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且色身은 是- 地水火風四緣의 所集이라
其質이 頑而無情이어니 豈能見聞覺知리오
能見聞覺知者는 必是汝의 佛性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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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색신은 시 지수화풍사연의 소집이라,
사연이라고도 하고 사대(四大)라고도 합니다. 똑같은 소리입니다
이것은 결국, 지는 만물을 지탱하게 해 줍니다
물은 습해서 만물을 휘어 잡어줍니다
화는 따뜻해서 만물을 익혀주는 것입니다.
움직여서 생장하게 해 주는 것이 바람입니다
이것이 우주 만유의 원소입니다. 만물을 형성 시키는 원소이고, 우리 몸을 형성시키는 원소입니다.
왜 이것을 이야기 하냐?
사람들은 사대의 기운을 자기로 생각하고 삽니다
그래서 원각경에 <만인 사대위 자신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육신이 자기의 참 모습이라고 망념 되게 인식하고 산다고 중생들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육신에 공을 다 들이는 것입니다.
또한, 죽은 사람을 바라보고 끝나버렸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신이 자기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은 자기이면서 자신이 아닙니다.
말이 되나요?
사연= 사대= 색신(色身)
1. 변한다, 영원하지 않다 2. 자체로 작용(인식)하지 않는다 |
어떤 사람이 숨을 멎었는데 땃땃한데, 불러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안이비설신을 가진 육신이 영원할 뿐 아니라 스스로 작용하지 않고
불성이 들어가야 작용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입니다
귀는 죽은 사람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듣고 아는 그것은 꿈도 없이 자는 것이 여여한 것입니다
내가 화구속으로 내가 들어가도 여여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의 대상일 뿐입니다. 마음의 대상일 뿐입니다.
육신은 마음의 대상이고 도구일 뿐인 것입니다.
기질이 완이무정이어니
완이라는 것은 완고하다는 것인데, 완고하다는 것은 어둡고 딱딱하고 별 볼 일 없다는 것입니다. 무정은 무정하고, 그 바탕이 정신이 없는 것입니다.
기능견문각지리오
그 자체가 무정물인데 어떻게 그 자체가 묻고 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 목소리를 듣는 것이 마음이 듣는 것이지 귀가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능견문각지자는 필시여의 불성이니라.
능히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은 너의 불성이니라.
그렇다면 반대로 불성은 어떠냐?
불성(佛性)
1. 변하지 않는다. 2. 그 자체로 작용합니다 |
우리 몸은 차와 같습니다. 차가 어떻게 혼자 돌아다닙니까?
운전자가 있어야지 차가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불성인 운전가가 있어야 차가 돌아다니는 것이지요
불성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면 견문각지를 하는데 모르면 견문각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작용하는데 작용하는 근본은 불성이다라는 것입니다.
불성이 들어가야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제 목소리를 듣고 아는 그것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나는 사장이다, 나는 누구의 아버지이다, 나는 학벌이 어떠하다,
그것이 자기인줄 압니다 사실은 그것이 아니죠·
오늘 강연을 들으시면서, 아 저 사람 말이 빠르네, 성질이 급한가 보다 생각을 하시죠
그런데 성질이 급하다고 하는 것이 자기인줄 아시는데,
성질이 급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불성인 것입니다.
오늘 참 좋다 이런 생각이 드십니까?
이런 좋다라고 드시는 생각이 바로 자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삼계의 세계입니다
좋다라고 생각하는 그것을 알아차리는 그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비로소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동할 때 마음이고, 정할 때는 생각의 이전자리이고 성불이라고 하였습니다
성품에서 동하면 아~좋다라고 마음까지 옵니다
아~ 법문이구나 하는 것이 정신입니다.
아~ 법문 좋네 하는 것이 희노애략의 칠정이 동한 마음입니다.
이때 마음은 동하기도 하고 정하기도 한 마음입니다.
참 법문이라는 것은 동하기 이전 자리 성품자리입니다
이것을 주관과 객관을 초월했다고 표현을 합니다
저를 보면서 제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좋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말이 바로 객관이고 좋다라는 것이 주관입니다.
