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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산~소요산 산행기(2)
빅보스가 지시하는 사항들은 걸핏하면 훼방이나 반발을 하고,
하는 짓은 대개 상대팀에게 어부지리를 줄 만한 행동을 밥 먹듯이
하는 동료를 내쫓은 집(빨간색 점퍼)은 망한거나 다름없이 형편없는
몰골이 됐으며,매양 하는 짓거리를 보고는 도저히 같은 집에서는
동거가 불가능하다고 열 몇명이 뛰쳐나간 집(파란색 점퍼)은 동료를
내친 집으로 인한 반사이익때문인지 톡톡히 재미를 봤다.
그리고 열 몇명이 나침판도 없이 황량한 들판으로 살던 집을 뛰쳐나간
작자(녹색점퍼)들은 생각지도 못한 횡재에 희희낙락 잔뜩
고무돼있다(4,13총선 결과보고).
'열두개울'과 344번 지방도가 커다란 구렁이처럼 구불거리며
종현산과 소요산 멧덩이가 빚어놓은 험준한 협곡을 한가하게
지나간다.두어 마리의 개짖는 소리와 초로의 식당주인 아낙의
가게 문 여닫는 소리를 뒤로하고 차도를 건너서면 곧바로
소요산으로 드는 산길이 맞춤맞게 손을 내밀 것만 같다.
그러나 마춤맞은 산길은 도통 얼굴을 드러낼 기색이 없다.
비교적 희미한 두엇의 족적을 타깃삼아 가는 자일을 움켜잡고
미등의 험준한 바위절벽을 오르는 클라이머의 심정으로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입산객의 족적은 희미하고 가물가물한 반면,산짐승들의 족적은
비교적 뚜렷한 산길이다.이유와 목적이 어떠하던 산짐승들도 산을
타는 분야에서는 사고방식이 우리와 별 반 다를게 없어보인다.
가파른 오르막은 여유를 내놓지 않고 지루하고 끈질지게 이어진다.
등산의 묘미를 맘껏 느릴 수 있는 된비알,쓴 커피의 향에 빠져 든
커피 애호가처럼 된비알은 극성맞은(?) 산꾼들의 등산열정을 채우고
고양시키는 커피의 쓴맛이나 다름없다.얼큰한 맛을 즐기려면
매운고추가 필요하듯이, '된비알'은 등산의 커피향이자 매운탕에서의
청양고추다.
가파른 비탈길 위에 수북하게 내려앉은 가랑잎은 눈엣가시나
다를 게 없다.차라리 수북하게 쌓인 눈을 러셀을 치라면 없던 힘도
솟아나고 성취감도 남다를 터인데, 발목까지 빠져드는 가랑잎 산길은
간간이 헛힘만 잔뜩 쏟아붓게 만든다.
헐떡이며 올려친 멧부리에도 다갈색의 가랑잎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멧부리 주변으로는 여전히 잿빛의 참나무와 활엽수들이
조망을 거스른다.
이제 슬슬 연두빛 채색을 시작하려나,잔가지 마디마다 눈물방울처럼
아롱아롱 밝은 새순들이 꿈틀거린다.대지(흙)는 끊임없이 이렇게
지상의 온갖 식물을 탄생시키는 작업을 멈추지도 머뭇거리지도
않을거다.이오니아 철학자들의 이론이었던가,흙은 식물을 만들고
식물은 동물을 만들어낸다고.영생불멸의 존재가 아니라면 동물(인간)
도 흙이 되어 식물로의 재탄생을 기다려야 할거다.
송전철탑이 차지한 멧부리를 뒤로하는 산길 주변에도 진달래꽃길이
쉼없이 이어진다.너덜겅 오르막 비알을 올려치면 그 곳 멧부리부터는
암릉 산길이 기다린다.바위들이 울멍줄멍 줄을 잇고,크고작은
소나무들이 그늘을 만드는, 잉어의 거뭇한 등줄기처럼 밋밋하고
날렵한 등성이다.진달래꽃과 생강나무꽃이 함께하니 비단에 꽃을
보탠 격이 아닌가.
암릉의 산길에서는 주변의 화려한 풍경에 시야를 빼앗길 우려가
다분하다.자연이 빚어놓은 천혜의 절경 앞에서 시선을 돌리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그 빈틈을 비집고 악마가 이빨을 드러내는
법인데,뼈의 골절과 염좌가 발생할 수 있는 순간이다.
그래서,각하조고(脚下照考)!! 발 밑을 조심해야 한다.
땀을 훔쳐가며 힘겹게 오른 멧부리에는 오래 묵은 듯한 삼각점이
한복판에서 주인행세를 한다.아직까지 봄바람은 설렁거림을 잃지
않았지만,하늘빛은 맑은 물에 우유 몇 방울을 떨군 듯이 희뿌연
기색을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희뿌연 하늘빛은 화사한 연분홍
진달래꽃잎으로 달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몸피가 튼실하고 외모가 끌밋한 노송들이 잉어 등줄기처럼
비좁은 능선 양측 절벽 모퉁이 이곳저곳에 그림처럼 위험하게
포즈를 취하며 몸매를 한껏 자랑한다.줄지어 울멍줄멍한 크고작은
바위는 여전하며,산등성이의 날렵함은 변함이 없이 곧추선
골격을 유지한다.이러구러 화려하기만한 암릉구간을 올라서면
해발 535.6m의 덕일봉(일명 감투봉)이다.
