기 위하여 당시 안식일로 지켰던 토요일 오후, 곧 안식일이 끝나는 시각을 기다렸다가 병자들을 데리고 와 예수님께 치유되기를 원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였으며, 이 시간 내에서는 일체의 노동 행위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며 베드로의 장모를 열병에서 치유하셨다는 소식은 온 갈릴리에 급속도로 퍼져나가게 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많은 병자가 예수님께 나오게 된 것입니다.
마가는 온 동네, 즉 가버나움 지역의 무리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편 본문의 ‘문 앞’이란 베드로의 집 문 앞을 가리키며 예수님은 34절에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병자들은 그 병증이 매우 다양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예수님은 그들 모두를 치료하여 주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능력은 질병을 치유하는 것임을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병이란 사람이 죄를 짓고 난 후 사탄에게 주어진 권세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창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흙이란 사람이 흙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의 몸을 해치는 힘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뱀으로 상징하는 사탄의 저주이자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권세이기도 합니다. 질병을 하나님께 속한 즐거움, 곧 행복을 깨트립니다. 질병을 거쳐주시므로 하나님 나라의 즐거움을 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또한, 질병은 신체의 여러 조직과 세포가 불균형을 이룰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 모든 만물을 지으실 때 아버지와 함께하셨던 분이셨습니다. 모든 만물은 질서정연하게 움직였고 사람 역시 모든 영혼육이 질서가 있어 병들고 나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짓고 질서가 깨짐으로 사람에게 몸과 마음에 손상을 가져오게 되었고 이것이 질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천국 복음을 전파하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관계가 회복되고 이웃과 질서가 잡히며 질병도 고쳐 주시게 된 것입니다.
요삼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강건하기를’ 이란 말씀은 영어에서 ‘you may enjoy good health’라고 하였습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당신이 건강을 누리기 바랍니다.’라는 뜻입니다. 천국 복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이 사랑을 깨닫고 누리게 되면 내 영혼이 잘되게 됩니다. 그리고 질병에서 놓여 건강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전하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막1: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사람의 몸에서 내쫓으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어도 거룩함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귀신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이 우리 안에 들어와 그 복음으로 살고자 할 때 귀신은 내게서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세 번째는 내 안에 복음의 능력이 흐르게 하는 비결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즉, 예수님의 복음이 성령으로 내 안에 흐르고 있습니다.
복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을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자리에 나가 복음의 능력이 흐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시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변함없이 복음의 능력을 시냇물 흐르듯이 쏟아붓고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흐름은 하나님의 사랑을 쏟아 부어주시는 시냇물과 같습니다. 거기에 내가 담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나를 맡기라는 것입니다.
시 37:5,6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완전하시고 탁월한 솜씨로 나를 영원한 걸작품, masterpiece로 만들어 가십니다. 나를 맡기는 것은 하나님의 손길에 나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거룩한 의가 내 안에 나타나고 하늘에 속한 영원한 생명체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에서는 나를 부족함이 없도록 인도하시는 목자 되신 주님은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 뿐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도 데리고 들어가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좋은 환경 뿐 아니라 내가 불편하고 괴롭고 아픔의 환경이라도 복음의 능력으로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며 모든 질병에서 자유롭게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체험함을 기억하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