교무님이 말을 하시는데 내가 참 좋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라 보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좋다라는 생각에서 사는 것이고
좋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형체가 있고 그렇다라는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계속하다보면 알게 됩니다.
이것이 유무초월인 것이고 있고 없고를 초월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있고 없는 것입니다.
故로 臨濟- 云四大가 不解說法聽法이요
虛空이 不解說法聽法이요
只汝目前에 歷歷孤明하야 勿形段者라사
始解說法聽法이라하시니 |
고로 임제, 임제는 당나라때 선사입니다.
운사대가 불해설법청법이요,
사대가 불해설법 청법을 하는 것이 아니요,
허공이 불해설법청법이요,
허공이 설법, 청법하는 것이 아니요,
지여목전에 역역고명하야,
제 목소리를 듣고 있는 여러분들의 마음이 역역고명하여서 듣고 알고, 청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청법하고 있는 여러분의 마음을 물(勿)형단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勿)이라는 것은 모양이라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역역고명이라,
고명이라는 말을 성성((惺惺)하다라고도 씁니다
이것을 영지, 묘유입니다.
지금 제 목소리를 듣는 것이 역역히 압니다. 그런데 왜 고자를 썼느냐? 하나다라는 것입니다.
음과 양, 드는 객체요 주체가 다 두개가 있는데
주체와 객체를 넘어선 하나다라는 것입니다.
어떤 대상에 끌리지 않고 사실 그대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 자체가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에 불성이 들어서
불성에 조화가 들어서 보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것입니다
시해설법청법이라 하시나
법을 설할줄도 알고 들을 줄도 아는 것입니다.
所謂勿形段者는 是諸佛之法印이며 亦是汝의 本來心也니라
소위 물형단자는 시제불지법인이며,
이것은 모든 부처님의 법인이라는 것입니다.
물형 단자는 부처님의 법만 해당되는 것입니까?
우리의 본래심도 해당됩니다
만약 부처님 마음에 금가루가 새겨져 있고 중생에게는 똥가루가 새겨져 있나요?
물형단자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본래도 되고 우리의 마음도 되는 것과 같이 같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인이라는 것이 묘법지인쇄라고 합니다.
제불조사들이 쭉 들어가면서 마음과 마음자리에 심심 상변으로 법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법인(法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법인이라고도 하고 심인(心印)이라고도 합니다
제불제성의 법인, 제불제성의 심인이라고도 합니다.
법인(法印)= 심인(心印) (본심= 본래심)
우리가 원불교에서 일원상을 우주만유의 본인이고, 제불제성의 심인이며,
일체중생의 본성자리라고 합니다.
불성이라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깨쳐야 하고, 진짜 부처님이 어디에 있느냐?
우리 안에 있고, 우주만유가 모두 부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아나요?
옛날 스님들 문답을 보면 굉장히 직관적입니다.
너의 마음이 부처다, 너 안에 있다 라고 끝나버립니다.
그래서 갑갑합니다
불성, 이 것을 알기 위해서는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생각 나오기 전 자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자리는 궁글려야 합니다
그리고 견문각지라고 하는데, 내가 정할때나 동할때나 잠잘때나 말할때나 일을 할때나
도대체 내가 움직일 때에 걸어다니면서 육신이 걸어다니냐 무엇이 들어서 걸어다니냐
저 사람을 보면서 예쁘다, 밉다라는 생각이 들면,
보통 사람들은 예쁘다는 생각과 밉다라는 생각만을 가지고 삽니다
마음 공부하는 사람은 예쁘다는 생각과 밉다라는 생각이 무엇이 그것을 생각하고 있느냐를 생각하야 합니다.
한 물건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한 물건 그것을 화두(話頭)라고 합니다.
중생의 지갑에는 돈과 카드만 있습니다
그러나 수도인들의 지갑에는 돈도 있어야 하겠지만, 화두가 있어야 합니다.
도대체 말하는 무엇이 듣고 무엇이 말하느냐
마음이라는 것이 있다더라, 말하는 것이 있다더라
그러면 화두가 아닙니다
조계종에서는 화두선을 듣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정신이 맑을 때 간화선을 들으라고 합니다.
간화선만 계속 하다보면 의심이 들지 않는 사람 등 거기에 집중하다보면 머리가 터집니다.
