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의 장수. 마등의 조카로
마등이 조조의 손에 죽자
사촌인 마초 와 함께 숙부의 원수를 갚고자 하였으나 실패한다.
후일 마초와 함께 촉에 귀순하여 많은 공을 세운다.
제갈량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위연 이 모반했을 때 그를 죽인다.
마등(馬騰 )
미상 ~ 212년
후한 부풍(扶風) 무릉(茂陵) 사람.
복파장군 마원(馬援)의 후손으로, 자는 수성(壽成)이다.
처음에 양주자사(凉州刺史) 경비(耿鄙) 군대의 사마(司馬)를 지냈는데,
일찍이 저강(氐羌)의 반란을 진압했다.
나중에 정서장군(征西將軍)으로 옮겼다.
헌제(獻帝) 건안(建安) 13년(208) 입조(入朝)하여 위위(衛尉)가 되었고,
괴리후(槐里侯)에 봉해졌다.
장안(長安)이 동탁 (董卓) 잔당들의 손에 넘어갔을 때
근왕병을 이끌고 올라왔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 후 조조(曹操)의 횡포를 미워하여 동승 (董承)을 통해
옷깃 속에 조서(詔書)를 숨기고 귀향하여 군대를 길렀다.
적벽대전 뒤 조조는 설욕을 위해 남침하고 싶었지만
그의 후방 교란이 염려되어 망설이고 있을 때
순유 (荀攸)가 꾀를 내어 허도(許都)로 불러 올렸다.
마등은 이 기회를 이용해 조조를 치려고 했지만
탄로나 부자가 함께 죽임을 당하고
형의 아들 마대 (馬岱)만이 목숨을 건져 서량으로 도망쳤다.
정사(正史) 『삼국지』에 따르면
그는 동승의 조조 제거 계획에 참여한 적이 없고, 16년(211) 조조가 한중(漢中)을 공격하자 자신을 공격하려는 것으로 오인해서 대항하다 패해 죽었다고 한다.
마초(馬超 , mǎ chāo )
175년 ~ 222년
부풍군(扶風郡) 무릉현(茂陵縣) 출신이며 자는 맹기(孟起)이다.
마초가 후한에 반란을 일으키자
부친 마등(馬騰)이 조조(曹操)에게 참수당하였다.
한수(韓遂)와 연합하여 조조와 싸웠지만 조조의 계략으로 패하였다.
만족(蠻族) 사람들을 모아 양주를 거점으로 세력을 다시 확대하였으나 실패하고
촉한의 유비(劉備)에게 투항하여 촉한의 장수가 되었다.
관우(關羽), 장비(張飛), 조운(趙雲), 황충(黃忠)과 함께
촉한의 오호장군(五虎將軍)으로 불렸다.
221년 표기장군에 임명되어
양주목을 겸임하였고
222년 4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