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제6회 해양문학상 수필 장려상
청각 장미숙
바닷가 근처에 사는 큰언니집 마당에 들어서자 사람보다 먼저 비릿한 냄새가 마중을 나왔다. 담벼락을 훌쩍 넘을 만큼의 높이로 쌓아올린 통발이며, 낡은 그물 등이 널려 있는 마당 한편에 짙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깊은숨을 훅! 하고 들이마셨다.
맑은 심해 냄새가 이런 것일까. 아니면 바다 사람들의 가슴을 채우고 있는 냄새가 이럴까. 향긋하면서도 비릿한 냄새는 마치 바다 한가운데 와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언뜻 보면 나뭇가지처럼 생긴 푸른색 부채꼴 모양의 바닷말들이 마당에서 꿈틀꿈틀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바닷물에서 금방 나온 듯, 물기가 촉촉한 몸은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다.
언니는 마당에 납작 엎드리듯 앉아 그것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가위로 막 잘라낸 줄기 하나를 들어 올리니 몸속에서 미끈거리는 액체가 흘러나왔다. 액체에 혀끝을 살짝 대자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신기해서 바라보는 내게 언니는 그것들을 ‘청각’이라고 했다.
지금껏 청각은 말린 것만 봤을 뿐, 바다에서 갓 따온 생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큰 대야 가득 넘치도록 담겨 있는 청각은 온통 바다를 육지로 옮겨놓은 듯, 진한 삶의 냄세를 품고 있었다. 쪼그려 앉아 청각을 다듬고 있는 언지의 손마저 파랗게 보일 즈음, 언니 몸속에 바다가 들어앉았는지 철썩! 철썩! 파도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손질을 끝낸 언니가 서둘러 청각을 맑은 물에 뽀드득뽀드득 씻더니 새파랗게 데쳐냈다. 데친 청각은 엽록소가 가득 들어찬 나뭇잋보다 짙은 색으로 살아났다. 융처럼 부드러운 피부는 거친 바다가 아닌 고운 흙에서 자란 생명처럼 순한 느낌이었다. 금방이라도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데 손으로 꼭 짜니 맑은 물만 하염없이 나왔다. 몸속에 가득 물을 담고 있는 짙푸른 색의 청각에 노랗게 잘 익은 된장과 조갯살을 넣고, 언니는 투박한 손으로 조물조물 무쳤다. 금장 새콤달콤한 청각 초무침이 상위에 올라왔다. 마치 박하사탕처럼 머릿속을 싸하게 씻어내는 느낌이랄까. 참 특별하고도 진한 바다 맛이었다. 길들지 않은 맛이 나 내 젓가락질은 굼뜬데, 언니는 자작한 국물까지 푸짐하게 숟가락으로 퍼서는 행복한 표정으로 바다를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다.
“언니, 이젠 언니 몸에서 바다 냄새가 나.” 내 말에 웃어버리던 언니의 얼굴은 이미 바다의 속살인 갯벌처럼 검게 그을려 있었다. 숟가락을 잡은 언이의 거친 손이 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손마디가 유난히 굵은 언니의 손이 통발을 연결해서 묶고 있는 밧줄처럼 보인 건 언니에 대한 동정이 아닌, 언니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것이었다.
바다는 언니에게 어떤 것일까.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품고 있는 바라라면 언니의 얼굴이 그처럼 편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청각에 포자가 있어 스스로 생식을 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언니 몸속에도 바다가 들어 있어 쉴 세 없이 비릿한 삶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친 풍랑을 이겨내고 난 뒤 항해하는 법을 터득하고 난 바다 위의 배처럼, 언니에게서 모든 것을 초월해버린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넉넉한 여유마저 보였다. 이제는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다는 듯이 바람 앞에 당당히 맞선 사람의 표정이 그런 것일까. 언니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 건, 언니에게서 풍기는 사람의 향기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언니의 삶이 풍랑 앞에 등불처럼 위태롭던 때가 있었다. 산촌의 가난한 집 장녀로 태어난 언니에게 도시는 가난을 벗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방직공장의 공원이 된 언니는 노등올 말미암은 좌절감만 맛보았다. 동생들 뒷바라지에 자신의 청춘을 바쳐버린 언니는 등이 바다처럼 거친 한 남자를 만나 가난한 신혼살림을 차렸다.