화요공부방 다니다가 화계사로 출가하신 분이 있습니다
전화를 가만히 들어보니깐 살짝 정신이 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신과를 가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의심도 없는 사람을 가져다가 계속 들으라고 하니깐 갑갑한 것입니다.
원불교는 믿음을 통하지만, 그 믿음이 의두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는 믿는 종교만이 아닙니다. 믿어야 하지만 그 믿음이 반드시 의심을 걸어서
그 의심을 계속 하고 하고 하다보면 밝아진 줄 모르게 밝아지는 것이 바로 돈오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 5장 불성을 찾은 이야기들
卽佛性이 現在汝身이어늘 何假外求리요 汝若不信인댄 略擧古聖의 入道因緣하야 令汝除疑하리니 汝須諦信이어다 昔에 異見王이 問婆羅提尊者曰何者是佛이니꼬 尊者曰見性是佛이니이다
즉 불성이 현재여신이어늘,
불성이 현재 그대의 몸에 작용하고 있거늘,
하가외구리요, 어찌 바깥에서 구할 것이요
여약부신인댄, 만약 믿지 않은 듯하니
약거고성의 입도인연하야 , 옛날 성인의 도를 깨달은 예를 들어
영여제의하리니. 그대의 의심을 제거하려하니
여수제신이어다, 자세히 들어서 믿을지어다.
달마대사가 있습니다. 달마대사가 셋째입니다
첫째가 왕을 했습니다. 그 아들이 이견왕입니다.
달마대사의 제자가 바라제군자입니다.
이견왕이 인과를 믿지 않고 까불다가 법문을 듣고 참회를 하고
나중에는 큰 불사를 하고 교화를 합니다.
이견왕이 바라제군자에게 묻습니다.
하자시불이니꼬, 어떤 것이 부처요? 하고 물었습니다.
견성시불이니이다, 즉 견성이 부처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수심결은 혼자 책을 보면 모릅니다 설명을 함께 들으셔야 합니다.
제대로 부처라는 것은 견성(見性), 양성 (養性), 솔성(率性)을 다 한 사람입니다
기본적으로 돈오(頓悟)라는 것을 견성이라고 합니다.
부처라는 것은 성품을 보고 성품을 단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훈련을 통해서 계속 길들여서 솔성을 통해서 했을 때 그것이 불(佛)이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불(佛)은 단순히 마음의 부처님이다를 넘어서서
그 마음을 보고, 기르고, 써서 하는 것을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처와 중생의 본래 차이가 없지만, 여기서 부처는 중생과의 차이가 있습니다.
중생은 성품은 보지도 못하고, 양성은 커녕 수많은 욕심 속에서 자행자지로 성품을 쓰는 것입니다
王曰師- 見性否이까 尊者曰我見佛性이니이다
王曰性在何處니이꼬 尊者曰性在作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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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왈 사 견성부이까 , 당산은 성품을 깨달았습니까?
존자왈 아견불성이니이다. 나는 불성을 알았다고 대답합니다.
왕왈, 성재하처니이꼬, 그럼 불성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불성이 몸에 있다고 했는데 그 주소, 위치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까?
성재작용이라고 하였습니다.
성품이 작용하는데 있다라는 것입니다
몸은 그대로 안이비설신이 그대로 있고 불성이 들어서 그대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전등기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허공을 이전등기를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허공은 주인이 없기 때문에 이전등기를 해서 가져다가 놓은 사람이 주인이다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없기 때문에 하나가 될 수도 있고 여럿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견성을 한 사람은 허공을 이전등기한 사람입니다.
등기소 가서 부동산 같은거 이전 등기를 하면 죽어버리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갑니다
하지만 허공을 이전등기를 하면 그것은 내생에도 가져가는 것입니다
부자 중에 이런 놈의 부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王曰是何作用이관대 我今不見이니꼬
尊者曰今現作用이언마는 王自不見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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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볼 수가 없습니까?
존자가 지금 불성이 들어 작용하건만 너가 스스로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王曰於我에 有否이까 尊者曰王若作用인댄
無有不是어니와 王若不用인댄 體亦難見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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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지금 있다는 말입니까?