덕일봉 멧부리에는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며, 등산안내를
맡은 이정표도 반듯하다.그리고 과거에는 참호로 쓰였을 구덩이가
그대로 남아있다.포천방면의 금동리 쪽으로의 하산길이 해가 뜨는
방향으로 나 있으며,직진방향의 상백운대까지의 거리는 0.7km라고
써있다.간단하게 목을 적신 뒤 덕일봉을 뒤로하며 서둘러 비탈길을
내려선다.
소요산의 으뜸봉우리 의상봉 그리고 우측으로 공주봉이 거뭇한
실루엣을 그린다.오늘 산행의 노정은 그 앞머리에 위치한 상백운대
에서 의상봉으로 내처 진행을 하는 것이 아니고, 우측의 하백운대
방향으로 계획을 잡고있다.의상봉 공주봉을 모두 경유하한다고 해도
시간차이는 크진 않을거다.그러나 이왕지사 하백운대에서 자재암을
둘러본 다음 하산하기로 했으니 그에 따를 수밖에 없지싶다.
상백운대의 멧부리는 맨 땅이 고스란이 드러나있는 널찍한 공터,
손을 뻗으면 곧 닿을 듯이 의상봉은 지척에서 손짓을 하는데
아쉬움은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바위 능선길이 이어지며 위험방지를 위한 로프가 산길을 이끌어
나간다.끌밋한 노송들이 호위무사처럼 늘어서 있으며,크고작은
바위들이 쉴자리와 전망대를 넉넉하게 내놓는다.
너럭바위가 누워있으며 몸피가 튼실하고 건장한 노송들이 꾸며놓은
조망의 무대는 화려하고 시원하기 그지없다.전망대 한 치 앞은
바위절벽이 막아서고 있으며,소요골짜기 건너 의상봉라인의
볼륨있고 육감적인 몸매는 전신을 꿈틀거리며 유혹의 눈짓을
사정없이 퍼붓는다. 아!! 저 볼륨있는 몸매를 알뜰하게 섭렵해야
했거늘,어찌 이렇게 멀건히, 우두커니,마른 침만 삼키며 안타까움과
아쉬움에 젖어 있단 말인가.
대개 화려한 순간은 수명이 짧은 법이다.아름다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익숙한 길도 역시 짧다.돋보이고 순조롭고 안락한 상태의
유효기간이 비교적 짧게 인식이 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익숙한 길을 통과하는 시간은 낯선 길을 통과하는 시간보다
비교적 짧은 시간이 소요된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의 나이도 그렇다.젊어서는 세월이 거북이걸음처럼 느려터지고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진행속도는 점점 가속도가 붙게 마련이다.
이런 원인은,우선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뇌의 전문영역인
생각의 학습활동여하에 따른 결과물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안에 따라 느긋하고 넉넉한 시간을 요구하는 세력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격하게 관리되는 시간이라는 제한설정을 엄중집행해야
하는 지휘세력 간의 승패는 학습량과 비례하는가다.
누구나,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의 시간이 영원하길 바란다.
그리고 변함없기를 기원한다.그러나 천상천하(자연)의 법도는
어느 한쪽으로의 쏠림을 허용하지 않는다.공평하다.
다 부질없는 공상이자 허상을, 자가(自家)로 돌아온 자아(自我)가,
자가가 말똥말똥하고 내 모습을 거울로나 비춰 볼 수 있을 때,
순간의 짬을 내어 빈 공간을 이리저리 휘저어 본거다.
고려 말의 고승이자 해동불교의 법조인 태고 보우선사께서,
중백운대에서의 절경을 노래한 싯귀를 " '두드림'동두천"이
세워놓은 안내도에 일부분 소개한 대목이 있어 소개한다.
소요산 위의 흰구름은 떠오른 달과 함께 노닌다.
맑은 바람 불어오니 상쾌하여라
기묘한 경치 더욱 좋구나
노심초사하며 한 획 한 글자 심혈을 기울인 대목은 아닐지
모른다.보우는 피부에 금방 와 닿은 생각을 얕은 여울 수면에
슬그머니 띄워본다 .묵직한 마음은 바위아래 깊숙이 감추고
순진무구의 천진함이 저절로 흘러나오고 있음을 노래한다.
소요골짜기를 왼쪽 가파른 절벽(?) 저 아래에 두고, 해가 저무는
쪽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부드럽고 아기자기하게 이어진다.
소요산 위의 흰구름을 떠오른 달과 함께 놀았다던 보우선사는
소요산 위를 희뿌옇게 뒤덮고 있는 상황은 어떻게 노래했을까.
낭떠러지나 다름없는 암릉절벽위를 300여미터 이동을 하면
하백운대가 기다린다.
