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하르트 휘들러/이정희 통역
아동의 성장에는 7년 주기의 세 단계가 있다. 이 단계에서 새로운 그 무엇이 일어난다.
1. 출생(출생기) - 세상의 빛을 본다.
2. 7세(학령기) - 지적 능력이 생겨 배울 수 있는 시기.
3. 14세(성숙기) - 사춘기. 성징이 나타나고 내면이 성숙하는 시기.
4. 21세(개별성) - 책임 속에서 무언가 해내는 때
성숙의 전 단계는 미숙이고, 성숙 이후는 너무 익은 것이다.
→ 과일에 비유. 덜 익거나 너무 익은 과일은 먹을 수가 없다.
성숙(각 단계)은 빨라도 늦어도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시기이다.
1. 출생기
예를 들어 4월 1일 출산 예정인 아이를 성탄절이 좋다고 해서 그때 태어나게 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각 단계도 이와 마찬가지다. 적시에 성숙해서 탄생하여야 한다.
2. 학령기
슈타이너는 1925년 사망하기 전까지 자기 학문을 인류학이라 하였고, 사망시기에 인지학이라고 바꾸었다. 인지학은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과학이고, 인간을 관찰하는 과학이다.
만 7세에 아동은 신체가 완전히 성숙하여 사지와 내장(오장육부)가 완전해진다. 이 때는 영구치가 나고 생명, 형성의 힘이 지적능력으로 변해 배우려고 하는 시기이다.
국제적으로 ‘피사’라는 아동학력검사를 하였는데, 한국은 상위권이고 독일은 중위권에 속했다. 이 검사 이후 독일에서는 국제경쟁력을 위해 아동이 학교에 가는 시기를 앞당기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5,6세에 학교에 가는 것(인지교육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내장을 형성하는 힘을 끌어다 다른 곳에 쓰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삶의 마지막까지 내장이 약하다. 내장에 약점이 생기는 것이다. 신체는 학령기, 사춘기, 성인기를 거쳐 삶의 끝까지 함께 가야 할 도구이다. 학령기를 경제나 경쟁 등의 다른 논리로 일찍 끌어가선 안 된다. 발도르프교육에선 아이에게 더 좋은가, 옳은가를 중요시한다. 아이중심의 교육이다.
“아이가 곧 교과과정이다.”
적당한 때여야만 학습이 즐겁다.
발도르프학교의 1학년 과정에 포르멘이라는 것을 배운다. 첫날에는 직선‘|’ 한 개를 한명씩 칠판 앞으로 나와 그린다. 모든 아이와 선생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나는 이 일은 아이에게는 일생일대의 사건인 것이다. 그리고 둘째날에는 곡선‘(’을 그린다. 포르멘은 문자로 들어가기 위한 기초과정이다. 일반학교에서는 읽기를 먼저 배우고 그 다음에 쓰기를 배운다. 그러나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쓰기를 배운 다음에 읽기를 배운다. 쓰기는 아이에겐 온 힘을 동원하는 힘든 일이다. 읽기는 머리(사람의 한부분)만 작동하는 일이다.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쓰기를 배우며 먼저 행위를 하고 나중에 느낀다.
자유학교의 한글수업을 참관하였다. ‘ㅁ’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산에 문이 하나 있고 그 문으로 빛이 들어오는 그림을 그려 이야기를 해준 다음 ‘ㅁ’을 써서 발음하였다. 이렇게 배운다면 그냥 읽을 때보다는 훨씬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 학습이 될 것이다.
이 시기에는 동화를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동화의 세계가 곧 자기(아동)의 세계이다. 전래동화와 창작동화가 있는데, 창작동화는 생각을 해서 만들어낸 것이고 전래동화에는 지혜가 담겨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래동화를 들려주는 것이 더 좋다. 동화를 읽어주면서 어른이, “악마는 벌 받아야 해” 등의 말을 덧붙이지 마라. 전래동화에는 선악이 들어 있어서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갓난아기는 새끼 동물과 달리 세상에 무방비 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아기는 기이한 능력을 가지고 왔다.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세상에 열려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기는 주변에 있는 어른과 그 행위, 생각, 느낌, 언어를 감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변에 직립보행하는 어른이 없다면 아이는 서서 걷지 않을 것이고, 주변에 말하는 어른이 없다면 아이는 말하기를 배울 수 없을 것이다. “아이는 주변환경, 어른을 따라 모방한다.” 이것을 안다면 아이 앞에서 의미있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독일의 일간지에 보건복지부(같은 관공서)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당신의 아이와 말을 많이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아이에게 결핍이 생깁니다.”
7세 이후 3년 동안에도 아이의 모방능력은 계속 작동한다. 그래서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초등 1학년부터 외국어를 두개씩 가르친다. 이때에는 말하고 듣고 노래하는 것을 배우고 쓰기는 배우지 않는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 대해서 어른들은 아직 큰 오해를 한다. 그것은 아이들이 교사에 대해 무조건적인 존경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건 아니다. 교사에게 진정한 존경과 사랑을 갖는다면 아이에게 좋은 일이다. 교사는 진정한 존경을 받도록 품위가 있어야 한다. 권위는 중요하지 않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이 중요하다.
아이에게 있어 교사의 자아는 자기 자아가 탄생하는 대상이다. 그러므로 교사들의 행위는 자아의 행위로 이어져야 한다. 아이의 자아는 아직 탄생, 성숙하지 않아서 교사의 자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교사는 자아로부터 나오는 판단과 행위를 하여야지 감정, 이기주의, 기분에 따라 실수를 하면 안된다.
발도르프교육에서는 같은 교사가 1~8학년까지 담임을 한다. 아이들은 교사의 개별 인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만 9세 때 아주 중요한 것이 아이의 내면에서 일어난다. 아이의 내면에서 균열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섬세한 발달이라서 겉으로는 그리 크지 않고 어떤 아이에게선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엄청난 의리를 지닌다. 학술용어로 ‘루비콘’이라고 하는데, ‘루비콘’은 이탈리아의 작은 강의 이름이다. 이 강은 시저가 프랑스를 정복하고 넘은 강으로 로마사에서는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시기를 ‘루비콘’이라 이름지은 것은 작은 것이 큰 의미를 가진다는 뜻에서이다.
9세 이전의 아이들은 교사나 부모 등 주변에 열려있는 상태이다. 세상,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그래서 우화와 동화를 좋아한다. 그 이후의 아이들은 우화를 들으면 “거짓말이야. 동물이 어떻게 그래?” 등의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9세 이전의 시기를 잘 이해하고 내면 발달이 각 단계를 건너뛰지 않고 잘 거쳐 발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9세에는 갑자기 결별을 느낀다. “난 여기 있고 세상은 저기 있구나.” 세상과 나의 개념이 생기고, 그 동안의 통일과 조화에 균열이 생긴다. 이 시기에 발도르프교육의 산수시간에 나누기를 시작한다. 아이의 무의식 속에서 나누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