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back-to-back house의 모습
산업 혁명은 인류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18세기말 영국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산업 혁명은 19세기를 통해 계속되었고 네덜란드, 프랑스, 그리고 독일을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들이 이를 경험했다. 산업 혁명으로 인한 공업화 사회의 도래는 사회구조의 변화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고, 서구 사회는 도시화되고 산업화된 사회 즉 근대사회로 진입하게 되었다. 산업 혁명의 필연적 결과로 도시의 규모는 확대되었고, 인구의 증가와 주택문제가 심화되었다. 농촌 지역에서 도시로의 인구 유입은 가속화되었으나, 인구의 성장에 비례하여 적절한 시설 및 주택의 공급은 불가능했으므로 도시는 과밀화하고 주택의 규모는 규모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사진 - 산업혁명기 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모습
산업 혁명기의 영국의 여러 도시에서 가장 성행했던 주거 유형은 백투백(back-to-back) 주택이었다. 이는 여러 채 주택이 후면 부의 벽을 서로 공유하면서 연립하는 독특한 주거 형식이었다. 주택의 한쪽 면만 외부와 접하게 되므로 환기와 통풍이 매우 제한된 주거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여러 채의 주택이 길고 폭이 좁은 중정을 둘러싸는 방식으로 배치되었으므로, 뒤쪽 주택은 길에 면하지 않고 중정에 면하게 되었다. 중정의 폭은 매우 좁아서 3내지 4.5m정도가 일반적이었으며, 이 중정을 중심으로 두채의 주택이 마주 보게 배열되었다. 공동 화장실과 펌프가 중정의 한쪽에 위치했고 중정과 길은 좁은 통로를 통해서 연결되었다.
사진-백-투-백 건물의 중정 모습
런던 대 화재 이후 열악한 주택의 난립을 방지하기 위하여 1774년에 "런던 건축 법령"이 제정되었다. 이 법령은 주택의 규모와 재산적 가치에 따라서 여러 등급으로 구분했으며, 각 등급에 따라서 기초와 내·외벽의 두께, 창문의 크기와 위치 그리고 천장의 높이 등을 지정했고, 전면 도로의 넓이까지도 규정해 놓았다. 또한 이 법령은 런던의 많은 주거지역이 자체의 질서와 일관성을 지니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으며, 영국의 주요 공업도시들에게도 독자적인 건축 규제와 조례를 시행 및 규정하도록 독려했고, 19세기 전반기의 도시 확산 시기에 주거의 형태를 결정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사진- 서민용 타운 하우스의 후면부
건축 규제에 의한 조례 주택의 일반화는 중산 계층의 주거 환경 향상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우선 전체 주거 환경 측면에서 막다른 골목길이나 폭이 좁은 중정 대신 넓고 서로 연계되어 있는 가로 망이 형성되었고, 주거 밀도가 낮아짐으로써 공간구성에 좀더 여유를 줄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적인 영역인 후정을 마련하여 이곳에 가족 전용의 화장실을 설치한 것인데, 흙이나 재로 중화시킨 배설물을 정기적으로 치울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이러한 타운 하우스가 조례에 의해 일반화되었고, 1870년대 이후 런던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의 교외로 확장에 이 주거 유형이 광범위하게 적용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영국 도시 주택의 기본적인 유형으로 남게 되었다.
타운 하우스는 19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중산 계층의 도시 주택으로 성행했다. 그러나 택지 난과 과밀화 등의 이유로 주택의 규모가 작아지고 도시가 혼잡해 지면서, 19세기 중반부터 타운 하우스(town house)에 대한 중산 계층의 선호는 식어 갔고, 이들은 과밀화되고 더러운 도심을 떠나서 전원의 교외에서 단독주택을 생활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어 이후 각국으로 전파되었는데, 영국, 미국에서 가장 성행하였다. 이시기에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교외의 단독주택 생활과 더불어 도심에서는 층마다 다른 가구가 거주하는 적층형 주택인 중층 아파트가 일반화되었다.
런던의 경우 아파트(apt)의 건축은 1940년경부터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주로 일반 서민을 위한 모델 주택 형식으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중산 계층을 위한 고급 아파트가 일반화되었다. 1850년대에 빅토리아와 켄싱턴 지역을 중심으로 건축되기 시작한 중산층 아파트는 두 가구가 하나의 계단실을 공유하는 계단실형이 일반적이었고, 응접실, 식당, 침실, 부엌 그리고 하인용 침실 등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고급 아파트는 중산 계층 주민들이 도심에 하나의 거점을 마련하기 위한 제2의 주택으로 사용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아파트는 청소비, 유지비 등의 측면에서 경제적이었고 단독주택에 비하여 좀 더 나은 설비를 갖추었으므로 일부 중산 계층에 의하여 선호되었다.
영국에서 아파트 건축이 가장 성행했던 곳은 스코틀랜드 지방의 도시들인 글래스고와 에든버러 등이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산업 혁명 반발 이전부터 토지이용을 효율화하는 수단으로 아파트가 건축되었고.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산업 혁명기간 동안 아파트 건축이 확산되었다. 이시기의 아파트는 4층 정도의 높이에 길에 접해 있고 뒤에는 정원이 있는 형식이 적용되었다. 계단실은 주로 건물 뒷편에 위치했는데, 일반적으로 원형의 나선계단이 설치되었고 T자형 복도가 형성되었다.
산업 혁명기의 노동자용 아파트는 주로 1실 또는 2실 규모였고, 계단실 주변에 화장실, 세탁실 등 공유 공간이 위치했다. 그러나 복도가 어둡고 환기가 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었으므로, 이러한 이유에서 차차 편복도식의 노동자용 아파트가 생겨나게 되었다. 더욱 발전하여 화장실과 세탁실이 계단실 주변으로 옮겨가고 나중에서는 한 세대 당 하나의 화장실과 세탁실 마련되었으며, 쓰레기 투입구와 발코니가 설치되었고, 또한 채광과 통풍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유럽의 경우, 건물 가운데 중정을 갖는 블록형 아파트가 정착되어 갔다. 이러한 중정도 수목이 있고 어린이가 뛰어 놀 수 있는 커뮤니티(community) 공간으로 개선되었으며, 이후 건축가를 위시한 환경 개혁가들은 도시에 적합한 주거 유형을 강구하기 시작했고 결국 위생적인 측면에서 양호한 도시형 아파트를 개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