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와 나 -이관수-
참깨를 성공적으로 거둬들였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참깨를 많이 먹어보지 못한 채 자랐다고 회상된다.
귀한 식품이어서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습관처럼 아껴 쓰는 어머니의 솜씨 때문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열 식구가 넘는 대가족의 먹을거리를 책임지셨던 ‘알뜰주부’이셨다.
옛날에야 참깨의 효능을 알지 못했지만, 그 구수한 맛과 향내로 인기가 많았다.
참깨 씨로는 기름을 짜거나, 볶아서 양념으로 활용하여 입맛을 돋워주었던 것이다.
의, 과학이 발달한 지금은 그 성분과 효능이 잘 알려져서 더 큰 인기식품이 된 듯하다.
기왕 농사하는 김에 실컷 먹어보자는 속셈으로 해마다 열심히 참깨농사도 한다.
지난해에는 장기간 비가 지속되어 썩거나 싹이 나서 참깨농사를 망치고 말았다.
이번에는 지난해보다 더 많이 심고, 나름대로 효율적으로 관리를 했다.
그럼에도 밭두렁 주변에 돋아나는 잡초와의 전쟁은 언제나 내가 패배하는 양상이다.
“남사스럽게, 밭이 그게 뭐여! 풀 투성이네, 풀약(제초제)하구 말어~!"
이웃인 U영감이 잡초가 무성한 우리 밭을 보면서 내게 하는 말이다.
해마다 같은 말을 두세 번은 듣지만 그의 말을 따라할 일은 아니다.
풀약을 자주하면 결국 농작물성장에 해롭지 않겠나 싶어 절제하기에 밭 꼴이 말이 아닌 것이다.
집에 돌아와 쉬는 시간에도 머릿속에는 밭고랑을 뒤덮고 있는 잡초가 맴돈다.
제초제와는 달리 참깨엔 잘록병 역병 시들음병 잎마름병이라는 4대 질병이 있는데,
이를 예방하거나 각종 해충을 퇴치하려면 농약살포가 필요하다.
때에 맞춰서 참깨에 살균 살충제 뿌리면 어느 정도 안심이 된다.
코로나19 예방접종을 2차까지 맞고 난 후에 어느 정도 안심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다.
다락방 창밖으로 보이는 새벽하늘이 안개가 낀 듯 뿌옇다.
여러 날 계속되는 가뭄으로 참깨대가 마르고 잎이 배배 돌아가는 중인데,
한 줄금 비가 쏟아진다면 해갈의 기쁨을 맛볼 수 있으리라.
습해에 약한 게 참깨이긴 하지만, 오랜 가뭄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도 보기에 애가 탈일이다.
'목이 마르지 않더라도 물을 자주 마셔야 한다.' 는 안내 문자가 뜨는 시절이다.
사람도 몸 안에 수분이 부족하면 이상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확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물이 부족하면 노화현상도 빠르단다.
"물을 좀 덜 마셨더니 변비가 생겨서 혼났어!" 라는 Hy씨의 말에 나도 한마디 보탠다.
"난 물을 덜 마시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던데!"
땀범벅이 되어 여름의 한고비 삼복더위를 통과하는 중이다.
안개 낀 듯 뿌~연 하늘이 벗어지지 않고 후두두둑~ 비를 좀 뿌렸으면 참 좋겠다.
사람은 수렵본능이 있어서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고, 수렵이 가능한 강변, 산이나 바다를 꿈꾼다.
휴가철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다가 결국 집콕보다는 여행으로 결론 내는 이유다.
매일 밭에서 시간을 보내는 난 어디 가볼 엄두를 못 낸다.
그래도 아내가 가고 싶다면 핑계 삼아서 외출해볼 요량으로 물어본다.
"여보, 당신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요?"
아내는 뜸도 들이지 않고 단번에 거절이다.
"운전하는 거 힘들어하면서 가긴 어딜 간대요!"
누구 말마따나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 아니겠나.
한낮에 옅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지만 날씨는 무척 덥기만 하다.
스마트폰에 안전안내문자가 뜬다.
●무더위시간대 외출과 야외활동 및 작업을 자제하고,
외출시 챙 넓은 모자 또는 양산 쓰기, 물 마시기,
안전수칙 지키기 등으로 온열질환을 예방바랍니다.●
무더운 시간에 잠시 일손을 멈추고 대형파라솔 그늘에서 문자를 확인한다.
이라크전쟁 초기에 바그다드를 방문했을 때였다.
당시, 모 NGO 바그다드 지부장인 K목사를 만나 그의 사역에 협력하기로 동의했었다.
스케치북을 들고 혼자서 시가지를 거닐 때 일단의 젊은이들이 날 보며 하던 말이 생각난다.
“혼자 다니면 위험해요! 아리바바가 나타나거든요!”
동굴에 감춘 도둑들의 보물을 훔치는 도둑 중의 도둑이 아리바바 아니던가?
그 이야기에 나오는 افتح يا سمسم(이후타ㅎ 야 심심)은 “열려라 참깨!”인데,
그 말이 떨어지면 닫쳤던 동굴의 문이 열렸던 것이다.
참깨는 여전히 중동지역에서도 애용하는 식품의 하나다.
온도가 고공행진을 지속중이지만 "비닐하우스 세우려구요!" 하면서
대전의 큰아들 내외가 들어와 참깨찌기를 시작했다. 이어서 구미의 가족들도 찾아왔다.
임시로 그늘 막을 쳐놓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참깨를 묶어낸다.
밭 한편에는 조립식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시렁을 만들어 깻단을 건다.
비록 소형(3m×8m)이긴 하지만, 이제 비가 내려도 깻단 덮을 비닐천 들고 오르내리며 조바심 낼 일은 사라졌다.
혼자라면 한 주간은 족히 걸릴 일인데 자녀들이 거들었기에 참깨찌기를 잘 마쳤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잘 마르면 ‘탁 탁 타닥 탁~’ 타작을 하게 될 것이다.
농사란 하늘과 땅과 사람의 합작품이라 하지 않던가!
농사란 창조주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인 것이다.
올해 참깨농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넉넉하게 거뒀으니 참 감사하다! -觀-