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3일 화요일 흐림.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 모임에
매월 제 4주 화요일 점심 때 연희동에서 만난다는 중문과 동기생들 모임에 오랜만에 나가보았다. 작년에 병이 나기 전에는 한두 번 가서 본 일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기껏 국내 신문이나 TV에서 다룬 다 아는 시국 이야기를 열을 올려가면서 화제로 삼고 “xx같은 놈들은 죽일 놈들”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서 이야기를 늘어 놓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평소에는 별 말이 없다가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또 동조하여 함께 떠들어 대는 친구들도 있어, 그런 데 나가보아야 심기만 거슬리고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여, 아직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것을 구실로 삼아 1년 가까이 만나지 않다가, 한 해가 다 간다고도 하고 또 그중에 문병을 왔다간 친구도 있기에, 오늘은 큰 마음먹고 한번 가서 만나보았다.
많이 모일 때는 7,8명이 모이기도 하나 오늘은 기껏 4명이 모여 조용하게 점심만 먹었다. 늘 연락을 도맡아 하여 주는 친구가 근래에 사무실을 이전에 홍대 근처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연희동 주택가의 산언덕에 있는 단층집으로 옮겼다고 해서, 식후에 그 집에도 잠간 가서 보았다. 방이 넷, 거실 하나에 온통 책을 쌓아놓았다. 퇴직한 뒤에 자기 사는 집 말고도 이렇게 딴 장소를 마련하여 사무실(연구실)을 차리자면 상당한 수입이 있어야 할 것이며, 또 그러한 것을 따로 차릴만한 일 꺼리도 있어야 할 것인데, 어찌 되었건 이만한 전을 벌린 그 친구의 저력이 놀라웠다. 맨 주먹으로 서울에 올라와서 고학을 하고, 딴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가 늦게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교직에 있다가 퇴직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이러한 연락 장소라도 마련해 놓고 있으니, 그래도 친구들이 어떻든 매월에 한번 씩은 만나게 된다. 그 점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자기 자랑이 좀 과한 것은 딱한 일이기는 하지만…
오늘 아침에 나선 길에 신촌의 기차역과 지하철 2호선 역 근처를 좀 걸어 다녀보았는데, 몇 10년 만에 보니 완전히 상전이 벽해로 변한 것 같았다. 옛날에는 단층건물들 뿐이었는데 지금은 높은 빌딩들이 무수하게 솟아있고, 지하상가도 대단하였다. 그러나 고급 주택이 많은 연희동은 “주택보존지역”으로 묶여 있다고 하면서 높은 건물이 거의 없어 북한산의 일부도 보이니 살기 좋은 곳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