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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09(주) 주일예배 / 제목 : 하나님께 실망했습니까? (애 3:18~26) p.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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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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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 오늘도 이렇게 주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능력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오늘은 예레미야애가 3장 18절부터 26절까지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실망했습니까?’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론 / 필립 얀시(Pillip Yancey 1949~)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성경과 시대를 바라보는 탁월한 통찰력과 어려운 신학적 주제들을 쉽게 풀어내는 은사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놀랍게도 이런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입니다. 제목이 다소 충격적이기는 하지만 의도는 하나님께 실망하신 분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쓰신 것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해 전혀 실망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무신론자이다. (왜냐하면) 무신론자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대해 실망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필립 얀시가 말했던 것처럼 어떤 때에는 하나님께 실망될 때가 있습니다. 그 질문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신가?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숨어 계시는가? 사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은 하나 같이 하나님께 대해 실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평신도였던 욥이나 다윗은 말할 것도 없고 선지자였던 엘리야나 예레미야도 그러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18절)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예레미야도 하나님께 대하여 실망했다고 실토하였습니다. 여호와께 대한 소망마저 끊어졌다고 하는 것은 거의 절망에 가까운 탄식입니다. 그런 처지에 있었기에 예레미야는 과연 하나님은 공평하신가?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하나님은 숨어 계시는가? 라는 생각에 하나님께 대한 실망으로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비록 하나님께 대한 실망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실망을 다시 소망으로 역전시켜 나갔습니다. 이런 모습이 신앙인의 위대한 모습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에 실망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실망스러운 일들을 어떻게 소망으로 역전시켜 나가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가면 새 소망으로 인생 역전을 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패배자가 되어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은 나의 힘과 소망이 끊어지고 하나님께 실망될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론 / 나의 힘과 소망이 끊어지고 하나님께 실망될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심을 기억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은 예루살렘에 일어난 모든 사실을 보고서 하나님을 향하여 통곡하며 부르짖는 비극으로 시작됩니다.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많은 사람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고 예레미야와 함께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자들도 정복자들의 포악에 고통당하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것을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당한 고난’(애3:1)이라고 했습니다. 그 고난이 얼마나 극심했던지 그의 심정을 하나님께 호소하는 내용이 19절과 20절에 나옵니다.
(19~20절)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예레미야는 분명히 예루살렘의 파멸로 인하여 최악의 고난과 고통을 겪으면서 낙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힘과 소망이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마음에 담아 두었던 한 가지를 기억했을 때 그것이 오히려 소망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21절)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이는 소망이 되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그의 마음에 담아 두었던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22절과 23절에 나와 있습니다. (22~23절)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예레미야가 마음에 담아 두었던 한 가지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예레미야는 그 환난의 와중에서도 자기 나라 민족이 진멸되지 않은 사실을 오히려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나라는 망했지만 백성은 진멸되지 않았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그의 성실하심이 크시기 때문에 소망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실망될 때일수록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심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예레미야도 그런 은혜를 받았지만 우리 한국사람 중에도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분은 실로암안과 병원장이신 김선태 목사님이십니다.
(예화) 그 분은 625전쟁 고아인데다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으며 살았겠습니까? 온갖 고난과 시련을 다 겪은 그는 “이 세상에서 배고픈 설움과 집 없는 설움과 부모 없는 설움과 앞 못 보는 설움만큼 딱하고 안타까운 것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중학생 시절에 수유리 맹아원에서 후암동 숭실학교까지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학교에 아침 7시까지 가려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가야만 했습니다. 학교 가는 길이 멀기도 하였지만 길도 험하여서 위험하고 무섭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힘든 고통과 절망 속에서 그는 하나님께 매일 눈물로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10분 거리에서 학교에도 가고 교회에도 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꼭 새벽기도를 드리고 학교에 가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방교회에 다니시는 신실한 믿음의 집사님께서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 집사님은 너의 어려움을 안다며 도와주겠다고 말하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는 그 말을 들으며 너무나도 기뻤다면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과 아픔과 절망 속에서 드린 그 기도에 응답해주셨다. 절망이 나를 가로막고 억누르며 캄캄한 벼랑 끝에 있는 듯 모든 것이 막혀 있는 것 같고 언제 차가 나를 치고 갈지 모르는 무서움과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시고 사랑하시어 안전하게 해주셨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지켜주셨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다. 