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날 밤 9시경 하가리 산길 구멍가게 앞에서 담배를 사려고 차를 멈추고 문을 열자마자 다가와서 꼬리치던 녀석을 뿌리치지 못하고 집에 데리고 왔습니다. 갈색 푸들 녀석이었는데... 구멍가게 주인되는 분은 개를 싫어하는지 날 따라 들어오려던 녀석을 발로 밀어내고... 그래서 500원짜리 소세지를 까서 줬더니 허겁지겁 먹더군요.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흙먼지가 날리고, 컴컴한 산길에 놔두면 사고가 나겠거니 해서 일단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운전대를 잡고 있는 팔 밑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제 가슴에 기대려고 용을 쓰더군요. 사람이 그리웠던건지.
오자마자 목욕을 시켰더니 뗏국물이 그냥 줄줄 흐르더군요. 며칠 방치됐었나 싶더군요. 그래도 맨 바닥에 앉으려고 하질 않고 침대에 기어올라가려고 하길래, 안돼. 했더니 바닥에 놓인 좌식의자에 척 하니 앉더군요. TV보고 컴퓨터 하는 동안 얌전히 앉아있었는데... 바람이 심한 날이라 바람 소리가 컸었거든요. 좀 무서웠는지 앉아있는 옆으로 와서 기대고 간만에 편하게 휴식을 취하더군요(원래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베란다에 종이박스에 구멍 뚫어 신문지랑 입던 옷을 깔고 임시 거처를 마련해준다음 잠을 자려고 누웠죠.
이 녀석이 밤새도록 베란다에서 날 보며 뛰고 베란다 창을 긁어대더군요. 전 주인이 매일 안고 자던 녀석인지, 아니면 바람 소리 때문인지 혼내기도 하고 얼르기도 하면서 새벽녘에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식구가 없는 사람이고, 나가면 밤 늦게나 들어오기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다음 날인 30일날 오후에 읍사무소에 갖다가 맡겼습니다. 이 녀석은 산책이라도 나가는줄 알고 신나서 조수석에서 떡하니 버티고 서서 꼬리를 흔들며 차창 밖을 구경하는데 정신이 없었습니다. 읍사무소 안마당에서도 신나게 놀고... 담당직원이 보호소로 보낸다고, 트럭 뒤에 붙어있는, 위가 뚫려있는 통에 넣더군요. 마음이 좀 그런 채로 집에 돌아왔습니다만,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날 큰 비가 왔습니다. 여전히 바람도 심했구요. 이 녀석이 잘 지내는지 걱정도 되고, 죄책감도 느껴지고... 하지만 주인이 곧 나타나겠거니 했습니다.
그러다 그 다음다음날인 3일에 읍사무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녀석 코 끝이 말라있고, 계속 헥헥거리던게 병이 있어서 주인이 유기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많이 마르기도 했구요. 담당 직원이 금요일날(오늘. 6일) 방문바란다고 해서 약속을 잡아놨습니다. 집안에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자신은 없지만, 내게 온 생명이라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한 번 같이 살아보자라는 결심이 섰거든요. 해서 오늘 읍사무소를 방문했더니, 담당 직원은 외근중이라 유선상으로 오늘 내로 연락을 해준다고 약속을 받고 제 일을 하러 출근했습니다만.
축산과 직원이 연락왔네요. 제가 결심을 했던 그 날, 녀석이 죽었답니다. 보호소 들어간 이후 적응을 못하고 밥을 한 끼도 안 먹었다네요. 결국 이 녀석이 죽기 전에 최후의 밥상을 제가 차려준 셈이 되었습니다. 읍사무소에 맡기기 전에 통조림 하나랑 개껌을 하나 사먹였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던거죠. 어제는 마트에 갔다가 애견 용품 코너에서 이 녀석 집이랑, 견줄, 샴푸 등등을 보고 왔는데... 보호소 직원이 잘못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치 제가 주인인 것 마냥 너무도 미안해하길래 오히려 제가 그러지 마시라고 할 정도였거든요. 나름의 고충도 있을테고, 여건상의 한계도 있었을테고... 무엇보다 잠깐보니 이 녀석이 나름 예민한 녀석이고, 건강도 썩 좋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제 책임은 남는 것 같습니다. 제가 죽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너무 안좋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제가 데리고 있었겠죠. 이 일을 어떻게 해야되는지... 아까 전화받고 일이 손에 잡히질 않네요.
첫댓글 새벽님...가슴이 너무 아프네여^^ 제가 새벽님 입장이라두 지금쯤 감당해야할만큼의 죄책감으로 힘들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하지만 님은 정말 최선을 다하신거구 최후의 성대한 만찬과 아름다운 사랑을 베풀어 주셨어여...넘 넘 감사힙니다...아마두 그 녀석? 가는길에두 새벽님의 온기로 굉장히 행복하구 따뜻했을거예여,,,흑흑흑 ㅠㅠ,,,엉엉엉,,,제발 앞으로는 이런 가슴아픈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새벽님의 사랑과 하루간의 특별한 따스함을 기억하며 그녀석과 새벽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애가 죽은줄도 모르고 어젠 녀석 이름 짓느라 고민을 했습니다. 좀 촌스럽지만 상길이라고 불러야지 했거든요. 용품 구입 예산도 따로 생각해뒀구요. 데리고오면 마트가서 필요한 거 다 구해서 그간 고생했던거 잊게 만들어줘야지 했습니다. 잠깐 사이지만 그렇게 잘 먹고 잘 놀던 녀석이 보호소 들어간지 단 3일만에 그렇게 됐다니... 상길이한테 너무너무 미안합니다ㅜㅜ 루루님 위로 감사합니다.
순간 저도 왈칵했네요. 너무 안타까워요ㅠㅠ 새벽님 너무 힘드시지 않길 빕니다.... 저도 그 아이를 위해 기도드리겠습니다... 저도 이번에 유기동물 공고보고 갈색푸들 아이 입양하려고 했는데 부모님이 너무 덩치가 크다고 탐탁치 않아하셔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앞으로 쭉 같이 살텐데 부모님께서도 마음에 드는 아이로 데려오고 싶어서 인연이 아닌가 보다 생각하다가도, 그 아이가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면 너무 속상해요... 똑같이 갈색푸들이어서 그럴까요 새벽님 글을 읽었더니 울컥하네요...
힘들다기보다 마음이 너무 안좋네요. 사실 저도 개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상길이한테 죄갚음을 할 겸 보호소 한 번 가볼까 합니다. 줄리엣님 입양 잘 하시구요, 감사합니다..
저두 비슷한 경험이 있었서..........조금 오래된 일이지만 지금도 마니 힘드네여..어째든 그 아이에 대한 사랑과 끝까지 키우시려고 했던 맘...깊이 감사드립니다.
큐티님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셨군요. 제 무지에서 비롯된 일인 것 같습니다.
참 안타까운게 키울만한분 나타나서 연락하면 꼭 그애가 무지개건넜단얘기듣는거에요...힘내세요. 그래도 좋은일 하셨네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좀 적응이 안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