왕이 만약 심신작용을 하면 불성자리 아님이 없지만,
유부라는 것은 아님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체역난견이라는 것은 너가 쓰지 않으면 그 본체는 보기가 어려울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정즉체요 동즉용’이라고 합니다
정이라고 하면 체자리에 들어갑니다
능히 동하면 작용한다라는 것입니다
성품이라는 것은 정할때는 체할때에 있고 동할 때에는 작용할 때에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때 체를 진공위체요, 모유위공이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공으로 체를 삼고 모유로 용을 삼아라고 합니다
이것을 더 풀면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이다라고 합니다.
이것을 더 쉽게 풀면,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이것을 더 쉽게 풀면, 용심법(用心法)이라고 합니다
정할 때는 진공에 합일하는 것이고 이것을 할 때 수양법이 좌선을 합니다
좌선이라는 것은 수승화강(水昇火降) , 식망현진(息妄顯眞) ,
화기를 내리고 수기를 올려주고, 망념을 쉬고 진성을 올려주는 것입니다.
즉, 좌선을 해서 지혜를 밝히자는 것입니다
또 왜 좌선을 해야 하느냐, 그 밝힌 지혜를 그 자리에서 확인하고 확인하고 그
러지 않으면 동하면서 속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좌선은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대종사님도 대원정각을 하셨는데,
변산에 들어가셔서 글자를 보았는데 불여만법위여자시시라는 보셨는데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것이 뭡니까? 그런데 거기서 딱 막히신 겁니다.
남자는 여자, 좋은 것과 나쁜 것, 체와 용 등 모두 짝하고 있습니다.
짝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딱막혔다는 것입니다.
두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그 자리를 잠시 놓고 확인하지 않으면 때가 낀다는 것입니다
제가 의두를 2년 간에 놓지 않고 했습니다
제가 2년간 좌선을 졸지도 않았습니다
2년을 지나니깐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젠 나는 끝났다하면서 만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정말 날아가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선하는 재미로 진경을 맛보면서 살았습니다.
어느새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계속 하다가
다시 들어가보니깐 그 느낌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돈오점수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돈오를 해서 점수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해줘야 합니다
만약에 심신 작용을 하면 불성인 줄 알지만, 작용하지 않으면 체성자체를 알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체자리는 것은 분별 이전 자리이기 때문에 알기 어렵습니다.
王曰若當用時하야는 幾處出現이니이꼬 尊者曰若出現時에는 當有其八이니이다 王曰其八出現을 當爲我說하소서 尊者曰在胎曰身이요 處世曰人이요 在眼曰見요 在耳曰聞이요 在鼻辨香이요 在舌談論이요 在手執捉이요 在足運奔하야
기처출현이니이꼬, 몇군데로 나타나냐?
약출현시 당유기팔이니이다, 대개 여덟 군데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자세히 좀 설명해 주십시오 하니깐,
몸의 인격으로, 육근이 육신을 일으킨다
제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오감인줄 알고 감정이 생각이 보고 듣고 느끼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 제 말을 듣고 있는 그것에 작용하고 있는 것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偏現하야는 俱該沙界하고 收攝하야는 在一微塵이니 識者는 知是佛性이요
不識者는 喚作精魂이니이다 王이 聞하고 心卽開悟하다
叉僧이 問歸宗和尙호대 何者是佛이니꼬 宗云- 我今向汝道하려하나
恐汝不信일까하노라 僧이 云和尙誠言을 焉敢不信이리이꼬 師云卽汝是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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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현하야는 구해사계하고, 온 세계에 다 있죠.
형체가 없기 때문에 국한이 없는 것입니다.
어디에서나 감춰 있다는 것입니다.
수섭하야는 재일미진이니, 거두어 들이면 미세한 티끌 속에도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한덩어리요, 처처불상이라는 것입니다.
식자는 지시불성이요, 부식자는 환작정혼이니이다.
정혼이라는 것은 육신과 정신을 정혼이라고 합니다
왕이 이 말을 딱 듣고 개오했다는 것입니다.
승이, 제자를 말합니다.
하자시불이니꼬,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귀종화상이 그대에게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이 그대가 믿지 않을까봐 걱정이로다하였습니다.