언니의 보금자리는 도시의 변두리 골목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담벼락도 없는 집은 겨울이면 바람이 날름날름 집어삼켰다 뱉어놓은 듯, 춥고 을씨년스러웠다. 앉아있으면 코가 시린 집에서 언니는 밤새도록 재봉틀을 돌렸다. 형부는 일용직 근로자였고, 일하는 날보다 술로 세월을 낚는 날이 더 많았다.
형부는 원래 바닷사람이었지만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도시를 떠돌아 다닌 탓에 외로움에 절어 있었다. 형부의 외로움은 불쑥불쑥 언니를 절망시켰고, 그럴 때면 언니의 울음소리는 파도서리처럼 파랗고 처연하게 재봉틀 소리에 묻히곤 했다.
언니의 삶은 등대도 없는 바다에 표류하는 배처럼 위태로웠다. 풍랑에 휩쓸려 좌초되어 버릴 것 같았지만, 언니는 도시의 삶을 꽉 붙잡고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언니에게 눈으로만 보는 멋진 바다 풍경이 아닌, 바다를 두 손으로 건져 올려야 한다는 건 가난보다 더 두려운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다는 끝내 형부의 손을 놓지 않았고, 형부에게 이끌려 언니는 어부의 아내가 되었다. 예상대로 바다는 언니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시의 삶에 익숙했던 언니는, 비린내가 촘촘한 그물코처럼 뱃속에 박힌 바닷사람들에게 주눅이 들었다.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언니 또한 몸속에 비린내가 들어찰까 봐 마음을 굳게 닫고 있었다. 두어 해 동안 언니는 짜디짠 햇볕에 말라서 물기가 다 빠져버린 청각처럼 시들어갔다.
그러던 언니가 몸에세 비린내를 풍기기 시작한 건, 겨울 어느날, 배에 오르다 바다에 빠지고 난 뒤였다. 언니는 그때 일을 아직도 신비한 체험으로 기억하고 있다. 바다에 빠졌는데 춥기보다 바닷말들이 온몸에 달라붙은 듯 몸의 세포가 생생하게 살아나는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물에 빠진 언니에게 많은 사람이 손을 내밀었고, 언니는 그날 비로소 바다와 바닷사람들의 따뜻한 속살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뒤로 언니의 몸에서는 바다 냄새를 감지하는 세포가 자라난 듯 바닷사람이 되어갔다. 원래 성격이 둥글둥글한데다 정이 많은 언니는 마음의 빗장을 풀자 쉽게 동와되어 갔다. 먼바다에서 흘러들어온 바닷물의 영향을 받고 자라는 바닷말처럼 언니도 짙푸른 바다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바위나 조개껍데기에서 번식하며 온몸에 푸른 생명을 키우는 청각은 미역이나 파래보다 향이 진하다. 그래서 생으로 먹기에는 다소 버겁다. 하지만 마르면 온전히 향을 간직하고 있다가 다른 음식의 맛을 돋우어주는 데 큰 몫을 하는 게 청각이다. 언니가 새로운 삶에 동화되었듯이 형부도 이제 더는 외로워하지 않는다. 형부의 마음마저 다독다독 붙잡아서 온전한 바다를 돌려준 언니에게서 사람의 진한 향기가 배어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바위를 꽉 움켜잡고 심해의 맑은 물을 먹고 사는 청각, 짭조름한 점액을 품고 거친 환경에서도 부드러움을 잊지 않는 청각은 언니와 닮아 있었다. 생것으로 바위에 더덕더덕 붙어 있을 때는 세상 어느 것보다 깊다는 걸 바다를 온몸으로 체득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청각의 포자처럼 한떄 정착하지 못하고 방랑자인 양 떠돌던 언니가 이제 시나브로 바다가 되어 가고 있어서일까. 사람들의 거친 삶을 다 끌어안고 밤새워 뒤척이는 바다처럼, 그런 바다를 잉태한 언니의 몸이 동그랗게 출렁거리는 걸 나는 묵묵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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