하백운대에는 매월당 김시습이 읊었다고하는 한 대목의 노래가
소개되어 있다.
길 따라 계곡에 드니 봉우리마다 노을이 곱다
험준한 산 봉우리 둘러섰는데
한줄기 계곡물이 맑고 시리다
매월당이 소요산에 오른 것은 한여름의 어느 날이다.
애시당초 방향을 작정하고 심산유곡의 소요산을 찾은 매월당은
아니다.소금강산이라고 대처에 소문이 자자한 마당에 우정
짬을 내어 소요의 구중심처를 찾았을게다.
아기자기한 산등성이를 서너 시간 둘러보고 소요계곡 맑은물에
발을 담그고 땀을 닦아내리며 피곤을 풀었을거다.한여름에도
계곡의 맑은 물은 찬 기운이 잔뜩 서려있는 법이다.
노을이 붉게 물들어갈 무렵이면 출출하기도 할테고 갈증도 밀려올
법하다.멀리 대처까지 허둥지둥 달려갈 것 뭐있나,산문을 뒤로하면
허름한 주막이 하나 쯤은 자리하고 있을테니.
하백운대를 뒤로하면 곧바로 삼거리 갈랫길이 나오는 데,직진을
하면 산림욕장을 경유해서 소요산 주차장으로 내려서는 산길이고
왼쪽의 비탈길은 자재암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자재암까지는 0.65km,가파른 내리막 산길은 온통 진달래꽃 천지다.
고정로프의 도움이 없으면 오르고 내려서는 산행이 꽤나 힘겨웠던
된비알 코스에는 계단이라는 구조물이 새로 생겨났다.
산위로 오르는 일이,산을 내려서는 일이 비교적 용이해졌으며
안전산행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
가파른 계단과 비탈길을 내려서면 자재암에 이른다.
바위절벽아래 석굴형태의 전각인 나한전(羅漢殿)이 자리잡고 있으며,
나한전 입구 오른편에는 원효샘이라고 이름이 붙은 석간수
샘터가 있다.'젖처럼 맛있는 차가운 물'이라고 고려시대 시인
이규보는 감탄하였다고 하였으니, 한 바가지 안 마셔볼 수 없다.
여느 샘물과 다른 점은 주위환경과 분위기가 한몫 거들고 있다는 점.
자재암(自在庵)은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깊은 사찰이다.대웅전과 포교당 그리고 원효대가 자리하고 있으며,
대웅전 오른편에 요사채가 있고, 대웅전 뒷편 비탈진 언덕에는
삼성각이 오롯이 자리하고 있다.그리고 대웅전 맞은쪽 계곡
바위절벽에서는 '청량폭포'라는 이름의 폭포가 쉼없이 은빛 물줄기를
쏟아내리고 있다.
절마당을 벗어나면 '원효대'라고 써있는 바위전망대와 만난다.
이곳에서 수도하던 원효가 체념하여 자살을 하려고 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는 순간 문득 도를 깨우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장소다.
불교대중화의 선봉에 섰다고 알려져 있는 원효가 자살을 결심한
적이 있다는 사실도 뜨악하고,이런 절벽에서 자살시도를 하려다
도(道)를 깨우쳤다는 이야기도 허무맹랑하기는 마찬가지다.
원효대를 지나면 곧바로 백팔(108)계단이라고 명찰이 붙어있는
계단을 내려가게 되며,백팔게단을 내려서면 공주봉을 오르는 산길과
일주문으로 향하는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우측으로 시계방향을 따라 발길을 돌리면 이내 오른쪽으로
원효대라는 이름을 얻은 바위직벽 바로아래 극락삼존과 사천왕상을
봉안한 석굴형태의 암자가 자리하고 있으며,석굴 입구 좌측으로는
원효폭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폭포가 흰거품을 물고 쏟아져 내린다.
"逍遙山自在庵"이라는 이름의 현판이 걸려있는 일주문을 나선다.
산문을 벗어나는 거리의 가로변은 그야말로 만화방창(萬化方暢)의
화란춘성(花欄春城)이다.꽃대궐 가로를 걷노라면 맛있는 음식냄새가
유혹의 손길을 뻗는다(16시30분).그 유혹을 버거워한다면 이미
마음은 냄새의 진원지로 달려가고 있다는 징표다.
'팔도식당'에서 소머리 국밥(특)에 반주를 곁들여 속을 달래는
네 사내들,'술이 나를 사랑할 따름이지 내가 술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너스레를 떠는 청아대장의 두 뺨이 시나브로 연분홍
진달래 꽃잎을 닮아간다.승차할 시간(18시)은 점점 다가온다.
주변정담(酒邊情談)도 이제 시들해졌고, 느긋하게 반 쯤 남은
술잔을 연신 만지작거리던 청아대장이 드디어 잔을 비운다.
귀가를 손꼽으며(?) 기다리는 이의 품으로 불원천리 달려 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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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모처럼 네동지가 산길을 같이하네
박(빡)세게 기어 오르는가? 내리꽂는가?
바다는 유유자적 구름나그네
청아한 꽃내음에 흠뻑 취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