그러나 스님이 화상의 가르침을 어찌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하자
즉여시니라, 너가 바로 부처다라는 것입니다
너가 내 말을 듣고 있는 그 마음이 본래 부처다라는 것입니다.
僧이 云如何保任이니꼬 師云一(예)在眼에 空花亂墜니라하시니
其僧이 言下에 有省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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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이 운여하보림이니꼬, 깨달았으면 보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림이라는 것은
안으로 자성이 요란하지 않게 하는 것이 보요, 밖으로 경계에 혹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밖으로 수 많은 경계 속에서 혹되지 않게 하는 것이 보림이요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비로소 공부하는 법을 아는 것입니다.
오염수를 벗어나는 것이고 마음의 원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물형단자라는 것이 참 마음이다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삶 속에서 내가 어떻게 잘 봤던 본래에서 도림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비로소 수양의 시작입니다.
안경 앞에서다가 선글라스를 쓰면 세상이 거무적적하게 보입니다.
일예재안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내 눈은 그대로인데 티끌이 눈 앞에 있으니깐 나라는 생각,
나라는 것에 묶여 있으면 공화난추라는 것입니다.
공화라는 것은 공중지화라고 해서 꽃이라는 것은 땅속에 뿌리를 박고 있어야 하는데
허공에 있는 것이 뿌리가 없는 것입니다.
눈병 걸리면 어질어질합니다 이것을 일예재안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아상, 인상, 중생상, 등 이런 상을 가지고 있으면 눈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순수하게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착심이라고 하고, 분별심과 주착심이라고 합니다
아이고 좋다, 아이고 싫다, 이것이 계속되면 생각만 들어도 좋다 싫다가 나오는 것입니다.
유성에서 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제 6장 부처님과 함께 손잡고 가자
上來所擧古聖의 入道因緣이 明白簡易하야 不妨省力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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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래소거고성의 입도인연이 명백간이 하야 불방생력하니,
省 성자가 아니라 생자입니다. 덜생자입니다.
명백하고 쉬워 수고를 더할 것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공안이라는 것은 의두 성리, 화두 등 여러 가지로 말합니다.
제가 첫 시간에 말씀 드렸습니다
여러분들 제 목소리를 듣고 아는 이것이 무엇입니까?
꿈도 없이 잠잘 때 이것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이 화두입니다.
화두가 들기 위해서는 서원과 신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단생에서 끝난다는 것이 일예입니다.
나는 한번 이 세상을 제대로 잘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화두 이전에 신심이 있어야 합니다.
신심이 있어야 사견에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심이라는 것은 마음을 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양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신이 없으면 자기의 주장과 자기의 판단이 많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사견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파사견이라고 해서 신은 사견을 부서버리는 것입니다.
해(解)라는 것은 해파무명이라고 해서
해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화두가 필요합니다
화두 들기 위해서는 교무님이 설법하기 위해서는 저것이 괜찮다라고 해서 화두를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여러 가지 중에 가장 의심 나는 것을 걸어서 반드시 써서 방안에다가 걸어 놓으세요
계속 연마하세요
낙숫물에 바위가 구멍이 뚫리듯,
우리의 지혜 광명이 있기 때문에 계속 굴려보세요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무명이 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믿기만 하면 무명이 가리고
알기만 하고 믿지 않으면 사견에 빠지게 됩니다.
신해오(信解悟)
그 과정에 화두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불가에서는 스승님이 주셨습니다. 하지만 애매합니다.
하나를 결정해서 몇 일 하다 말아버리지 말고,
그것을 적어서 계속 해야합니다
그래서 진짜 스승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감정을 하고, 견성유무에 대해서 확인을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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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옮겨 보관합니다
어느 날 누가 교무님께 그랬다. 교무님~! 제가 보니 진리가 거기에 다~ 있는데, 이리저리 말하던데요. 교무님께서는 스승인지라, 한술 더 뜨시며, 그 진리를 보자는게 아니라 봤으면 보은하자는거라고...한걸음 더 가는거라고...그것이 궁극이라고...제자는 알아듣는다. 예이~~~ 그러합지요. 그리구 열심히 그 곡조에 맞춰 뛰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