모든 고난을 통해 성숙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처럼 김선태 목사님도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심을 기억하고 기도하였기에 자신의 어린 시절에 기도한대로 소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4:15~16절을 보십시오. (히 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모든 일에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사람은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신 주님의 은혜를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긍휼은 온 인류의 불행보다 크다”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의 무궁한 인자와 긍휼은 우리의 모든 죄악과 수치, 모든 무지와 무능, 모든 좌절과 절망을 용서해 주시고 용납해 주시며, 감당케 하시고 감내케 해주시는 은혜인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힘과 소망이 끊어지고 하나님께 실망될 때일수록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심을 기억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셨기에 오늘의 내가 되었노라’ 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힘과 소망이 끊어지고 하나님께 실망될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심을 기억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을 자기의 기업으로 삼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기다려야 합니다.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유다는 국가적 환난 속에 깊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여인들은 굶주림을 참지 못해 자신들이 낳은 아이들을 삶아 먹고,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주님의 성소에서 죽임을 당하며, 늙은이와 젊은이가 다 길바닥에서 학살되고, 처녀들과 청년들이 칼에 쓰러졌습니다. (애 2:20,21) “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누구에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죽임을 당하오리이까”
이처럼 참혹한 국난 속에서 유다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회개였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애 2:19)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 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 지어다 각 길 어귀에서 주려 기진한 네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 지어다 하였도다” 라고 외친 것입니다. 여기서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으라’ 함은 초저녁부터 일어나 온 밤이 다하기까지 회개하며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 민족과 더불어 참혹한 고난과 고통을 겪으면서 낙심했습니다. 그는 그의 힘과 소망이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는 기도로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물리치셨다고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애 3:8)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그의 기도를 중단하지 않았으며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땅의 절망 속에서 도리어 하늘의 소망을 더 간절히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레미야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24절부터 26절을 보십시오. (24~26)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레미야는 그의 힘과 소망이 끊어지고 하나님께 실망될 때 하나님을 자기의 기업으로 삼는 신앙을 더욱 확고히 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자기의 기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자신의 모든 것으로 삼는 것을 뜻합니다.(The Lord is all I have.) 이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 그의 소망을 두고 인내하였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기다림이 좋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실망될 때일수록 가져야 할 소망인 것입니다. 이런 소망으로 사신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유명한 찬양사역자로서 박종호 장로입니다.
그분은 초등학교 때부터 찬양대를 하려고 교회에 나갔는데 얼마나 노래를 잘했는지 서울대학교 재학시절 학부 4년, 대학원 2년 동안 내내 실기 성적을 모두 A학점을 받았습니다. 최고성적이지요. 그래서 이 성적은 지금까지도 서울대의 ‘전설’로 일컬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지극히 장래가 촉망되는 오페라 가수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100년도 못 살 인생에 투자하지 않고 영원한 삶에 투자하겠다고 결심한 후 주변 사람들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찬양사역자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1987년 극동방송 주최로 개최된 복음성가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후로 찬양사역이나 공연문화에 있어서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습니다.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 선교후원금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콘서트를 통해 모은 돈으로 선교비를 보내게 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질병을 갖고 있으면서도 27년간 이슬람 선교를 하고 있는 영국 아프리카 난민촌 선교사가 14년 동안 생계를 해결하지 못해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산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하나님 앞에 결심하고 예수 전도단(YWAM) 이사로 일하면서 지금까지 그가 찬양과 음반 판매를 통해 모금한 돈으로 지난 13년 동안 200만불(22억)의 선교비를 하나님께 바친 것입니다. 이렇게 보낸 선교비로 1,400여 명의 선교사들의 건강검진과 수술비를 감당했고 탄자니아와 인도에 에이즈 고아원을, 인도에 에이즈 병원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선교사역에 투신했지만 어느 날 그는 갑자기 간암에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작년(2016년) 5월 막내딸의 간 67%를 이식받아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치료기간 내내 매일 통곡하며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하며 이렇게 고백하였다고 합니다. “작년(2016년) 5월 24일 저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끄집어내어 살려주셨습니다. 살아나서 깨달은 것은 예수님이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새 생명이 저에게 임했습니다”
박종호 장로의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하나님께 실망했겠습니까? 소망이 끊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심을 기억하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자기의 기업으로 삼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기다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생명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새 생명을 얻었기에 산 소망과 함께 하늘에 간직한 영원한 기업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 신실하신 주’ 라는 복음성가 가사를 보면 구구절절히 신앙고백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 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결론 /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나의 힘과 소망이 끊어지고 하나님께 실망될 때가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섭섭함과 서운함으로 인하여 갈등을 겪고 있습니까? 그럴지라도 오늘 본문 말씀처럼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영원하심을 기억하고 기도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도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소망을 주신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소망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 소망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으로 사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결론핵심 : 하나님께 실망될수록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기억하고 기도함으로 낙심을 소망으로 역전합시다.
요약정리 / 나의 힘과 소망이 끊어지고 하나님께 실망될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심을 기억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을 자기의 기업으로 삼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기다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